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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의 對蒙 대응 논리와 ‘大國이미지’ = Diplomatic Logic toward the Mongol Empire of the Koryo and Images of ‘Great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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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1702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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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1차 고려-몽골 전쟁을 전후한 1231, 1232년의 상황이 고려-몽골 관계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판단 아래, 이 시기 고려의 대응논리를 자세히 다뤄보고자 했다. 우선 이 기간 동안 모...

      이 글은 1차 고려-몽골 전쟁을 전후한 1231, 1232년의 상황이 고려-몽골 관계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판단 아래, 이 시기 고려의 대응논리를 자세히 다뤄보고자 했다. 우선 이 기간 동안 모두 19통의 몽골 문서가 고려로 왔음을 유추해내었다. 약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19통의 문서를 몽골이 보냈다는 사실에서 몽골이 고려에 매우 적극적으로 외교 활동을 벌였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몽골은 국왕의 친조나 강화도로부터의 출륙을 항복의 증거로 요구하였고, 공물만이 아니라 인질, 군대의 동원, 호구 점검 등도 요구하였다. 여기에는 1231년의 1차 고려-몽골 전쟁과 뒤이은 고려의 강화도로의 천도가 큰 영향을 주었다. 전쟁 이후 몽골은 고려를 실질적인 복속국으로 보고 일방적인 의무를 이행할 것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고려가 몽골로 보낸 외교 문서도 18통에 달한다. 몽골의 요구 사항 변화로 유발된 고려-몽골 관계로 인해 표문 작성 방식도 기존과는 달리 화려한 수사보다는 직설적이고 안건이 나열되는 방식으로 변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몽골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이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몽골을 설득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 논리를 개발해냈다. 그것은 거란이나 여진과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던 사대외교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고려는 스스로를 몽골에 사대하는 존재로 낮추면서 몽골을 ‘대국’으로 대접하였다. 그리고 몽골에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주지시키면서 ‘소국’인 고려의 입장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당위를 강조하였다. 즉 몽골에 ‘大國이미지’를 입히려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적 문화전통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몽골에게 그러한 논리는 수용되지 않았다. 사대외교의 방식 안에서 움직인 고려의 이 시기 대응 방식은 한계가 분명했지만, 이 같은 노력으로 인해 기존과 같은 외교적 대응 방식으로는 몽골을 설득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이제 고려는 몽골에 대응할 새로운 틀을 요구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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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paper, I studied on the Koryo’s responses to the Mongol empire, based on the perception that political circumstances in 1231-32 around the time of the First Mongol invasion largely deter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Fi...

      In this paper, I studied on the Koryo’s responses to the Mongol empire, based on the perception that political circumstances in 1231-32 around the time of the First Mongol invasion largely deter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First of all, I derived that a total of 19 Mongol documents were sent to Koryo royal court during this period. The fact that Mongol sent 19 documents in approximately one year suggests that the Mongol was very active in its diplomatic activities with Koryo. Specifically, the Mongol demanded that Koryo king pays a visit to Mongol emperor or that Koryo return to the inland from Ganghwa
      Island, as a proof of surrender, and also demanded hostages, military aid, and household survey in addition to offering of tributes. This was largely affected by the First Mongol invasion in 1231 and the Koryo royal court’s move to Ganghwa Island that ensued. After the war, the Mongol treated Koryo as its subordinate country in effect, and began to relentlessly demand Koryo to fulfill its obligations as such.
      During this period, Koryo sent 18 diplomatic documents to the Mongol. Due to Mongol’s changing demands on Koryo and subsequent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the style of the documents also changed from an eloquent, rhetorical writing to a listing of agendas in a straightforward manner. The Koryo royal court developed logics and responses to persuade the Mongol, so that it could refuse and not implement demands of the Mongol. The strategy was an active use of submissive diplomacy that was used before to avoid a war with the Khitan or the Jurchen. Koryo lowered itself as a country that obeyed the Mongol, and treated the Mongol as a ‘Great State’ with confucian moral and very understanding. In the documents, it reminded the Mongol of its role as a great state, and emphasized that the Mongol should be considerate to the position of Koryo as a smaller country. That is, Koryo tried to persuade the Mongol with a lofty image of a ‘Great State.’ However, the Mongol was not the least persuaded by such logic, as it was a country with wholly different cultural backgrounds from China.
      Koryo’s political responses to the Mongol during this time within the framework of submissive diplomacy clearly had limitations, and yet, due to these efforts, it became clear that the old way of diplomatic response was ineffective in persuading the Mongol. Now Koryo had to develop a new diplomatic framework to respond to Mo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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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고려 - 몽골의 외교 교섭과 몽골의 요구사항
      • 3. 고려의 對몽골 대응 양상
      • 4. 고려의 대응 논리와 ‘稱臣’ 인식의 충돌 : ‘大國이미지’의 창출과 한계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고려 - 몽골의 외교 교섭과 몽골의 요구사항
      • 3. 고려의 對몽골 대응 양상
      • 4. 고려의 대응 논리와 ‘稱臣’ 인식의 충돌 : ‘大國이미지’의 창출과 한계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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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송병우, "표문의 설득 수단 연구 : 「고려사」 소재 외교 표문을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대학원 2006

