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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동아시아의 東宮과 신라 東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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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안압지라고 불리던 월성 동북편 연못은 신라 시대 명칭이 月池로서, 그 주변의 건물지는 太子의 居所인 東宮이자 月池宮이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월지와 월지궁을 국왕의 공간...

      안압지라고 불리던 월성 동북편 연못은 신라 시대 명칭이 月池로서, 그 주변의 건물지는 太子의 居所인 東宮이자 月池宮이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월지와 월지궁을 국왕의 공간으로 간주하면서, 태자 거소로서의 동궁은 1호 담장지로 분리되어 월지 동편에 별도로 위치해 있었다는 새로운 해석이 제기되었다. 본고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동궁’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맥락을 점검해 봄으로써 이 문제에 접근해 보았다.
      계승예정자가 ‘동궁’으로 지칭된 사례는 先秦 시기부터 종종 나타나지만, 원칙은 아니었다. 西漢代에는 동궁이 皇太后의 居所인 長樂宮을 가리키며 그 代稱으로 사용되었다. 계승예정자의 居所가 동궁이어야 한다는 관념은 東漢代를 거치면서 성립하여, 西晉代에 이르러서야 관념과 실제 居所가 일치하게 된다. 그러나 ‘동쪽에 위치한 宮’을 의미하는 동궁의 용례 또한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신라에도 이러한 다양한 용례가 전달되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월지와 주변 건물들을 조영하는 작업은 기존 궁성 중심 구역의 동북쪽에 새로운 궁성을 만들고 園池를 조영했다는 점에서 唐의 大明宮을 연상시킨다. 대명궁의 완공 당시 명칭은 ‘蓬萊池’에서 따온 ‘蓬萊宮’으로서 ‘月池宮’의 작명 방식과 유사하다. 조영 과정에서 禮制的 典範에 대한 인식 하에 왕위계승자의 거소를 동쪽 宮에 위치시키면서, 월지궁은 동쪽의 궁인 동시에 왕위계승자의 거소 ‘동궁’으로서의 의미를 함께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월지에서는 『三國史記』 職官志에 나오는 東宮官 9개 관부 중 8개 관부에 각각 대응되는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太子와의 연관성도 확인된다. 특히 唐이나 日本의 太子·東宮 관부와 달리 신라의 동궁관에는 太子에 대한 보좌·시봉의 성격을 가지는 관서와 宮의 시설물을 관리하는 관서가 함께 배속되어, 신라 동궁의 복합적 성격을 보여준다.
      궁성 중 일부에 계승예정자의 공간을 설정해 주었다고 해서, 그 공간이 왕에 의해 사용될 수 없는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왕과 왕위계승예정자의 공간이 반드시 분리되어야 했던 것 또한 아니다. 唐에서는 太子가 더 이상 동궁에 머물지 않고 少陽院에 거주하게 되는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는 太子의 통제를 위해 ‘황제 침전의 곁’에 거주하게 하는 의미를 가진다. 결국 국왕과 태자의 공간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두고 월지궁과 별도로 동궁을 다른 위치에서 찾아야만 할 당위는 아직 부족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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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ond located northeast of Wolseong, which was called Anapji since Joseon Dynasty, was originally named Wolji during Silla Dynasty. The buildings around it, also known as Wolji Palace, have been considered as the East Palace of Silla owned by the c...

      The pond located northeast of Wolseong, which was called Anapji since Joseon Dynasty, was originally named Wolji during Silla Dynasty. The buildings around it, also known as Wolji Palace, have been considered as the East Palace of Silla owned by the crown prince. However, a new view was raised that Wolji Pond and Wolji Palace were the king’s residences, and that the prince’s East Palace was on the east side of Wolji Pond separated by a wall. This view is based on the premise that the word ‘East Palace’ means only the residence of the crown prince, not the king.
      Even before the Qin Dynasty of China, there were cases where the crown prince was called ‘East Palace’, but it was not a principle. The East Palace in the Western Han Dynasty was residence of the Queen Mother. The idea that the prince should reside in the East Palace was established at Eastern Han Dynasty, and became real at Western Jin Dynasty. But the word ‘East Palace’, which simply meant ‘a palace located in the east’, was also used at the same time. These two meanings would have been known to Silla as well.
      The construction of Wolji Pond and the surrounding buildings was to build a new palace and a huge pond in the northeast of the existing palace area, reminding us of the construction of Tang dynasty’s Daming Palace. The original name of Daming Palace was Penglai Palace, which was derived from Penglai Pond, similar to the Wolji Palace named after Wolji Pond. During construction, the idea that the crown prince should live in the East Palace was applied, and the prince was decided to reside in that palace. Eventually, Wolji Palace came to have a complex character of ‘the (king’s) palace in the east’ and ‘the residence of the prince’. Many things thought to have been used in the offices of the East Palace were excavated from Wolji Pond, and some were related to the crown prince. Among the offices of the East Palace recorded in Samguksagi, there were offices dedicated to serve the crown prince, and were also some offices that manage the facilities of the palace, reflecting the complex character of Silla’s East Palace.
      In the Ancient East Asia, the prince’s residence was not an exclusive space that the king could not use. The space used by the king and the prince did not necessarily have to be separated. In the Tang Dynasty, there was a change in which the crown prince no longer resided in the East Palace, but instead resided in the Shaoyangyuan near the emperor’s bedroom. It is not necessary to search Wolji Palace and the East Palace in different places under the premise that the space of the king and the crown prince must have been sepa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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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 초록
      • I. 東宮과 月池, 그리고 月池宮
      • II. 계승예정자와 그 居所로서의 東宮
      • III. ‘동쪽 宮’으로서의 東宮
      • IV. 신라 동궁의 복합적 성격
      • 국문 초록
      • I. 東宮과 月池, 그리고 月池宮
      • II. 계승예정자와 그 居所로서의 東宮
      • III. ‘동쪽 宮’으로서의 東宮
      • IV. 신라 동궁의 복합적 성격
      • V. 帝王과 계승예정자의 공간 공유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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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전덕재, "한국과 동아시아 동궁 연구" 역사산책 2018

      2 장영기, "조선후기 輪對 정례화와 宮闕殿閣 運營 - 숙종~정조대를 중심으로 -" 한국학연구소 34 : 761-793, 2010

      3 최재영, "장안은 어떻게 세계의 수도가 되었나" 황금가지 2006

      4 이근우, "영의해 역주 . 상, 하" 세창출판사 2014

      5 김택민, "역주 당육전(상)" 신서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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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추만호, "심원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의 금석학적 분석" 1 : 1991

      8 김병곤, "신라 헌덕왕대의 副君 秀宗의 정체성과 太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55) : 183-223, 2013

      9 김병곤, "신라 東宮의 역할과 영역 - 임해전 및 안압지와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 : 75-107, 2015

      10 전덕재, "신라 東宮의 변화와 臨海殿의 성격" 한국사학회 (127) : 5-5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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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장영기, "조선후기 輪對 정례화와 宮闕殿閣 運營 - 숙종~정조대를 중심으로 -" 한국학연구소 34 : 761-793, 2010

      3 최재영, "장안은 어떻게 세계의 수도가 되었나" 황금가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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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전덕재, "신라 東宮의 변화와 臨海殿의 성격" 한국사학회 (127) : 5-5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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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7-07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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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69 1.69 1.8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64 1.57 3.463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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