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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적부를 통해 본 일제강점기 동덕여고 여학생의 특성 연구 =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Female students at Dongduk Giiis` High School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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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일제강점기 동덕여고 학적부(1926-1945년)를 분석하여, 동덕여고의 학생 구성,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졸업생 진로에 초점을 맞추어, 동덕여고 여학생의 특성을 고찰한 사례 연구...

      본고는 일제강점기 동덕여고 학적부(1926-1945년)를 분석하여, 동덕여고의 학생 구성,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졸업생 진로에 초점을 맞추어, 동덕여고 여학생의 특성을 고찰한 사례 연구이다. 동덕여고는 국권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여성인재의 육성을 목표로 순수 조선인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설립된 민족주의 교풍의 사립학교였다. 현재 동덕여고에는 1914-1945년까지 재학했던 동덕여고 학생들의 학적부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데,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여학생 집단의 민족적·계급적·성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사례라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여학생`이란 당시 여자중등교육의 기회를 부여받았던 1% 미만의 조선인 여성 엘리트 집단으로, 이른바 `신여성`으로 일컬어지던 근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동덕여고 여학생들은 입학 단계에서부터 나이가 평균 2-4세 정도 많은 학생들이 81.9%나 될 정도로 법적 학령(學齡)에 준하는 교육기회를 부여받지 못하였다. 여성교육을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했던 동덕여고에서는 평균 5-7세나 많은 만학도, 결혼한 기혼여성에게도 가능한 학업의 기회를 부여하였고,심지어 다른 학교에서 항일학생운동을 하다가 퇴학당한 학생들에게도 편·입학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출신지역별 특성을 보면,경성부 출신이 평균 44.1%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지방출신 학생들이 보통학교부터 `경성조기유학`을 하였음이 확인된다. 또한 공립보통학교 출신이 사립보통학교 출신보다 많아 일제강점기가 `공립만능시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33년 이후로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학교 당국의 노력과 함께 점점 치열해지는 입시경쟁 속에서 서북지방까지 동덕여고 진학생이 확대되고 있었으며,지방출신 학생들은 경성과 지방의 문화교류의 매개자로서 역할을 하였다.
      동덕여고 여학생의 학부모는 농업종사자가 33.7%인 반면,공무·자유업과 상업·광공업 등 자본주의적 근대직업 종사자가 63.8%로 2배 정도 많아, 농업 종사자가 1930년대 83.1%, 1940년대 74.4%였던 조선사회의 직업 구성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자산규모면에서도 동덕여고 학부모들은 1만원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 중류 이상의 유산자가 77.8%나 되었다. 즉,동덕여고 여학생의 2/3정도는 중류 이상의 자산을 소유하고 자본주의적 근대직업에 종사하면서 여성교육에 개방적·적극적이었던 부모의 영향으로,일제강점기에 1% 미만의 조선인 여학생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여자중등교육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덕여고 졸업생들은 식민지 말기로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상급학교 진학에서 여학생에 대한 기회 불균등, 조혼을 부추기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졸업생의 평균 70.1%가 가사에 종사하였다. 반면 동덕여고 여학생의 70% 이상이 취직과 진학을 통한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진출을 희망하였으나,취업 14.3%, 국내외 상급학교 진학 13.9%로 졸업생들이 마주한 식민지 현실은 여의치 않았다. 이는 일제강점기 여고의 교육목표를 현모양처 양성을 위한 신부양성소적 성격의 종결교육기관으로 설정했던 식민지배자의 의도가 식민지 전 기간을 통하여 강화·고착되어 나갔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록 일제강점기의 여고가 여학생들의 희망을 담보하지 못하고,여전히 종결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였지만,만학도들의 진취성에서 보듯이,상급학교 진학과 취직을 통한 `근대적 욕망`을 실현하려는 여학생 계층의 선구적 역할과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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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is a case study of the characteristics of female students at Dongduk Girls, High School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26-1945) focusing on pa-rents} socioeconomic background, and alumni`s career after analyzing the school regist...

