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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雲南의 諸葛亮 = Creating History from “Fake” Legend - Nanzhao Kingdom’s Use of Zhuge Liang’s Southern Campaign for Its Conquest of Yongchang(永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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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는 225년에 일어난 諸葛亮의 南蠻 정벌과 그것이 만들어 낸 ‘가짜’ 역사 및 유적과의 관련성에 대한 검토이다. 특히 ‘七縱七擒’의 무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쪽으로 점차 확대되어 간 현상에 주목하였다. 기존 연구를 토대로 제갈량의 남정 노선과 雲南지역에 퍼져있는 제갈량 관련 전설 및 유적에 관하여 검토하였다. 아울러 운남 서부지역과 미얀마 지역으로 관련 전설이 확산되는 역사적 계기로서 南詔國의 존재를 지목하고, 그 관련 기록과 그 연결 지점들을 살펴보았다. 현재의 雲南 保山 지역은 3세기 중반 이후 14세기 후반 明王朝가 진출할 때까지 중국 국가의 행정적 힘이 직접적으로 닿지 못하였다. 그러나 9세기 초반의 기록은 이 지역에 제갈량의 이름을 붙인 城과 제갈량을 제사하는 사당이 존재했음을 전하고 있다. 이 잃어버린 고리를 이어주는 것이 남조국과 大理國의 역사이다. 남조국이 성립하기 이전 따리 지역에는 제갈량의 남정을 자신들의 ‘역사’의 일부로 활용하는 세력이 존재하였다.『張氏國史』로 대표되는 세력이었다. 『紀古滇說集』에 채록된 제갈량 남정 관련 기록의 원본은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諸葛武侯城의 명칭을 사용하고, 그를 숭배하는 祠堂을 유지시킨 남조국의 지배 집단도 이러한 ‘역사’ 서술체계를 용인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남조국의 개창자는 張樂進求가 주재하는 ‘鐵柱祭祀’에 참여하였으며, 『기고전설집』은 장락진구가 그에게 ‘禪讓’했다고 적었다. 특히 8세기 후반 永昌(현 保山) 지역에 진출하여 개발을 시작한 南詔王室의 입장에서 남만 정벌에 성공한 ‘제갈량’의 역사적 권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전설을 만들고, 전설은 다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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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225년에 일어난 諸葛亮의 南蠻 정벌과 그것이 만들어 낸 ‘가짜’ 역사 및 유적과의 관련성에 대한 검토이다. 특히 ‘七縱七擒’의 무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쪽으로 점차 확대...

