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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전기 法號의 사용과 그 운영의 특징 = The Features of the Use and Management of Precept Name System during the Early Goryeo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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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89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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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e early Goryeo era, a precept name (beopho) was part of the official status granted to a Buddhist priest, along with the duty and rank of the monk. The presentation of a precept name is related to China's eulogistic title system that included the title of ‘Great Master’ (dashi). However, as greater importance was laid on Goryeo’s own unique Buddhist priest ranks than to the Chinese-style eulogistic titles during the era, precept names and ranks were used in an interconnected way.
      A precept name, or ‘beopho’ was also referred to as ‘beopching’ or ‘uiho’, and had the same significance as ‘hunho’ or ‘gongho’, a title given to those who made great contributions to the nation. Based on the historical sources identified so far, the eligibility for these precept names was limited to Buddhist priests with the rank of ‘daedeok’, which was the lowest, or above. As precept names were sometimes granted to a large number of priests at once, some of them were given the same names while they were active during the same period of time. Also, from the fact that the same precept names were granted at a regular interval, it can be presumed that the state had the principle for the presentation of specific precept names for certain achievements.
      On the occasion of major state rituals such as the enthronement of the king or the appointment of the queen, or a decree of amnesty, government officials were often given awards while Buddhist priests were assigned with official duties or ranks. However, the granting of these rewards was restricted due to the limited numbers of the duties and ranks allowed to monks. On the other hand, precept names did not lead to any major problems even if they were granted many times. As long as the state was willing to create a social atmosphere where monks with a precept name were better treated and those who had been granted several precept names were respected, precept names had significance as an element determining a monk’s 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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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early Goryeo era, a precept name (beopho) was part of the official status granted to a Buddhist priest, along with the duty and rank of the monk. The presentation of a precept name is related to China's eulogistic title system that included the...

      In the early Goryeo era, a precept name (beopho) was part of the official status granted to a Buddhist priest, along with the duty and rank of the monk. The presentation of a precept name is related to China's eulogistic title system that included the title of ‘Great Master’ (dashi). However, as greater importance was laid on Goryeo’s own unique Buddhist priest ranks than to the Chinese-style eulogistic titles during the era, precept names and ranks were used in an interconnected way.
      A precept name, or ‘beopho’ was also referred to as ‘beopching’ or ‘uiho’, and had the same significance as ‘hunho’ or ‘gongho’, a title given to those who made great contributions to the nation. Based on the historical sources identified so far, the eligibility for these precept names was limited to Buddhist priests with the rank of ‘daedeok’, which was the lowest, or above. As precept names were sometimes granted to a large number of priests at once, some of them were given the same names while they were active during the same period of time. Also, from the fact that the same precept names were granted at a regular interval, it can be presumed that the state had the principle for the presentation of specific precept names for certain achievements.
      On the occasion of major state rituals such as the enthronement of the king or the appointment of the queen, or a decree of amnesty, government officials were often given awards while Buddhist priests were assigned with official duties or ranks. However, the granting of these rewards was restricted due to the limited numbers of the duties and ranks allowed to monks. On the other hand, precept names did not lead to any major problems even if they were granted many times. As long as the state was willing to create a social atmosphere where monks with a precept name were better treated and those who had been granted several precept names were respected, precept names had significance as an element determining a monk’s 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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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고려 전기 법호는 僧職이나 僧階와 함께 승려에게 국가가 하사한 공적 지위였다. 고려 전기의 법호는 중국의 ‘師號’가 大師라는 직함과 법호를 하사하는 방식이었던 것과 관련된다.
      다만 고려 전기는 중국식 ‘師號’보다 고려의 독특한 제도인 僧階를 중시했기 때문에 법호와 승계를 연칭하여 사용하였다.
      법호는 法稱이나 懿號로도 불렸으며, 勳號⋅功號와 같은 의미를 가졌다. 현재 확인된 사료에 근거한다면 이들 법호 수여의 대상자는 최하위 승계인 大德 이상이었다. 최소 2자에서 최대 34자의 법호를 하사받은 사례가 있으며, 해당 승려의 덕행을 드러내기 위해 주어졌다고 한다. 한편 다수의 승려에게 일시에 법호가 사여되면서 동일한 법호를 가진 승려가 동시기에 활동하기도 했다.
      국왕의 즉위나 태후의 임명과 같은 국가적 의례 참석자나 사면령이 내려지는 시기에 관료들에 대한 포상과 함께 승려에게는 승계나 승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같은 보상은 한정적인 승계의 단계와 승직의 수 때문에 한계를 가졌다. 반면에 법호는 여러 차례 하사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승계처럼 계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개의 법호를 누적해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승려의 공적 지위를 보증해주었다. 법호가 功號나 勳號와 같은 의미를 가진 만큼 국가에서 하사한 법호의 보유와 누적은 이를 가진 승려의 지위를 보장해주었다. 게다가 특정 법회에 참여한 이에게 특정 법호를 하사하는 방식마저 있었다면, 법호를 통해 해당 승려가 참여한 법회나 공로를 파악할 수도 있어 그의 공로를 확인하는 방법도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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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전기 법호는 僧職이나 僧階와 함께 승려에게 국가가 하사한 공적 지위였다. 고려 전기의 법호는 중국의 ‘師號’가 大師라는 직함과 법호를 하사하는 방식이었던 것과 관련된다. 다만 ...