      This article is a case study of the characteristics of female students at Dongduk Girls, High School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26-1945) focusing on pa-rents} socioeconomic background, and alumni`s career after analyzing the school register. Dongduk Girls` High School was a private school established by Korean bene- factors, support, aiming at fostering capable women who could contribute to the restoration of sovereignty; the school spirit was decidedly nationalist.
      Hie school register of students enrolled in Dongduk Girls` High School from 1914 to 1945 is retained almost intact in Dongduk Girls` High School.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analyses the characteristics of nation, social class, and school record in Korean female studen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Female studen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ere of the top 1% Korean female elite to whom the opportunity of female secondary education was given at that time, and were the symbol of the modem age, dubbed `new women.`
      Female students at Dongduk Girls> High School were not given educational opportunities according to compulsory school age to the extent that students older by an average of 2-4 years from the admission stage accounted for 81.9%. However, Dongduk Girls` High School saw female education as part of the save-the-nation movement and did it^ best to give study opportunities to older students as well as married students. In addition they gave school transfer opportunities even to students expelled from other schools who had carried out anti-Japanese student activities When these characteristics are examined according to students) birthplace, students from Gyeongseongbu(京城府) accounted for 44.1% of the school population which was the highest, while students from other provinces `moved to Gyeongseong to study at: an early age(京城早期留學)` from elementary school. The number of students from public elementary schools was higher than that of private elementary school. So, it was possible to verify that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the (age of the public school(公立萬能時代)`. However, due to the school administration`s effort to improve educational environment and the growing competition over school entrance tests, the range of provinces from which students entered Dongduk Girls` High School extended up to the Northwest region. And students from the provinces played a role as intermediaries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capital Gyeongseong and the provinces.
      With regard to parents of female students at Dongduk Girls` High School, people engaged in agriculture accounted for 33.7%. On the other hand, people engaged in modem bourgeois occupations such as commerce, mining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and public service, or free-lance professionals accounted for 63.8%. These figures are the opposite of percentage of occupations in Korean society in the 1930s-1940s when people engaged in agriculture accounted for 83.1%-74.4%. In terms of assets, among parents of students at Dongduk Girls High School, bourgeois families with assets of KRW 10,000 or more accounted for 77.8%. In other words, about 2/3 of female students at Dongduk Girls` High school were beneficiaries of female secondary education that only top 1% Korean female students could ge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due to the wealth of their parents who were engaged in modem capitalist occupations, and were open to and supportive of the education of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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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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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명숙, "일제강점기 학적부 양식의 변화로 본 식민지 교육의 실상 — 동덕여고 학적부(1914-1945)를 중심으로 —" 한국사상문화학회 (87) : 125-157, 2017

      7 박철희, "일제강점기 인문중등학교 졸업생의 진로를 통해 본 식민교육의 차별성" 한국교육사회학회 13 (13): 109-13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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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김명숙, "일제 강점기 조선인 여학교와 재조선 일본인 여학교의 특성 비교 연구 – 동덕⋅수원고녀 학적부를 중심으로 –" 한국사상문화학회 (76) : 103-134, 2015

      10 박철희, "일제 강점기 여자고등보통학교 교육 기회 분배와 졸업생 진로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사학회 28 (28): 47-7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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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玄敬美, "식민지 여성교육 사례 연구 :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서울大學校 大學院 1998

      12 박지향, "사회비평 1" 나남 1988

      13 이경숙, "모범인간의 탄생과 유통 : 일제시대 학적부 분석" 한국교육개발원 34 (34): 217-23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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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동아일보"

      16 동덕오십년사편찬위원회, "동덕오십년사" 한국인쇄주식회사 1960

      17 "동덕여학교·동덕여고보·동덕고녀 학적부(1914-1945)"

      18 동덕100년사편찬위원회, "동덕 100년사 자료집Ⅰ-1908~1914" 책과 함께 2009

      19 박선미, "근대여성 제국을 거쳐 조선으로 회유하다-식민지 문화지배와 일본유학" 창비 2007

      20 김명숙, "근대 여성교육과 동덕" 15 : 2010

      21 박경, "개화 지식인들의 조혼(早婚)에 대한 인식- 『독립신문』의 논설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사학회 (16) : 69-96, 2012

      22 동진회, "同門修德이여 영원하라-동덕100주년기념문집 1910~2010-" 경희교육컴퍼니 2010

      23 정임순, "同門修德이여 영원하라-동덕100주년 기념문집 1910-2010-" 2010

      24 김명숙, "1943-1945년 수원공립고등여학교 학적부 분석— 일제 강점기 한일공학의 특징을 중심으로 —" 한국사상문화학회 (73) : 163-194, 2014

      25 윤지현, "1920~30년대 서비스직 여성의 노동실태와 사회적 위상" 한국여성사학회 (10) : 93-139, 2009

      26 신남주, "1920년대 지식인 여성의 등장과 해외유학" 한국여성사학회 (3) : 1-75, 2005

      27 김월순, "1920년대 여자고등보통학교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교육대학원 2004

      28 박철희, "1920-30년대 고등보통학생집단의 사회적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사학회 26 (26): 97-1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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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 0.5 0.5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56 1.5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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