      이 연구는 225년에 일어난 諸葛亮의 南蠻 정벌과 그것이 만들어 낸 ‘가짜’ 역사 및 유적과의 관련성에 대한 검토이다. 특히 ‘七縱七擒’의 무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쪽으로 점차 확대되어 간 현상에 주목하였다. 기존 연구를 토대로 제갈량의 남정 노선과 雲南지역에 퍼져있는 제갈량 관련 전설 및 유적에 관하여 검토하였다. 아울러 운남 서부지역과 미얀마 지역으로 관련 전설이 확산되는 역사적 계기로서 南詔國의 존재를 지목하고, 그 관련 기록과 그 연결 지점들을 살펴보았다. 현재의 雲南 保山 지역은 3세기 중반 이후 14세기 후반 明王朝가 진출할 때까지 중국 국가의 행정적 힘이 직접적으로 닿지 못하였다. 그러나 9세기 초반의 기록은 이 지역에 제갈량의 이름을 붙인 城과 제갈량을 제사하는 사당이 존재했음을 전하고 있다. 이 잃어버린 고리를 이어주는 것이 남조국과 大理國의 역사이다. 남조국이 성립하기 이전 따리 지역에는 제갈량의 남정을 자신들의 ‘역사’의 일부로 활용하는 세력이 존재하였다.『張氏國史』로 대표되는 세력이었다. 『紀古滇說集』에 채록된 제갈량 남정 관련 기록의 원본은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諸葛武侯城의 명칭을 사용하고, 그를 숭배하는 祠堂을 유지시킨 남조국의 지배 집단도 이러한 ‘역사’ 서술체계를 용인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남조국의 개창자는 張樂進求가 주재하는 ‘鐵柱祭祀’에 참여하였으며, 『기고전설집』은 장락진구가 그에게 ‘禪讓’했다고 적었다. 특히 8세기 후반 永昌(현 保山) 지역에 진출하여 개발을 시작한 南詔王室의 입장에서 남만 정벌에 성공한 ‘제갈량’의 역사적 권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전설을 만들고, 전설은 다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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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how and by whom the ‘fake’ history and relics regarding Zhuge Liang’s Southern Campaign, which historically occurred in 225 AD, were created and became prevalent in current Yunnan and Myanmar areas. Special attention is given to the phenomenon of the shifting locations of ‘The Seven Captures of Meng Huo(七縱七擒).’ The event arguably happened during the Campaign in the Eastern part of Yunnan, but the location of the event gradually moved towards the western part of Yunnan and even further west of modern day Myanmar as time passed.
      Reviewing existing studies, this research first examines that the actual expedition routes of Zhuge Liang is incongruent with the legends and relics related to his campaign in the Yunnan area. In fact, although the current Baoshan area in Western Yunnan enjoyed autonomy with little interference from the Chinese states between the mid-3rd and the late 14th century, records of a castle and shrines dedicated to Zhuge Liang as evidence of Zhuge’s conquest of the region began to appear from as early as the 9th century. Considering that the main arena of Zhuge’s campaign was limited in Eastern Yunnan, such relics and legend in Baoshan had little historical ground and is no more than a “fake” history.
      My study highlights the role played by the Nanzhao (738~937) and Dali (937~1253) Kingdoms in creating such legends and relics in the Baoshan area as an effort to legitimize their power over the region. Even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Nanzhao Kingdom, Zhang lineage, the local power elites of Bai(白) tribe, celebrated Zhuge’s Southern Campaign as part of their ‘history’ in the Dali area by publishing ‘Zhangshi guoshi(張氏國史)’. In the book, they asserted that Zhuge selected Zhang lineage as the ruler of the region. It is even possible that they were responsible for creating the original legend of Zhuge Liang’s Southern Campaign in Baoshan, which first appeared in Ji gudian shuoji(紀古滇說集). Such narrative was actively employed by the royal family of Nanzhao kingdom, who named Zhuge Wuhou(諸葛武侯) castle and maintained the shrine that worshiped Zhuge. In fact, Xinuluo (细奴逻),the founder of the kingdom, allegedly participated in the “ritual ceremony for the iron pillar(鐵柱祭祀)” organized by Zhang Lejinqiu(張樂進求), the last ruler of Bai(白) tribe before Nanzhao kingdom. Jigudianshuoji even argued that Zhang Lejinqiu voluntarily passed his throneto Xinuluo. In doing so, the Nanzhao royal family utilized the “aura” of Zhuge Liang, who successfully conquered the Yunnan area with virtue to strengthen/legitimize their newly established power over the Baoshan area. History created legends, and legends contributed to the creation of a new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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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examines how and by whom the ‘fake’ history and relics regarding Zhuge Liang’s Southern Campaign, which historically occurred in 225 AD, were created and became prevalent in current Yunnan and Myanmar areas. Special attention is given...