      고려 전기 법호는 僧職이나 僧階와 함께 승려에게 국가가 하사한 공적 지위였다. 고려 전기의 법호는 중국의 ‘師號’가 大師라는 직함과 법호를 하사하는 방식이었던 것과 관련된다.
      다만 고려 전기는 중국식 ‘師號’보다 고려의 독특한 제도인 僧階를 중시했기 때문에 법호와 승계를 연칭하여 사용하였다.
      법호는 法稱이나 懿號로도 불렸으며, 勳號⋅功號와 같은 의미를 가졌다. 현재 확인된 사료에 근거한다면 이들 법호 수여의 대상자는 최하위 승계인 大德 이상이었다. 최소 2자에서 최대 34자의 법호를 하사받은 사례가 있으며, 해당 승려의 덕행을 드러내기 위해 주어졌다고 한다. 한편 다수의 승려에게 일시에 법호가 사여되면서 동일한 법호를 가진 승려가 동시기에 활동하기도 했다.
      국왕의 즉위나 태후의 임명과 같은 국가적 의례 참석자나 사면령이 내려지는 시기에 관료들에 대한 포상과 함께 승려에게는 승계나 승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같은 보상은 한정적인 승계의 단계와 승직의 수 때문에 한계를 가졌다. 반면에 법호는 여러 차례 하사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승계처럼 계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개의 법호를 누적해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승려의 공적 지위를 보증해주었다. 법호가 功號나 勳號와 같은 의미를 가진 만큼 국가에서 하사한 법호의 보유와 누적은 이를 가진 승려의 지위를 보장해주었다. 게다가 특정 법회에 참여한 이에게 특정 법호를 하사하는 방식마저 있었다면, 법호를 통해 해당 승려가 참여한 법회나 공로를 파악할 수도 있어 그의 공로를 확인하는 방법도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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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王德朋, "金代僧尼名號探析" 黑龙江省社会科学院 (7) : 152-155, 2014

      2 권희경, "고려의 사경" 글고운 2006

      3 박윤진, "고려 후기 ‘師號’의 운영과 그 특징" 역사교육연구회 (139) : 149-173, 2016

      4 黃壽永, "黃壽永全集 4―금석유문" 혜안 1999

      5 "高麗續藏雕造攷⋅新編諸宗敎藏總錄"

      6 南權熙, "高麗時代 記錄文化 硏究" 淸州古印刷博物館 2002

      7 金龍善, "高麗墓誌銘集成"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2012

      8 "高麗史節要"

      9 "高麗史"

      10 박윤진, "高麗前期 ‘賜紫沙門’의 의미와 역할" 한국역사민속학회 (49) : 152-180, 2015

      1 王德朋, "金代僧尼名號探析" 黑龙江省社会科学院 (7) : 152-155, 2014

      2 권희경, "고려의 사경" 글고운 2006

      3 박윤진, "고려 후기 ‘師號’의 운영과 그 특징" 역사교육연구회 (139) : 149-173, 2016

      4 黃壽永, "黃壽永全集 4―금석유문" 혜안 1999

      5 "高麗續藏雕造攷⋅新編諸宗敎藏總錄"

      6 南權熙, "高麗時代 記錄文化 硏究" 淸州古印刷博物館 2002

      7 金龍善, "高麗墓誌銘集成"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2012

      8 "高麗史節要"

      9 "高麗史"

      10 박윤진, "高麗前期 ‘賜紫沙門’의 의미와 역할" 한국역사민속학회 (49) : 152-180, 2015

      11 許興植, "高麗佛敎史硏究" 일조각 1986

      12 趙東元, "韓國金石文大系 1-6" 원광대 출판국 2000

      13 "韓國金石全文"

      14 "阿彌陀經通贊疏"

      15 郭學勤, "論北宋佛道二敎管理制度" 盐城师范学院 33 (33): 23-26, 2013

      16 "東文選"

      17 "朝鮮金石總覽"

      18 "弘贊法華傳"

      19 "大覺國師文集"

      20 "大宋僧史略"

      21 浙江大學韓國硏究所, "十至十四世紀中韓關係史料彙編" 學苑出版社 1999

      22 謝重光, "中國僧官制度史" 靑海人民出版社 1990

      23 "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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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3-17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Korean Cultural Studies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6-18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Culture ->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10-18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민족문화연구 29호 -> 민족문화연구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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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1 0.7 1.385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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