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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國婚과 安東 金門 家勢 = Royal marriage and the fortune of the Andong Kim’s family in 19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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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0228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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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세기 순조∼철종대에 치러진 왕실의 국혼은 안동 김문과 관계되어 있었다. 헌종과 철종의 왕비가 모두 안동 김문 출신으로 헌종비 효현왕후는 김조근, 철종비 철인왕후는 김문근의 딸이었다. 순조대 치러진 순조 공주들의 혼인도 부마를 안동 김문에서 간택하거나, 안동 김문의 외손과 치러졌다. 순조의 장녀 명온공주는 김상용 계열 김한순의 아들 김현근과 혼인하였다. 차녀 복온공주는 김연근의 아들 김병주와 혼인하였다. 삼녀 덕온공주는 윤의선과 혼인했는데, 그는 김이위의 외손이었다.
      효현왕후와 철인왕후는 순원왕후의 9촌 조카이며, 수렴청정기에 간택되었다. 이는 순원왕후가 안동 김문이 외척으로 가세를 유지하기를 희망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안동 김문에서는 연이어 국구가 나왔고, 세도정치기라는 특성과 함께 세도가문의 지위를 지속할 수 있었다. 여기에 왕비 간택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순조의 공주들이 안동 김문과 혼인을 맺은 것은 안동 김문이 최고라는 가문의식, 유사시 공주를 매개로 척신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여기에 본종내로 공주를 출합시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순원왕후의 뜻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왕실과 국혼을 맺은 외척, 척신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와 지위를 받게 되었다. 왕비의 부모와 선조들에게는 봉작과 추증이 이루어졌고, 국구는 비변사당상이 되어 정국운영에 참여하였다. 여기에 군문대장으로 군권을 장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반면 공주와 가례를 치른 부마가문은 정치적인 대우나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공주에게 주어진 공주방이 부마 가문으로 세습이 되므로 경제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안동 김문은 19세기에 연이어 왕비를 배출하고, 공주와 국혼을 통해 척신의 지위도 확보하였다. 당시 세도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왕비의 배출이었고, 순조, 헌종, 철종의 왕비는 모두 안동 김문 출신이었다. 한 가문에서 3대에 걸쳐 왕비를 배출한 것은 조선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이를 통해 안동 김문은 외척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절정은 철종대로, 철종에 의해 순원왕후가 존숭되고, 안동 김문과 그 선대들에 대한 추증과 포상이 이루어졌다. 안동 김문 구성원들이 재상을 차지하고, 비변사를 주도하게 됨으로써 정치적으로도 이들은 정국의 실세가 될 수 있었다. 이토록 안동 김문의 가세와 위상이 상승한 데에는 가문 자체의 우수정도 배제할 수 없지만 세도정치기에 외척을 양산해낸 순원왕후의 영향이 컸으며, 국혼을 통해 안동 김문은 그 가세를 재정립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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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순조∼철종대에 치러진 왕실의 국혼은 안동 김문과 관계되어 있었다. 헌종과 철종의 왕비가 모두 안동 김문 출신으로 헌종비 효현왕후는 김조근, 철종비 철인왕후는 김문근의 딸이었...

