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의 목적은 삼국시대 나주를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 세력의 동향을 살피는데 있다. 그 결과 백제의 남정 이후 영산강 유역 세력이 대두되며, 특히 나주 지역에는 적어도 군 이상의 관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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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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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삼국시대 나주를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 세력의 동향을 살피는데 있다. 그 결과 백제의 남정 이후 영산강 유역 세력이 대두되며, 특히 나주 지역에는 적어도 군 이상의 관청이 ...
본고의 목적은 삼국시대 나주를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 세력의 동향을 살피는데 있다. 그 결과 백제의 남정 이후 영산강 유역 세력이 대두되며, 특히 나주 지역에는 적어도 군 이상의 관청이 설치될 정도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백제 진출 이전에 전남 일대는 가야, 왜로 이르는 교역로가 중시되어 서남해안 일대에 위치한 신운신국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중국 군현의 교역로가 붕괴됨에 따라 영산강 하류 지역과 밀접한 신미국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산강유역 일대를 통합하면서 교역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백제 근초고왕의 남정 이후에는 백제 중심의 교역로로 재편되면서 영산강 하류 지역이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영산강 유역 세력의 성장과 이들을 통한 백제의 지배 정책이 서로 부합된 것이다. 영산강 유역에서는 처음 초입에 해당하는 영암 지역이 부상하였다. 이어 영산강 상류와 연결되는 나주 지역이 중시되면서 반남 지역으로 중심권이 이동하였다. 다만 반남은 삼포천 중심의 영암과 나주 지역의 통합에 불과하였다. 이에 영산강 본류 지역인 복암리 일대가 점차 부상하면서 영산강 유역 전체를 통괄하기 시작하였다. 백제 또한 복암리 세력을 통해 영산강 일대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 지원하였다. 이처럼 복암리 세력은 영산강 유역권의 성장과 통합, 그리고 백제의 필요에 의해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비시기인 7세기 초반 복암리 지역의 위상은 이곳에서 출토된 목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를 분석한 결과 백제시대 두힐이라 불린 복암리 지역은 반나와 군나를 관할하는 군이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두힐은 백제 때현 단위가 관아가 있었던 기록도 있고, 웅진도독부 시절에는 대방주의 치소였다. 이를 통해 州治와 郡治, 縣治 등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동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사비시기 복암리 지역은 최소한 군치가 확인되는 위상이 높은 곳이었으며, 백제의 영산강 유역 지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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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trend of forces located at Yeongsan river basin around Najoo in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It can be found that as the forces at Yeongsan river became influential after the southern conquest of Baekje, Na...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trend of forces located at Yeongsan river basin around Najoo in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It can be found that as the forces at Yeongsan river became influential after the southern conquest of Baekje, Najoo areas were emphasized enough to establish a government office, at least above an gun(郡) level in them. Before Baekje advanced, the whole place of Jeonnam gave an emphasis on some trade routes, so Sinunsinguk located at the coast of the southwest was a center in it. Then, Sinmiguk which was close to the downstream of Yeongsang river became stronger. After the southern conquest by Guenchogo-king, as the trade routes were rearranged around Baekje, the hegemony for the downstream of Yeongsan river was acquired by it. In the basin of Yeongsan river, as the Yeong-am, the entrance of the river became prominent and the Najoo area which was gradually connected with the upstream was emphasized, the center shifted to the Bannam area. Next, as the whole place of Bogam-ri, the mainstream of Yeongsan river was gradually developed, entire basin of the river began to be governed by it. Baekje also actively supported the Bogam-ri forces, because it could indirectly dominate the whole place of Yeongsan river through them. The status of Bogam-ri called Duhil at the early 7th century, the period of Sabi can be found through some wood tablets excavated in the area. They are analyzed to find that Ban-na and Gun-na fell under the jurisdiction of an army established in the Bogam-ri area. Thus, it can found that the status of Bogam-ri area in the period of Sabi was high in that at least the control by army is verified in it, and that Baekje was closely related with dominance for the basin of Yeongsan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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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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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6-06-1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 -> 역사학연구 | |
2006-03-21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회 -> 호남사학회영문명 : Chonnam Historical Association -> Honam Historical Association |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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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8 | 0.68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3 | 0.6 | 1.183 | 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