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倭亂)의 병화(兵火)로 소실된 화엄사는 1630년 중관해안(中觀海眼)에게 『화엄사사적』의 편찬을 요청한다. 이 책은 1636년 완성된다. 그런데 중관(中觀)은 『화엄사사적』의 편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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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Korean
220.1
KCI등재
학술저널
9-46(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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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倭亂)의 병화(兵火)로 소실된 화엄사는 1630년 중관해안(中觀海眼)에게 『화엄사사적』의 편찬을 요청한다. 이 책은 1636년 완성된다. 그런데 중관(中觀)은 『화엄사사적』의 편찬에서, ...
왜란(倭亂)의 병화(兵火)로 소실된 화엄사는 1630년 중관해안(中觀海眼)에게 『화엄사사적』의 편찬을 요청한다. 이 책은 1636년 완성된다. 그런데 중관(中觀)은 『화엄사사적』의 편찬에서, 당시 화엄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후 ‘창건자인 연기(烟起)의 연대’와 ‘화엄사의 개창(開創) 연대’ 등 다양한 문제들이 파생된다. 그러던 것이 1978년 〈백지묵서화엄경(白紙墨書華嚴經)〉이 발견되면서 창건자와 개창 문제가 일단락된다. 본고는 이와 같은 선행연구들을 바탕으로, 연기가 8C 황룡사에 존재했던 자장계통의 화엄사상을 전지한 인물임을 밝혀보았다. 이를 통해 『화엄사사적』에서, 화엄사와 관련해 자장이 요청되는 이유를 판단해 볼 수 있게 된다. 또 『화엄사사적』에서 강조되는 도선(道詵)에 대한 측면도 아울러 정리하였다. 이상을 통해, 『화엄사사적』에서 가장 문제 있는 기록인 자장과 도선의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된다. 또 최초로 자장계통의 화엄사상이 8C 황룡사에 존재했다는 점을 제기했다. 이는 의상계통과는 다른 화엄사상에 대한 정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이러한 자장계통과 의상계통이 화엄사에서 시대에 따라 경쟁하고 충돌했다는 점도 밝혀보았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Restoring the buildings which were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Imjin year, Hwaeomsa Temple asked Junggwan Haean(中觀海眼) to compile Hwaeomsa Sajeok (History of Hwaeomsa) in 1630. This book was completed in 1636. By the way...
Restoring the buildings which were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Imjin year, Hwaeomsa Temple asked Junggwan Haean(中觀海眼) to compile Hwaeomsa Sajeok (History of Hwaeomsa) in 1630. This book was completed in 1636. By the way, while compiling the history book, Junggwan recorded diverse stories being told about Hwaeomsa at that time very confusingly. This has resulted in various problems, such as “the date of founder Yeongi(烟起),” and “the foundation date of Hwaeomsa Temple.” However, with the discovery of 〈Baekji Mukseo Hwaeomgyeong(白紙墨書華嚴經)〉 in 1978, the issue of the founder and foundation date was ended. Thus, the problem of Jajang and Doseon, which was the most problematic record in Hwaeomsa Sajeok, was partially resolved. In addition, it showed for the first time that the Hwaeom ideology of Jajang line existed in Hwangnyongsa Temple in 8C. This is notable in that it was a comment on the Hwaeom ideology different from Euisang line. It also revealed that these Jajang and Euisang lines had competed and clashed at Hwaeomsa Temple over time.
목차 (Table of Contents)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의 공양인물상 검토 – 8세기 중·후반 화엄종의 호남지역 세력 확대와 관련해서 -
세친의 『정토론』이 원효의 『아미타경소』에 미친 영향 - 『정토론』인용구절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