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국가인 조선시대 역사기록은 왕조중심으로 씌어졌고 자신이 속한 왕조의 입장에서 씌어질 수밖에 없었다. 길재는 왕조초기의 추숭, 사림시대도통의 제2인자로의 옹립과 추숭, 그리고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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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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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은 ; 길재 ; 추숭 ; 역사기록 ; 남효온 ; 이황 ; 정경세 ; 안정복 ; Ya-eun ; Kil-Jae ; praise ; historical documents ; Nam Hyo-on ; Lee Hwang ; Ahn Jung-Bok ; Jung Gyung-se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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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31-54(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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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국가인 조선시대 역사기록은 왕조중심으로 씌어졌고 자신이 속한 왕조의 입장에서 씌어질 수밖에 없었다. 길재는 왕조초기의 추숭, 사림시대도통의 제2인자로의 옹립과 추숭, 그리고 18...
유교국가인 조선시대 역사기록은 왕조중심으로 씌어졌고 자신이 속한 왕조의 입장에서 씌어질 수밖에 없었다. 길재는 왕조초기의 추숭, 사림시대도통의 제2인자로의 옹립과 추숭, 그리고 18세기 왕들과 서민교화의 전범으로서의 추숭 등 조선 전시대에 걸쳐 절대적인 추숭을 받았다. 남효온, 박세채 등에 의해 은연 중에 신씨를 섬긴 인물, 삼년상을 치를 필요 없는 스승에 대해 삼년상을 행한 인물 등으로 평가받기도 했으나 이런 논란에 대해서도 이황, 정경세, 안정복 등 당대 인사들로부터 옹호를 받았다. 이황은 공민왕이 우왕을 후계로 인정하였으므로 신씨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였고, 정 경세는 신씨설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였으며, 안정복은 신씨라는 설에 대해 논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신씨설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나아가 길재와 정몽주와 같은 위인이 섬겼다면 신씨일리 없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신씨 조작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본고에서는 길재 절의 추숭에 대한 시대적 변모를 정리했을 뿐 아니라 길재의 절의에 대한 논란을 통해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역사기록의 한계, 세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역사기록의 맹점 등을 극복하는 과정도 확인할수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uilt on the ideas of Confucianism, Chosun and it’s historical records were written around the kings. The historical records were only possible to be written in the perspective of the king during the time of documentation. It would not be considered...
Built on the ideas of Confucianism, Chosun and it’s historical records were written around the kings. The historical records were only possible to be written in the perspective of the king during the time of documentation. It would not be considered overly exaggerated to state that Gil-Jae was praised after his death without further questioning during the entire Chosun Dynasty. Gil-Jae has been posthumously praised and enthroned as second-in-command of the Do-tong during the era of the Confucian scholars. He was also recognized after his death during the early years of Chosun, and recalled by his reformation act of the people and the kings during the 18th century. On the contrary, Kil-Jae was also denounced by critiques. He was well-known for serving Shin through Nam Hyo-on, Park sae-chae, etc and mourning a teacher, who did not need to be recognized as a person of a third year memorial service, for three years. However, even after the negative judgements, the most recognized and eminent persons during the times of Chosun such as Lee Hwang, Ahn Jung-Bok, Jung Gyung-se, etc appraised that Kil-Jae should be highly respected by his fidelity to principle, integrity and honor. Lee Hwang stated that King Gong-min has accepted King Woo as his successor and Jung Kyung-se announced that there are many who are doubtful towards the rumors of Shin. Ahn Jung-bok wanted more comments and further discussions regarding the rumors of Shin and heavily criticized such rumors. Ahn Jung-bok added his indication that if great men like Kil-Jae and Jung Mong-Joo served as followers, it would not have been Shin; Ahn empowered Shin’s fabricated story. This research will discuss the Kil-Jae’s posthumous praises about his fidelity to principle, integrity and honor have changed through time and the process of overcoming the limitations, the affect of loopholes through different social conditions, etc of historical documents by looking into the arguments and controversies of Kil-Jae’s fidelity.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안장리, "한국의 팔경문학" 집문당 2002
2 한스 프랑켈, "중국의 역사인식, 상" 창작과 비평사 1985
3 심영환, "조선초 吉再의 추증과 <追贈牒>의 復元" 포은학회 7 : 33-66, 2011
4 조남욱, "조선조 초기 정몽주·길재 표창과 그 의의" 한국유교학회 (49) : 5-33, 2012
5 "조선왕조실록"
6 김훈식, "조선 후기의 吉再 追崇과 백성 교화 - 烈女 藥哥 이야기를 중심으로" 부산경남사학회 (92) : 73-104, 2014
7 조광조, "정암집"
8 이장희, "여말선초의 선비군과 길재의 위상" 한국사상사학회 4-5 : 1993
9 길재, "야은집"
10 김훈식, "야은 길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 의미"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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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박세채, "남계집"
12 이태진, "길재 충절 추숭의 시대적 변천" 한국사상사학회 4 · 5 : 3-,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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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國譯 冶隱集" 1980
15 최영성, "冶隱 吉再와 그 門生들의 도학사상" 한국학연구원 (45) : 109-146, 2011
16 남재철, "冶隱 吉再에 對한 歷代 讚詠詩 檢討(I)-太宗朝 諸賢의 讚詠詩를 中心으로-"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42 (42): 31-64, 2015
17 남재철, "冶隱 吉再에 對한 歷代 讚詠詩 檢討(Ⅱ) - 15C 後期에서 17C 前期 사이의 作品 中心으로" 인문과학연구소 37 (37): 15-49, 2016
18 "『국역 추강집』(남효온), 『국역 포저집』(조익), 『국역 순암집』(안정복),고전번역서"
19 안장리, "『東文選』의 選文意識에 나타난 문학의 개념과 가치" 국제어문학회 (29) : 5-34, 2003
20 김석배, "『冶隱先生行錄』 硏究" 영남문화연구원 (27) : 211-240, 2015
21 김훈식, "15세기 朝家의 吉再 追崇과 인식" 민족문화연구소 (50) : 3-31, 2012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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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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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8 | 0.38 | 0.3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 | 0.47 | 0.8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