      This study examines how and by whom the ‘fake’ history and relics regarding Zhuge Liang’s Southern Campaign, which historically occurred in 225 AD, were created and became prevalent in current Yunnan and Myanmar areas. Special attention is given to the phenomenon of the shifting locations of ‘The Seven Captures of Meng Huo(七縱七擒).’ The event arguably happened during the Campaign in the Eastern part of Yunnan, but the location of the event gradually moved towards the western part of Yunnan and even further west of modern day Myanmar as time passed.
      Reviewing existing studies, this research first examines that the actual expedition routes of Zhuge Liang is incongruent with the legends and relics related to his campaign in the Yunnan area. In fact, although the current Baoshan area in Western Yunnan enjoyed autonomy with little interference from the Chinese states between the mid-3rd and the late 14th century, records of a castle and shrines dedicated to Zhuge Liang as evidence of Zhuge’s conquest of the region began to appear from as early as the 9th century. Considering that the main arena of Zhuge’s campaign was limited in Eastern Yunnan, such relics and legend in Baoshan had little historical ground and is no more than a “fake” history.
      My study highlights the role played by the Nanzhao (738~937) and Dali (937~1253) Kingdoms in creating such legends and relics in the Baoshan area as an effort to legitimize their power over the region. Even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Nanzhao Kingdom, Zhang lineage, the local power elites of Bai(白) tribe, celebrated Zhuge’s Southern Campaign as part of their ‘history’ in the Dali area by publishing ‘Zhangshi guoshi(張氏國史)’. In the book, they asserted that Zhuge selected Zhang lineage as the ruler of the region. It is even possible that they were responsible for creating the original legend of Zhuge Liang’s Southern Campaign in Baoshan, which first appeared in Ji gudian shuoji(紀古滇說集). Such narrative was actively employed by the royal family of Nanzhao kingdom, who named Zhuge Wuhou(諸葛武侯) castle and maintained the shrine that worshiped Zhuge. In fact, Xinuluo (细奴逻),the founder of the kingdom, allegedly participated in the “ritual ceremony for the iron pillar(鐵柱祭祀)” organized by Zhang Lejinqiu(張樂進求), the last ruler of Bai(白) tribe before Nanzhao kingdom. Jigudianshuoji even argued that Zhang Lejinqiu voluntarily passed his throneto Xinuluo. In doing so, the Nanzhao royal family utilized the “aura” of Zhuge Liang, who successfully conquered the Yunnan area with virtue to strengthen/legitimize their newly established power over the Baoshan area. History created legends, and legends contributed to the creation of a new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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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초록
      • 1. 머리말
      • 2.『삼국지』와 『삼국지연의』의 ‘남만 정벌’ 노선
      • 3. ‘역사’의 기념과 창조: 운남의 제갈량 사적과 전설
      • 4. 또 다른 기록들: 제갈량 전설과 ‘白國’, 그리고 南詔國
      • 초록
      • 1. 머리말
      • 2.『삼국지』와 『삼국지연의』의 ‘남만 정벌’ 노선
      • 3. ‘역사’의 기념과 창조: 운남의 제갈량 사적과 전설
      • 4. 또 다른 기록들: 제갈량 전설과 ‘白國’, 그리고 南詔國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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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문경, "삼국지의 세계: 역사의 이면을 보다" 사람의무늬 2011

