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고는 娘城의 위치 비정 및 진흥왕의 낭성 순행 목적과 그 의미, 북한산진흥왕순수비의 건립 연대와 568년 진흥왕의 巡幸路, 新州의 동북 경계의 변화에 대하여 살핀 것이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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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Korean
진흥왕 ; 娘城 ; 娘臂城 ;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 巡幸 ; 新州 ; King Jinheung ; Nangseong(娘城) ; Nangbiseong(娘臂城) ; Bukhansan King Jinheung’s Patrol Memorial Stone ; Patrol(巡幸) ; Sinju(新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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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1-38(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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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娘城의 위치 비정 및 진흥왕의 낭성 순행 목적과 그 의미, 북한산진흥왕순수비의 건립 연대와 568년 진흥왕의 巡幸路, 新州의 동북 경계의 변화에 대하여 살핀 것이다. 『삼국사기...
본 논고는 娘城의 위치 비정 및 진흥왕의 낭성 순행 목적과 그 의미, 북한산진흥왕순수비의 건립 연대와 568년 진흥왕의 巡幸路, 新州의 동북 경계의 변화에 대하여 살핀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娘城은 충주지역에 위치한 지명이었으나, 고려 말기에 옛 琅琊郡과 琅琊國의 영역이 명나라 靑州府에 소속되었던 사실을 감안하여 淸州를 琅城이라 別稱하는 관행이 나타났고, 조선 후기에 琅城을 娘城의 異表記로 이해하면서 娘城 역시 청주의 별호라 부르기도 하였음이 확인된다. 진흥왕은 551년 3월에 娘城에 巡幸하여 소백산맥 이북의 赤城(단양군 단성면)과 國原(충북 충주시)을 새로 신라의 영토로 편제하였음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한편, 한강유역으로의 진출을 도모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였다. 金武力의 관등이 553년(진흥왕 14)에 阿飡이었고, 북한산비와 561년에 건립된 창녕비에 그의 관등이 迊干이었다고 전하는 사실 및 북한산비와 568년에 건립된 마운령비에 진골 출신인 未智의 관등이 모두 大奈末이라 전하는 사실 등을 감안하건대, 북한산비는 568년에 건립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라 판단된다. 마운령비와 황초령비, 북한산비 등에 의거하여, 진흥왕은 568년 8월 21일에 王京을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황초령과 마운령을 순행하였고, 10월 2일 이후에 안변을 떠나 추가령구조곡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이용하여 北漢山(한강 이북의 서울)에 이르렀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후 진흥왕은 북한산에서 충주를 경유하여 계립령을 넘어 의성, 영천 등을 걸쳐 왕경으로 귀환하였다. 553년 이후에 신라는 철원지역까지 新州의 영역을 확장하였다가 590년을 전후한 시기에 娘臂城(경기도 포천시 군내면의 반월산성) 이북의 영토를 고구려에게 빼앗겼으며, 629년(진평왕 51) 8월에 낭비성을 차지하고, 다시 철원지역 등을 新州의 영역으로 편제하였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thesis examines historical research on the location of Nangseong(娘城) and the purpose and meaning of King Jinheung’s Patrol of Nangseong, the year of construction of Bukhansan(北漢山) King Jinheung’s Patrol Memorial Stone, the King Jinh...
This thesis examines historical research on the location of Nangseong(娘城) and the purpose and meaning of King Jinheung’s Patrol of Nangseong, the year of construction of Bukhansan(北漢山) King Jinheung’s Patrol Memorial Stone, the King Jinheung’s route of Patrol in 568, the changes in the northeastern boundary of Sinju(新州). Nangseong in the Samguksagi Sillabongi was a place name located in the Chungju region, but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people began to refer to Cheongju(淸州) as Langseong(琅城), taking into account the fact that the territory of the old Nangya-gun and Nangya-guk belonged to Cheongju-bu(靑州府) in the Ming Dynasty. And it is confirmed that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Nangseong was understood as another spelling of Langseong, Nangseong was also called as another nickname for Cheongju. In March 551, King Jinheung went to Nangseong, proclaiming to domestic and foreign countries that Jeokseong (Danseong-myeon, Danyang-gun) and Gukwon(Chungju-si, Chungcheongbukdo), located north of the Sobaek Mountains, were newly incorporated into Silla’s terri tory, while established a specific strategy to promote advancement into the Han River basin. Considering the fact that Kim Muryeok’s official rank was Achan(阿飡) in 553(the 14th year of King Jinheung’s reign) and his official rank is recorded as Japgan(迊干) on Bukhansan Stele and Changnyeong Stele built in 561, and the fact that it is said that the official rank of Miji, who was of Jingol status, was Daenamal on Bukhansan Stele and Maunryung Stele built in 568,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Bukhansan Stele was built in 568. Based on the Maunryeong, Hwangchoryeong and Bukhansan Stele, we can deduce that King Jinheung departed from the capital(Gyeongju) on August 21, 568, and left Anbyeon after October 2nd and arrived at Bukhansan(Seoul located north of the Han River) by using the transportation route connecting the Chugaryeong Valley. Afterwards, King Jinheung reached Chungju from Bukhansan, and from there, crossed Gyeripryeong, passed through various regions such as Ui seong and Yeongcheon, and returned to the capital. After 553, Silla expanded the territory of Silla to Cheolwon, and around 590, the territory north of Nangbiseong (Banwolsanseong in Gunnae-myeon, Pocheon-si, Gyeonggi-do) was lost to Goguryeo, and occupied Nangbiseong in August of 629 (the 51st year of King Jinpyeong), and organized the Cheolwon area into Sinju’s territory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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