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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기 번역관의 신설과 운영 =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and Organization of Translator System during the Open Port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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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85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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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background of establishing an official translator system in the period of Port Opening and how to run that system. Since the period of Port Opening, I tried to study the situation to meet the need of ti...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background of establishing an official translator system in the period of Port Opening and how to run that system. Since the period of Port Opening, I tried to study the situation to meet the need of times which the system of translator had to be set up and the effort of how much they tried to train competent people in the Western oriented international changing order.
      In the Eastern Asian order focused on Ming and Qing, Chosun which developed the diplomatic relation got busy to contact with Western countries and had a growing interest in translating and interpreting. Thus the government of Dynasty made a try to establish the education institute like Dongmoonhak(a government school for training official English interpretator) or Yookyoungongwon(the Royal English School) to teach a foreign language and they tried to raise up talented people. Moreover, talent who were trained at this institute were recruited as translator, had a plan to use negotiating the foreign policy.
      Chosun’s translators appeared around times of turning out Dongmoonhak’s graduates from 1885(the 22th year of Gojong who was Chosun’s King). They were deployed for Western officers, Maritime Customs and diplomatic officers to be appointed in Chosun newly. They spoke English, Russian, Japanese, made a difference from the previous translators. Also, because they belonged to Tongrikoysubtongsangsamuamun (that was the foreign office), but the previous translators belonged to Sayeokwon, they had a difference to play their roles. They translated papers and interpreted basically, and also did a foreign policy.
      But, Translators were not served as a higher position in the system. They were appointed as from 9th to 5th Pooms which was a lower position, routinized to work for a long-term, even if they had 30 month-term. It could be known that Chosun’s awareness about translating was still lower than now, considering the point that they also was not excepted even if their major were a western language.
      There were three types of translator to be appointed as an official. The first type was those who graduated from Dongmoonhak or Yookyoungongwon. They studied English and were majorities of translators. The 2nd type was Japanese translators, and was able to do activities of translating with the base of prominen tability of Japanese language. The 3rd type was people who came from the area near to foreign country, those who studied oversea, or those who learned a foreign language to contact with foreigners.
      By the way, most of translators had experienced the Western culture directly or indirectly. They also had aimed at the Westernization better than their tradition. It was encouraging cases with the point of that time that somebody among Yangban class had entered into the translating job, free from their traditional value. Translators had got to learn a foreign language when they took charge of a foreign policy, or got the opportunity to expand their knowledge through oversea service. Therefore, they had been growing a professional bureaucracy taking charge of diplomacy and modern technology. Besides, some of them introduced scientific technology which was necessary for accepting Western knowledge to Chosun through their translating, sought to Chosun’s civilization, enlightenment, and national prosperity with participating in the activities of Dokribheophoi(Independent Association), contributed to change the traditional order and the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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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개항기 번역관의 제도적 설치 배경과 그 운영을 살펴보는데 주목적이 있다. 개항 이래 서양 중심의 국제질서로의 변화 속에서 번역관이 설치되어야 하였던 시대적 요구와 그...

      본 연구에서는 개항기 번역관의 제도적 설치 배경과 그 운영을 살펴보는데 주목적이 있다. 개항 이래 서양 중심의 국제질서로의 변화 속에서 번역관이 설치되어야 하였던 시대적 요구와 그에 부응하기 위한 통번역 인재 양성 노력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명, 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외교 관계를 전개해 나갔던 조선은 개항 전후 서양과의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서양 언어의 통역 및 번역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동문학이나 육영공원과 같은 외국어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더불어 이곳에서 양성된 인재들을 번역관으로 충원하여 대외 교섭에 활용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번역관은 동문학 졸업생이 배출되는 시기를 전후한 1885년(고종 22)부터 나타난다. 이들은 주로 해관, 해외 주재 공관, 조선에 부임해 온 서양인 고용인들을 위해 배치되었다. 이들은 전공 언어 면에서 영어, 러시아어, 일어를 구사하여, 기존의 역관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또한 역관들이 사역원 소속이었던 데 비해, 근대적 외교기관이었던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 속하여 있었으므로 기대되는 역할에도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문서 번역과 통역을 기본 업무로 하면서, 대외 교섭상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하지만 번역관들은 제도적으로는 그리 높은 대우를 받는 편은 아니었다. 대체로 9~5품의 중하위 관직에 임용되었으며, 30개월의 임기에도 불구하고 장기 근무가 상례화되어 있었다. 이는 서양어 전공이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여전히 통역이라는 업무에 대한 조선사회의 인식이 매우 낮았음을 보여준다.
      번역관에 임용되는 인물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그중 하나는 동문학이나 육영공원 등의 외국어 교육기관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영어 전공자로서, 번역관 중에 다수를 차지한다. 두 번째는 역관 출신이었다. 이들은 대개 일본어 전공자로, 특출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번역관 활동이 가능하였다. 세 번째는 외국과의 교류 지역 출신, 해외 유학이나 외국인과의 개별 접촉을 통해 외국어를 습득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번역관들은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서양을 체험한 경험이 있었다. 또한 이들은 전통보다는 서구화를 지향하는 인물들이었다. 특히 양반들 중에서도 전통적 가치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번역관에 진출한 사례가 다수 나타나는 것은,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볼 때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번역관들은 대외 실무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서양 외국어를 익히거나 해외 근무를 통해 자신들의 견문을 더욱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따라서 번역관들은 개항기 이후 서구화 과정 속에서 외교 및 근대적 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전문 관료로 성장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그들 중 일부는 서구 지식의 수용에 필수적인 번역을 통하여 과학 기술을 조선에 소개하거나, 독립협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추구하며, 전통질서나 체계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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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하지연, "한말 한서 남궁억의 정치, 언론 활동 연구" 이화사학연구소 (31) : 103-1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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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2-26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KCI등재
      2016-02-03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
      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KCI등재
      2015-10-22 학회명변경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
      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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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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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7 0.27 0.3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5 0.33 1.024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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