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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탕트 혹은 냉전 에피스테메의 변전 - 1970년대 ‘평화’ 개념을 중심으로 - = Detente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Cold War Episteme - The Concept of ‘Peace’ in the 1970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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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64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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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explores the (peaceable) unification discourses of South Korea in 1970s when a mood of international detente arose. The concept of ‘peace,’ as it originated and developed within the European context, is used as an analytical tool in t...

      This article explores the (peaceable) unification discourses of South Korea in 1970s when a mood of international detente arose. The concept of ‘peace,’ as it originated and developed within the European context, is used as an analytical tool in this paper. It is remarkable that the concept of peace has been divided into two disparate, even contrary streams. The weaker of these expressed the ‘positive’ meanings, such as ‘rights,’ ‘friendship,’ ‘affection,’ ‘freedom’ and ‘love,’ while the ‘negative’ and passive meanings, such as ‘security’ and ‘the absence of violence,’ became dominant. As a result, the concept of peace has established a verbal usage, within the context of interactions between the nation-states, which is primarily concerned with international relations (international law) or with peace treaties (pactum pacis) intended to end wars. In terms of peace between nation-states, international detente seems to have brought about ironical results on the Korean peninsula: against the backdrop of reconciliation between China and the US, both North and South Korea established repressive dictatorships through the revision of their legal systems. Indeed, during the 1970s detente period the division of North and South Korea actually got far more solidified and internalized.
      This paper, in contrast, tries to expand the meaning of peace to include the positive ones which emerged in the South Korean public sphere during the 1970s. This might tentatively be called (after Duara) the project of ‘rescuing peace from the nation-state.’ To this end, the emphasis is upon the conceptual competition (albeit unequal, or even hierarchical) between the ruling powers and the critical intellectuals of the 1970s. One of the most important voices fundamentally subverting the ruling party’s concept of peace was Ham Seok-Heon, whose peace project is highlighted in this paper. Whereas the ruling power’s conception of peace was expressed within the semantic network of national security and economic development, Ham’s notion of peace was only achievable by freedom of speech. To achieve peaceful unification, Ham argues that active communication and freedom of speech are far more valuable than secretive North-South dialogue between the two governments. He regarded nation- states as an obstruction to peace, and as the major agents creating structural violence. It is therefore the people themselves [Minjung or Ssial (씨)] who should take responsibility for promoting peace, instead of governments or nation-states. During the 1970s, there was a divergence among other intellectuals, with various concepts of Minjung being discussed. The concept of the ‘third world’ also arose as an expanded meaning of people (Minjung), and this became established as one of the most powerful terms to symbolize the sprit of det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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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은 1970년대 국제적 데탕트 국면에서 부상한 한국의 (평화) 통일 담론을 유럽적 맥락에서 연원한 평화 개념을 도입하여 분석한 시도이다. 평화의 개념사에서 기억할 만한 사실은 이 개...

      이 논문은 1970년대 국제적 데탕트 국면에서 부상한 한국의 (평화) 통일 담론을 유럽적 맥락에서 연원한 평화 개념을 도입하여 분석한 시도이다. 평화의 개념사에서 기억할 만한 사실은 이 개념이 상반된 두 개의 흐름 속에서 결국 하나의 ‘법률공동체’인 근대국민국가를 의미 생성의 주된 지반으로 삼아 발전해 왔다는점이다. 평화의 적극적 의미라 할 수 있는 ‘권리’와 ‘우정’, ‘상호 애정’, ‘자유’, ‘사랑’과 같은 일군의 단어들은 확실한 약세였다. 평화는 국민국가 사이의 ‘국제관계(국제법)’나 ‘국가 간 평화(pactum pacis:전쟁을 종결시키는 평화조약)’라는 맥락에서 생산·유통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위상을 정립해 왔다. 국가 간 평화라는 맥락에서 1970년대 데탕트를 이해하자면, 데탕트 국면에서 한반도는 미·중의 화해를 배경으로 남북 분단이 오히려 공고화되고 “내재화”된, 다분히 역설적인 ‘전환’의 시점으로 간주되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평화조약과 같은 국제법을 토대로 한 ‘국가 간 평화’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당시 한국의 공론장에 등장했던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발굴하고자 시도했다. 잠정적으로 이를 ‘국가로부터 평화를 구출하려는(rescuing peace from nation-state)’ 기획으로 명명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이 재구성한 대상은 1970년대 한국의 통치권력과 비판적 지식인들이 서로 개념적 경합(불균등한)을 벌였던, ‘평화’의 공시적 의미론의 장이다. 특히 통치권력의 평화 개념과 함께 가장 근원적인 의미에서 국가 주도 평화 기획의 대척점에 위치한다고 판단되는 함석헌의 평화 개념을 주로 살펴보았다. 국가·안보·건설·총력이라 는 맥락에서 발화된 통치권력의 평화 개념에 맞서서, 함석헌의 평화는 시민 사이의 소통과 언론의 자유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었고 국가는 오히려 진정한 평화의 방해자, 구조적 폭력의 실행자로 인식되었다. 국가를 대신하여 평화를 실행하는 주체는 함석헌에게 민중(씨)이었는데, 함석헌뿐만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들의 민중 개념은 이후 여러 갈래의 지적 분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확대된 민중으로서의 ‘제3세계’라는 개념 역시 1970년대 가장 강력한 데탕트의 언어로 정립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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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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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함석헌, "함석헌전집 1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한길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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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3 0.53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6 0.6 1.426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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