      2 정 면, "남조국의 세계와 사람들: 8-9세기 동아시아의 서남 변방" 선인 2015

      3 姜 南, "雲南诸葛亮南征传说研究" 民族出版社 2013

      4 [唐]樊綽, "雲南志補注" 雲南人民出版社 1995

      5 方國瑜, "雲南史料叢刊 第2卷" 雲南大學出版社 1998

      6 川野明正(Kawano Akiamsa), "雲南の歴史 アジア十字路に交錯する多民族世界" 白帝社 2013

      7 薛 琳, "關於諸葛亮南征的主戰場" (S1) : 2001

      8 彥 鋒, "象明“孔明山”的傳說" 2005

      9 姜 南, "诸葛亮南征线路考" 2013

      10 江應樑, "諸葛亮與雲南西部邊民" (6) : 42-53, 1939

      1 김문경, "삼국지의 세계: 역사의 이면을 보다" 사람의무늬 2011

      2 정 면, "남조국의 세계와 사람들: 8-9세기 동아시아의 서남 변방" 선인 2015

      3 姜 南, "雲南诸葛亮南征传说研究" 民族出版社 2013

      4 [唐]樊綽, "雲南志補注" 雲南人民出版社 1995

      5 方國瑜, "雲南史料叢刊 第2卷" 雲南大學出版社 1998

      6 川野明正(Kawano Akiamsa), "雲南の歴史 アジア十字路に交錯する多民族世界" 白帝社 2013

      7 薛 琳, "關於諸葛亮南征的主戰場" (S1) : 2001

      8 彥 鋒, "象明“孔明山”的傳說" 2005

      9 姜 南, "诸葛亮南征线路考" 2013

      10 江應樑, "諸葛亮與雲南西部邊民" (6) : 42-53, 1939

      11 馬 強, "諸葛亮崇拜與古代蜀漢地區的民間信仰" 2002

      12 雷 勇, "諸葛亮崇拜的文化心理透視" 2000

      13 陳 芳, "諸葛亮南征遺存現狀考察及相關討論" 2016

      14 李巧思, "諸葛亮南征行程及其它" 1999

      15 方國瑜, "諸葛亮南征的路線考說" 1980

      16 向文斌, "諸葛亮南征對雲南的影響" 2010

      17 傅光宇, "諸葛亮南征傳說及其在緬甸的流播" 1995

      18 艾 芳, "諸葛亮南征傳說中的崇拜現象和民間文化傳統" 2008

      19 塗東霞, "諸葛亮南征中的“不毛”之地是指哪里?" 1991

      20 渡辺義浩, "諸葛亮像の変遷" 37 : 35-70, 1998

      21 [東晉]常璩, "華陽國志校補圖注" 上海古籍出版社 1987

      22 정면, "爨蠻’의 출현과 구성 ― ‘西爨白蠻’과 ‘東爨烏蠻’의 구분 문제 ―" 중국고중세사학회 (23) : 247-304, 2010

      23 李福清, "漢族及西南少數民族傳說中的諸葛亮南征" 1992

      24 조법종, "滿洲지역 地方志에 나타난 한국고대사 -遼寧省地域 자료소개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88) : 209-256, 2017

      25 陳 芳, "淺談雲貴川舊志所載蜀漢南征之遺存" 2014

      26 滕蘭花, "歷史與記憶: 從明代雲南武侯祠看諸葛亮南征" 2010

      27 [唐]房玄齡, "晉書" 中華書局

      28 梅錚錚, "昭覺蜀漢軍屯遺址應爲諸葛亮“軍卑水”的指揮部考論" 2014

      29 [北宋]宋祁, "新唐書" 中華書局

      30 尹晏辰, "攬奇探幽孔明山" 2003

      31 江玉祥, "從諸葛亮南征四郡談“不毛之地”" 1988

      32 정면, "後漢代 南夷 지역의 邊郡 지배와 ‘南中’·‘南人’ 개념의 출현" 중국사학회 (49) : 115-150, 2007

      33 方櫻櫻, "巴蜀諸葛亮崇拜研究——以≪蜀中廣記≫爲據" 2014

      34 [淸]章學誠, "學術筆記叢刊 乙卯箚記 丙辰箚記 知非日札" 中華書局 1986

      35 肖進原, "孔明山考察記實" 1987

      36 雷傑龍, "孔明山——點擊幾個關鍵詞" 2006

      37 大理州文聯編, "大理古佚書鈔" 雲南人民出版社 2001

      38 谷躍娟, "南诏对寻传及银生地区的经营及利益趋向" 2007

      39 楊仲錄, "南詔文化論" 雲南人民出版社 1991

      40 李霖燦, "南詔大理國新資料的綜合硏究(中央硏究院民族學硏究所專刊之九)" 中央硏究院民族學硏究所 1967

      41 常崇宜, "元代散曲中的諸葛亮——兼談元雜劇中的三國戲" 2005

      42 [西晉]陳壽, "三國志" 中華書局

      43 羅開玉, "三國南中與諸葛" 四川科學技術出版社 2014

      44 山田敦士, "スガリの記憶-中國雲南省․ワ族の口頭傳承" 雄山閣 2009

      45 野上裕子, "『三国志演義』における軍師としての諸葛亮について: 七縦七擒の場面を中心として" 25 : 47-60, 1999

      46 唐述壯, "≪南詔野史≫“諸葛”類古跡考證" 2016

      47 정면, "‘大封民國’과 ‘白國’ - 南詔・大理 시기 ‘雲南史’ 서술과 자기인식" 인문과학연구소 (45) : 75-115, 2016

      48 최선아, "<大理國梵像卷>과 眞身觀音" 한국미술사학회 290291 (290291): 201-23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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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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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9 0.29 0.3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7 0.42 0.818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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