      19세기 순조∼철종대에 치러진 왕실의 국혼은 안동 김문과 관계되어 있었다. 헌종과 철종의 왕비가 모두 안동 김문 출신으로 헌종비 효현왕후는 김조근, 철종비 철인왕후는 김문근의 딸이었다. 순조대 치러진 순조 공주들의 혼인도 부마를 안동 김문에서 간택하거나, 안동 김문의 외손과 치러졌다. 순조의 장녀 명온공주는 김상용 계열 김한순의 아들 김현근과 혼인하였다. 차녀 복온공주는 김연근의 아들 김병주와 혼인하였다. 삼녀 덕온공주는 윤의선과 혼인했는데, 그는 김이위의 외손이었다.
      효현왕후와 철인왕후는 순원왕후의 9촌 조카이며, 수렴청정기에 간택되었다. 이는 순원왕후가 안동 김문이 외척으로 가세를 유지하기를 희망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안동 김문에서는 연이어 국구가 나왔고, 세도정치기라는 특성과 함께 세도가문의 지위를 지속할 수 있었다. 여기에 왕비 간택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순조의 공주들이 안동 김문과 혼인을 맺은 것은 안동 김문이 최고라는 가문의식, 유사시 공주를 매개로 척신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여기에 본종내로 공주를 출합시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순원왕후의 뜻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왕실과 국혼을 맺은 외척, 척신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와 지위를 받게 되었다. 왕비의 부모와 선조들에게는 봉작과 추증이 이루어졌고, 국구는 비변사당상이 되어 정국운영에 참여하였다. 여기에 군문대장으로 군권을 장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반면 공주와 가례를 치른 부마가문은 정치적인 대우나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공주에게 주어진 공주방이 부마 가문으로 세습이 되므로 경제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안동 김문은 19세기에 연이어 왕비를 배출하고, 공주와 국혼을 통해 척신의 지위도 확보하였다. 당시 세도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왕비의 배출이었고, 순조, 헌종, 철종의 왕비는 모두 안동 김문 출신이었다. 한 가문에서 3대에 걸쳐 왕비를 배출한 것은 조선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이를 통해 안동 김문은 외척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절정은 철종대로, 철종에 의해 순원왕후가 존숭되고, 안동 김문과 그 선대들에 대한 추증과 포상이 이루어졌다. 안동 김문 구성원들이 재상을 차지하고, 비변사를 주도하게 됨으로써 정치적으로도 이들은 정국의 실세가 될 수 있었다. 이토록 안동 김문의 가세와 위상이 상승한 데에는 가문 자체의 우수정도 배제할 수 없지만 세도정치기에 외척을 양산해낸 순원왕후의 영향이 컸으며, 국혼을 통해 안동 김문은 그 가세를 재정립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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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Heonjong and Cheoljong who had become a king in 19 century had a royal marriage after their enthronement. The wife of Heonjong was the daughter of Kim Jogueon, one of the Kims of Andong clan and the wife of Cheoljong, also one of the Kims of Andong clan, was the daughter of Kim mungeun. Both of them were close relatives of the king’s mother, Queen Sunwon, which meant three of the queens belonged to the same family.
      The princesses of Sunjo got married to the sons of the Kims of Andong clan while Sunjo was holding the reins. The eldest dauhter, Princess Myeongon, had a marriage to the son of Kim Hansun, Kim Hyeongeon, the second daughter, Princess Bogon, to Kim Beyongju, the son of Kim Yeongeon, and the third daughter, Princess Deogon, to the son of Kim Yiwee’s daughter, Yun Uisun. Finally, all of the princesses of Sunjo got married to one of the sons of the Kims of Andong clan or one of its relatives.
      Accordingly, it was the strong influence of Queen Sunwon that all of the princesses had a marriage to the Kims. At that time, the central power in managing the government was under the maternal relatives and Queen Sunwon hoped her own pedigree to keep on taking a power and being in the center of the politics. Furthermore, as Heonjong died without a son as a successor and a family of influence, she had to decide almost all of the important affairs by her own. So, she adopted Cheoljong as her son and had a connection with the Kims through the marriages again. In the end, the Kims of Andong clan came to reestablish and consolidate their status and Queen Sunwon could enforce her power using their political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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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onjong and Cheoljong who had become a king in 19 century had a royal marriage after their enthronement. The wife of Heonjong was the daughter of Kim Jogueon, one of the Kims of Andong clan and the wife of Cheoljong, also one of the Kims of Andong cl...

