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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하대 國內派 禪僧의 西學認識 = Perception of Seohak(西學) of Home-grown Zen Monks(國內派 禪僧) during the Later Silla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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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later Silla period was a period when studying in the Tang dynasty–Seohak–was dominant in order to accept a new ideology, namely Zen Buddhism. During this period, approximately 60~70% of the monks were monks who had studied abroad ; however, up...

      The later Silla period was a period when studying in the Tang dynasty–Seohak–was dominant in order to accept a new ideology, namely Zen Buddhism. During this period, approximately 60~70% of the monks were monks who had studied abroad ; however, up to 30~40% of monks were home-grown Zen monks. It is necessary to focus on them for understanding the correct positioning of Zen Buddhism history during the later Silla period.
      Home-grown Zen monks dared to insist on “Seohak Bulyoron”(insistence that there is no need for studying in China), which means that “they do not need Seohak” like Sim Hi. Against the backdrop of such an insistence, there was ”Bulbeob Dongryuseol”, which means “essence of Zen Buddhism was moved to Silla”. Of course monks who had studied abroad also asserted “Bulbeob Dongryuseol” ; however, it was home-grown monks who insisted on “Seohak Bulyoron”, which was a further advancement from “Bulbeok Dongryuseol”. Home-grown Zen monks expressed the self-awakening of Haedong(海東) corresponding to China. Also “Seohak Bulyoron” was the response of Zen Buddhism to “Bulguktoseol”(viewing Silla as being deeply related to Buddhism) insisted on by the Gyojong Buddhist circles, and it implied self-awakening and self-confidence of Silla Buddhism against Chinese Buddhism. Furthermore, it was also an assertion of justification as home-grown monks.
      Home-grown Zen monks were a group of Buddhist monks who stuck to the independence of Silla Zen Buddhism during the later Silla period when Seohak was dominant. They insisted that they did not have to go to China to study ; however they were flexible regarding Seohak. “Seohak Bulyoron” was not a ruling perception at that time, and it is fair to point out the limitation that the home-grown monks were a minority. Nevertheless, through them, it is expected that this will provide implications for today's humanities in seeking an alternative to the project of guarding against “reckless globalization” and overcoming “narrow-minded 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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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신라하대에 唐으로부터 전해진 선종은 그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불교사상이었다. 외래의 종교사상은 대체로 전래와 수용, 정착과 확산, 내재화와 재해석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한다. 신...

      신라하대에 唐으로부터 전해진 선종은 그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불교사상이었다. 외래의 종교사상은 대체로 전래와 수용, 정착과 확산, 내재화와 재해석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한다. 신라하대는 선종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기 위한 入唐留學―西學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碑文이나 僧傳 등이 전해지는 30여명의 선승 중에서 대략 60~70%가 유학승이었다. 하지만, 30~40%에 달하는 국내파 선승이 존재했다. 이들은 신라하대 선종사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라하대 국내파 선승들은 審希와 같이 ‘서학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이 표방한 ‘西學不要論’의 근저에는 ‘선종의 精髓가 신라로 옮겨왔다’는 ‘佛法東流說’이 자리하였다. 물론 유학파 선승도 ‘불법동류설’을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불법동류설’에서 ‘서학불요론’으로까지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국내파였다. 이들은 중국에 대응하는 海東에 대한 자각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서학불요론’은 중국불교에 대한 신라불교의 자부심과 국내파로서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국내파는 신라선종의 주체성을 견지한 승려들이라 할 수 있다. 국내파 선승들은 ‘서학불요론’을 내세웠지만, 한편으로는 서학에 대한 유연성도 견지하고 있었다.
      ‘서학불요론’이 당시의 주류적인 인식이 아니었고, 국내파가 선종불교계를 주도하지 못했던 한계는 지적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들의 존재를 통해 ‘무조건적인 세계화’를 경계하고, ‘편협한 국수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오늘날의 인문학이 대안을 모색하는데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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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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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조범환, "羅末麗初禪宗山門開創硏究" 景仁文化社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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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5 0.55 0.4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8 0.47 0.972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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