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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말선초 대중국관계와 국왕시호(國王諡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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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is aim to know the meaning of king’s a posthumous epithet(國王諡號) between Korea and China in early 14th century. The period from late Goryeo to early Joseon was the period of changing in east asia. Goryeo and Joseon had to prepare f...

      This study is aim to know the meaning of king’s a posthumous epithet(國王諡號) between Korea and China in early 14th century. The period from late Goryeo to early Joseon was the period of changing in east asia. Goryeo and Joseon had to prepare for the new world powers, Yuan(元) and Ming(明) dynasty and the new period in the same time. So they quickly took action to the changes of international situation. The king’s a posthumous epithet appeared in the relation between Korea and China in 14th century was a result of this quick action.
      Goryeo strengthened their royal authority. As a result they emphasized the relationship with the emperor of Ming dynasty by King’s a Posthumous Epithet. But Goryeo didn"t requested for it regularly because it was according on the political situation. Joseon used king’s a posthumous epithet as the tool to materialize their ideals. Especially Joseon emphasized The peaceful international order through mutual coexistence based on Confucian thought(事大字小) at relationship with Ming dynasty.
      Ming dynasty also sought the same international order with Joseon. Joseon tried to build the trust with Ming dynasty by show them the image of feudal lord they wanted. For Joseon the king"s a posthumous epithet was important point with showing their trust to Ming dynasty. In this reason Joseon modified and maintained this formality, even though it was different with other east asian countries in the same period.
      even without considering the relation with Ming dynasty, king’s a posthumous epithet was an important formality for Joseon. It’s because Joseon was a country sought the ideal society of confucian. For Joseon the grant of king’s a posthumous epithet, which is symbolizing feudal lord of the emperor of Ming dynasty was important tool to strengthen their legitimacy. In this reason, unlike Goryeo, Joseon asked for king’s a posthumous epithet to China whenever the king died.
      The king’s a posthumous epithet symbolized that Goryeo and Joseon was the vassal status of Yuan or Ming dynasty. But there were also purposes like existence the nation and confucian ideological intention. There was no pluralistic order in this period, but they had to maintain the country and prepare for the new era. It’s the reason we can see the worries of Goryeo and Joseon from the king’s a posthumous epith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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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서론
      • 1. 원 간섭기 대원관계와 국왕시호
      • 2. 원·명 교체기 대명관계와 국왕시호
      • 결론
      • 참고문헌
      • 서론
      • 1. 원 간섭기 대원관계와 국왕시호
      • 2. 원·명 교체기 대명관계와 국왕시호
      • 결론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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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경록, "麗末鮮初 洪武帝의 高麗․朝鮮 認識과 外交關係" 명청사학회 (35) : 1-33, 2011

      2 김경록, "홍무제의 대외인식과 조공제도의 정비" 명청사학회 (37) : 1-31, 2012

      3 보르지기다이 에르데니 바타르, "팍스몽골리카와 고려" 혜안 2009

      4 이규철, "조선초기의 對外征伐과 對明意識"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3

      5 이현욱, "조선초기 보편적 즉위의례의 추구-사위(嗣位)" 60 : 2014

      6 임민혁, "조선의 禮治와 왕권" 민속원 2012

      7 안기혁, "조선시대 국왕행장의 제술과 기능 변화" 8 : 2014

      8 남지대, "조선 태종의 왕위와 왕통의 정당화" 규장각한국학연구원 (63) : 247-276, 2013

      9 구도영, "조선 전기 朝明외교관계의 함수, ‘禮義之國’" 대동문화연구원 (89) : 159-204, 2015

      10 채웅석, "원간섭기 성리학자들의 화이관과 국가관" 한국역사연구회 (49) : 99-1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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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10-05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역사와 현실 -> 역사와 현실
      외국어명 : 미등록 -> YŎKSA WA HYŎN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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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1998-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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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91 0.91 0.8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7 0.92 1.68 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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