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이필우는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인물 중 한명이다. 이기세의 연쇄극 <지기>의 촬영을 맡음으로써 최초의 한국인 촬영기사로 기록된 그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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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orean
이필우 ; < ; 동도> ; < ; 석양의촌> ; 통영청년단 ; 헨리 고타니 ; < ; 지기> ; Lee Phil-woo ; < ; Way Down East> ; < ; Yuhi no mura> ; The Tongyeong Youth Corps ; Henry Kotani ; < ; Jigi> ; Cinematographer
KCI등재
학술저널
233-257(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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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일제강점기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이필우는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인물 중 한명이다. 이기세의 연쇄극 <지기>의 촬영을 맡음으로써 최초의 한국인 촬영기사로 기록된 그는 19...
일제강점기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이필우는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인물 중 한명이다. 이기세의 연쇄극 <지기>의 촬영을 맡음으로써 최초의 한국인 촬영기사로 기록된 그는 1935년에는 한국 최초의 토오키 영화인 <춘향전>의 녹음을 담당하여 한국에서 토오키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필우의 생애와 그 활동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연구물의 대부분은 1968년 영화사 연구자 이영일이 인터뷰한 내용이 토대가 되었다. 이영일이 채록한 이필우의 구술증언은 가공되지 않은 이필우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꺼낸, 실타래처럼 엉킨 기억을 역사 서술의 재료로 이용할 때에 연구자는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다시 말해 실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필우의 증언을 이용하여 서술한 연구의 대부분이 실증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시간 순서의 오류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치 판단의 오류, 더 나아가 역사 서술의 오류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영일이 녹취한 이필우의 증언을 중심으로 이필우의 초기 행적을 재구성해 보았다. 그 검토 대상은 1. 보성학교와 도쿄의 금성중학 수학, 2. 일본의 촬영소 생활, 3. 그 동안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았던 통영청년단의 순회상영 활동, 4. 쇼치쿠 제작의 <석양의 촌>과 재차 도일, 5. 미국영화 <동도>의 조선에서의 흥행과 관청에서 의뢰한 영화의 제작 등 1924년 <장화홍련전>의 촬영을 맡기 이전까지의 행적을 조사했다.
이 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영화인 이필우의 생애를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밝혀낸다는 측면 외에 초기 한국영화사 연구를 보다 풍부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order to study Korean film history in Japanese colonial era, Lee Phil-woo is the one person that is the most important figures mentioned. By serving Lee Gi-se’s the kino drama <Jigi> shooting, he was recorded as the first Korean cinematogra...
In order to study Korean film history in Japanese colonial era, Lee Phil-woo is the one person that is the most important figures mentioned. By serving Lee Gi-se’s the kino drama <Jigi> shooting, he was recorded as the first Korean cinematographer. In 1935, he recorded Korea’s first talkie film <Chunhyangjeon>, and he played a decisive role for making a talkie film in Korea.
Lee Phil-woo’s interview with Lee Young-il, film history researcher in 1968 offered material for a research on his life and activities. Dictation testimony of Lee Phil-woo that Lee Young Il has accepted is important in terms of talking in Lee Phil-woo’s own voice that has not been processed. However, if researchers use someone’s memories as a material of historical narrative, researchers have a duty to prove that fact. Most studies which have used Lee Pil-woo’s testimony have many problems in terms of demonstration. These problems are not just time order error. It can be developed into error of value judgment, further historical narrative.
In this paper, I tried to reconstruct Lee Pil-woo’s early activities mainly Lee Phil-woo’s testimony was recorded by Lee Young-il. The subjects of the study about school life at Posung Elementary School and Tokyo Kinjo Middle School, a studio life in Japan, The Tongyeong Youth Corps’s cyclic screening, Shochiku production <Yûhi no murâ>, going Japan again, American film <Way Down East>’s success in Korea and the production of films commissioned by a government office. It is about Lee Phil-woo’s early activities before he shooted <Janghwa Hongryeon jeon> in 1924. The fact that it became clear through this survey can clearly put out the life of Lee Phil-woo. And it also can help to enrich the initial Korea film history research.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영일, "한국영화인물열전" 영화진흥공사 1982
2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5
3 정충실, "통영청년단의 순회상영과 관객의 영화관람(1921‒1923)" 한국학중앙연구원 38 (38): 96-120, 2015
4 유선영, "조선영화와 할리우드" 소명출판 2014
5 정종화, "조선 무성영화 스타일의 역사적 연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2012
6 한국예술연구소, "이영일의 한국영화사를 위한 증언록-이필우편" 도서출판소도 2003
7 홍영철, "영화인 故 이필우 선생"
8 한국영화사연구소,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11~1917" 한국영상자료원 2008
9 이순진,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도서출판소도 2006
10 홍영철, "부산근대영화사" 산지니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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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홍영철, "부산근대영화사" 산지니 2009
11 이필우, "나의 인생 나의 보람"
12 "고샹 활동사진"
13 安鍾和, "韓國映畵側面秘史" 현대미학사 1998
14 "靑年團活動寫眞隊"
15 "統營靑年巡廻活動隊"
16 "松竹八十年史" 松竹株式會社 1975
17 "朝鮮映畵登錄技能者名簿"
18 "朝鮮人 飛行家"
19 "時事新聞續刊"
20 "巡廻活動寫眞準備"
21 "京城 各 活動常設館의 映畵 동길爭鬪戰"
22 "http://www.artpusan.or.kr/board/moim00.asp?board_id=a_board3&group_name=board&idx_num=5&page=3&category=&search=&b_cat=0&order_c=idx_num&order_da=desc"
23 "25년 만에 비로소 공개되는 고 이필우 옹의 「영화사」 증언"
24 한상언, "1920년대 초반 조선의 영화산업과 조선영화의 탄생" 한국영화학회 (55) : 649-690, 2013
1960년대 후반 ‘시네 에로티시즘’의 문화 정치적 의미
영화연구 게재논문 투고, 심사(수정), 게재확정일 (한국영화학회 『영화연구』 66호) 외
Renewing Found Footage Filmmaking with Digital Technologies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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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7-09-2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Film Studies Association Of Korea (Fisak) -> Korean Cinema Association (KCA)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6-04-09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영화연구외국어명 : Film Studies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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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8 | 0.58 | 0.5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8 | 0.55 | 1.055 | 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