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사라지고 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막힌 듯 하다 다시 뚫리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유혹의 공간이다. 구불구불 끈도 없이 이어진 산비탈길, 돌과 가마니에 싸인 흙으로 ...
『점점 사라지고 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막힌 듯 하다 다시 뚫리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유혹의 공간이다. 구불구불 끈도 없이 이어진 산비탈길, 돌과 가마니에 싸인 흙으로 이어진 계단들, 버드나무가 서 있던 집 골목, 토끼장처럼 붙어 있던 지붕 낮은집들 - 공지영 ‘봉순이 언니’ 中 발췌 -』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과거 아현동의 골목길과 움푹 패고 깨져버린, 좁지만 삶이 충만했던 계단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그 곳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 사라져 가고 있다.
본 연구는 현대의 도심속에서 이렇게 잊혀져 가는 기억들을, 장소들을 어떻게 보전할 수 없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현대의 도시는 무분별하고 획일화된 개발을 통해, 기존에 형성되어온 장소성은 무시한 채, 어디에나 똑같은 도시 경관을 만들어 놓았다. 특히 노후화된 불량 주거 지구를 정비하여 쾌적한 주거환경으로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재개발 사업은, 대부분 전면 철거에 의한 개발이라는 획일적 방법을 통해 보편화된 공동주택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기존 장소가 갖고 있던 의미와 형태 등 거의 모든 요소들을 상실하게 했으며, 나아가 지역의 정체성 및 인간성의 상실까지도 초래하게 하였다. 또한 과거와 현대를 잇는 유기적인 연속성이 단절되고, 단순히 기능을 위한 공간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주거지내, 특히 공동주택의 외부공간에 장소성을 보전하는 방안을 연구하여 이런 공간들이 인간적인 삶을 담는 장소, 인간이 주체가 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즉, 우리의 삶이 배어 있는 모습을 재현하고, 과거의 흔적들을 복원하여, 과거와 연속되고 정체성이 보전된, 그래서 장소성이 살아 있는 외부공간의 새로운 모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첫째, 공동주택 외부 공간에 있어 장소성 보전을 위한 설계 기법을 도출하고, 둘째, 이를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의 하나인 아현동의 재개발 단지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설계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현실적인 가능성을 검토하고 그 곳만의 특별한 장소성을 가진 외부공간의 틀을 제안하고자 한다.
연구의 진행은 우선 장소성의 개념과 특성을 연구하여 장소성의 전반적인 이론과 주거지에서의 장소적 특성에 대해 고찰하고, 다음으로 우리나라 공동주택의 현황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분석, 장소성 보전을 위한 공동주택 조경설계 대안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이 대안을 계획 단지에 적용하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설계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장소성은 어떤 장소에 대해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형성되어 온 장소 정체성과 장소 애착의 총제적 특질이다. 장소성은 물리적, 사회·문화적, 역사적 요소들을 지니게 되며,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반응하여 그곳만의 특별한 장소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장소성의 구성 요소들은 보존, 보전, 재현이라는 보전의 기법을 통해, 개발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공간에서도 과거로부터의 연속성을 가진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공동주택에 있어 외부공간의 설계는 기존의 장소가 갖고 있던 이러한 장소성을 보전함으로서, 정주 환경에 대한 애착과 주변과의 일체감을 강화하여 장소성을 형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