      Heonjong and Cheoljong who had become a king in 19 century had a royal marriage after their enthronement. The wife of Heonjong was the daughter of Kim Jogueon, one of the Kims of Andong clan and the wife of Cheoljong, also one of the Kims of Andong clan, was the daughter of Kim mungeun. Both of them were close relatives of the king’s mother, Queen Sunwon, which meant three of the queens belonged to the same family.
      The princesses of Sunjo got married to the sons of the Kims of Andong clan while Sunjo was holding the reins. The eldest dauhter, Princess Myeongon, had a marriage to the son of Kim Hansun, Kim Hyeongeon, the second daughter, Princess Bogon, to Kim Beyongju, the son of Kim Yeongeon, and the third daughter, Princess Deogon, to the son of Kim Yiwee’s daughter, Yun Uisun. Finally, all of the princesses of Sunjo got married to one of the sons of the Kims of Andong clan or one of its relatives.
      Accordingly, it was the strong influence of Queen Sunwon that all of the princesses had a marriage to the Kims. At that time, the central power in managing the government was under the maternal relatives and Queen Sunwon hoped her own pedigree to keep on taking a power and being in the center of the politics. Furthermore, as Heonjong died without a son as a successor and a family of influence, she had to decide almost all of the important affairs by her own. So, she adopted Cheoljong as her son and had a connection with the Kims through the marriages again. In the end, the Kims of Andong clan came to reestablish and consolidate their status and Queen Sunwon could enforce her power using their political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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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헌종ㆍ철종의 가례와 왕비 간택
      • 3. 明溫公主ㆍ福溫公主의 嘉禮
      • 4. 안동 김문 가세 재정립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헌종ㆍ철종의 가례와 왕비 간택
      • 3. 明溫公主ㆍ福溫公主의 嘉禮
      • 4. 안동 김문 가세 재정립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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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爛選(奎5898)"

      2 임혜련, "철종대 정국과 권력 집중 양상-임술민란 배경과 관련하여-" 고려사학회 (49) : 121-158, 2012

      3 李坰丘, "조선후기 安東 金門 연구" 일지사 2007

      4 한국역사연구회 19세기정치사연구반, "조선정치사 1800-1863 상・하" 청년사 1990

      5 이종서, "조선 전기와 후기의 혈연의식 비교-‘族’ 관련 용어와 권리의무관계를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8) : 89-110, 2012

      6 이승희, "순원왕후 한글편지" 푸른역사 2010

      7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궁방양안:조선후기∼대한제국기 양안해설집" 민속원 2012

      8 朴齊炯, "近世朝鮮政鑑"

      9 "經國大典"

      10 "福溫公主嘉禮謄錄"

      1 "爛選(奎5898)"

      2 임혜련, "철종대 정국과 권력 집중 양상-임술민란 배경과 관련하여-" 고려사학회 (49) : 121-158, 2012

      3 李坰丘, "조선후기 安東 金門 연구" 일지사 2007

      4 한국역사연구회 19세기정치사연구반, "조선정치사 1800-1863 상・하" 청년사 1990

      5 이종서, "조선 전기와 후기의 혈연의식 비교-‘族’ 관련 용어와 권리의무관계를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8) : 89-110, 2012

      6 이승희, "순원왕후 한글편지" 푸른역사 2010

      7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궁방양안:조선후기∼대한제국기 양안해설집" 민속원 2012

      8 朴齊炯, "近世朝鮮政鑑"

      9 "經國大典"

      10 "福溫公主嘉禮謄錄"

      11 "海平尹氏大同譜"

      12 "朝鮮王朝實錄"

      13 임혜련, "朝鮮後期 憲宗代 純元王后의 垂簾聽政" 3 : 2005

      14 "明溫公主嘉禮謄錄"

      15 "日省錄"

      16 "敦寧譜諜"

      17 "承政院日記"

      18 "憲宗孝顯后"

      19 임혜련, "憲宗初 純元王后 垂簾聽政期의 官人 임용 양상과 權力 關係" 호서사학회 (66) : 209-240, 2013

      20 "安東金氏世譜"

      21 "哲宗哲仁后"

      22 임혜련, "哲宗初 純元王后 垂簾聽政期의 官人 임용 양상과 權力關係" 한국사학회 (110) : 285-326, 2013

      23 "哲仁王后"

      24 "備邊司謄錄"

      25 김명숙, "19세기 정치론 연구" 한양대학교출판부 2004

      26 김세은, "19세기 전반기 국왕의 嘉禮와 그 특징 - 純祖代 ~ 哲宗代를 중심으로 -" 조선시대사학회 (47) : 189-227, 2008

      27 임혜련, "19세기 수렴청정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2008

      28 김문식, "1823년 明溫公主의 가례 절차" 조선시대사학회 (56) : 125-16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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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2-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9-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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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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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8 1.28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89 2.254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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