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수는 식민지 시기 조선 지식사회의 중심으로 기능한 조선인 일본 유학생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 토대 자료를 구축하고 교토지역을 중심으로 case study를 진행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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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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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수는 식민지 시기 조선 지식사회의 중심으로 기능한 조선인 일본 유학생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 토대 자료를 구축하고 교토지역을 중심으로 case study를 진행하는 ...
본 연수는 식민지 시기 조선 지식사회의 중심으로 기능한 조선인 일본 유학생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 토대 자료를 구축하고 교토지역을 중심으로 case study를 진행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제국대학은 일본의 근대 아카데미즘의 중추였으며,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지식의 순례에서 종점에 위치한 기관이었다. 경성제국대학 개교(1924)이전에 설립된 도쿄제국대학(1877), 교토제국대학(1897), 도호쿠제국대학(1907), 규슈 제국대학(1911), 홋카이도 제국대학(1918)의 학적부와 유학생 일람을 조사하여 연대별 유학생의 증감, 학문 분야별 분포, 각 제국대학 내에서의 동인 모임 및 해당 지역 유학생 조직과 그 문화실천에 대한 자료를 수집 분류하고 해석할 것이다. 이러한 기초조사를 통해 수합된 테이터를 지식사회학의 맥락에서 해석해 보고 각각의 제국대학생들의 조선으로의 귀환 후의 활동 연구의 자료로 활용할 것이다. 이상의 기본적인 자료수집 및 해석과 함께 Case Study로 교토제국대학 및 교토지역 관공립대학의 조선인 유학생 연구를 병행 실시할 계획이이다. 도쿄제국대학(1887)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교토제국대학(1897)은 제국 아카데미즘의 편제를 양분하면서 지적 권력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도쿄제국대학에 버금가는 규모의 조선인 유학생이 있었으며 식민지 조선사회와 이후 남북한 지식사회에 끼친 영향에서도 도쿄제국대학에 뒤지지 않는다. 일례로, 지금까지 연구된 바 없는 ‘교토제국대학기독교청년회’가 1919년 1월에 간행한 學友지는 교토라는 장소에 바탕한 이동의 정체성 위에서 조선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자료이다. 1919년 1월에 발행된 이 잡지에는 당시 교토의 제3고, 교토제대, 교토제대 대학원(연구실) 및 교토에 거주하고 있었던 다양한 분과학문의 유학생들의 문화인식과 실천이 학술과 문예 형태의 글로 남아 있다. 이 잡지에 글을 남긴 이들의 면면을 일별하면 金雨英(교토제대 법학과 재학, 이후 외무성 관리 및 중추원참의, 나혜석의 남편), 제3고에 재학하고 있던 朴錫胤(이후 도쿄제대 졸업후 조선을 거쳐 만주 민생단에 관여, 만주국 폴란드 총영사, 최남선의 매제), 金在殷(교토제대 사학과, 이후 초대 개성박물관장), 方仁根(교토 거주 제3고 입시준비, 이후 조선문단 창간), 朴璋龍(교토제대 연구실, 이후 베를린 대학 세균학전공), 李甲洙(교토제대 의학부 연구부, 이후 경성제대 강사, 조선의사협회회장, 서울대 교수), 金時斗(교토제대 법학부, 조선총독부 판사), 方遠成(고베 신학교, 독립운동) 등으로 귀국 후 독립운동가에서 총독부 관리까지 조선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으로 활동했다. 이처럼 1919년 1월의 학우지의 필자만을 가늠해 보아도 교토제대라는 제국의 학지를 거쳐간 유학생들이 조선 지식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지도적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교토제대에는 평균적으로 매년 40~50인의 조선인 유학생이 재적하고 있었고, 1923년 “교토제대조선인유학생동창회”가 설립된 후, 1942년에는 그 회원수가 340명에 이르고 있었다. 교토제대 영문과를 졸업한 카프 시인 권환, 교토제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철학연구회와 조선어학회의 주축이었던 최현배, 그리고 일본의 구제고등학교 중 제3고를 졸업하고 도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 및 일본의 각 대학으로 진학한 조선인유학생을 염두에 둔다면 유학과 식민지 조선의 문화생산의 문제가 도쿄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제국대학 및 지역 유학생 집단과 관련되어 논의되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자는 제3고와 교토제대의 학적부를 조사하여 유학생의 정확한 수와 전공, 입학․졸업년도, 활동 등의 자료를 수집할 것이다. 이들의 유학시절과 그 활동, 졸업 후의 진로(귀국 후의 활동) 등을 파악함으로써 그들이 가져온 근대 조선의 지적 패러다임의 생성과 정착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