      2 잭 웨더포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사계절 2005

      3 김용선, "이규보연보" 일조각 2013

      4 윤용혁, "여몽전쟁과 강화도성 연구" 혜안 2011

      5 윤은숙, "여몽 관계의 성격과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 중국 학계의 '책봉과 조공' 관계 연구의 한계와 문제점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재단 (35) : 119-162, 2012

      6 고명수, "몽골의 ‘복속’ 인식과 蒙麗관계" 고려사학회 (55) : 43-79, 2014

      7 고명수, "몽골-고려 형제맹약 재검토" 역사학회 (225) : 195-229, 2015

      8 전재성, "동아시아 국제정치―역사에서 이론으로―" EAI 2011

      9 이개석, "고려-대원 관계 연구" 지식산업사 2013

      10 민현구, "高麗時代 韓中交涉史의 몇 가지 문제 -長期持續的 高麗王朝와 征服的 中國 北方國家들과의 對立 ․ 交流-" 진단학회 (114) : 1-11, 2012

      1 송병우, "표문의 설득 수단 연구 : 「고려사」 소재 외교 표문을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대학원 2006

      2 잭 웨더포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사계절 2005

      3 김용선, "이규보연보" 일조각 2013

      4 윤용혁, "여몽전쟁과 강화도성 연구" 혜안 2011

      5 윤은숙, "여몽 관계의 성격과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 중국 학계의 '책봉과 조공' 관계 연구의 한계와 문제점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재단 (35) : 119-162, 2012

      6 고명수, "몽골의 ‘복속’ 인식과 蒙麗관계" 고려사학회 (55) : 43-79, 2014

      7 고명수, "몽골-고려 형제맹약 재검토" 역사학회 (225) : 195-229, 2015

      8 전재성, "동아시아 국제정치―역사에서 이론으로―" EAI 2011

      9 이개석, "고려-대원 관계 연구" 지식산업사 2013

      10 민현구, "高麗時代 韓中交涉史의 몇 가지 문제 -長期持續的 高麗王朝와 征服的 中國 北方國家들과의 對立 ․ 交流-" 진단학회 (114) : 1-11, 2012

      11 尹龍爀, "高麗對蒙抗爭史硏究" 一志社 1991

      12 盧啓鉉, "高麗外交史" 甲寅出版社 1994

      13 崔滋, "高麗名賢集 2" 所收影印本 1973

      14 "高麗史"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5 "高麗史節要"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6 周采赫, "高麗內地의 達魯花赤置廢에 관한 小" 1 : 1974

      17 여원관계사연구팀, "譯註元高麗紀事" 선인 2008

      18 姜在光, "蒙古侵入에 대한 崔氏政權의 外交的對應" 경인문화사 2011

      19 村上正二, "蒙古來牒飜譯" 17 : 1960

      20 池內宏, "滿鮮史硏究 中世3" 吉川弘文館 1963

      21 "東文選"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종합DB

      22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종합DB

      23 高柄翊, "東亞交涉史의 硏究" 서울대출판부 1970

      24 梁淸海, "古今公文文種滙釋" 四川大學出版社 1992

      25 "元史"

      26 송기중, "『高麗史』에 수록된 두 편의 蒙古軍 牒文" 진단학회 (118) : 31-94, 2013

      27 Gari Ledyard, "Two Mongol Documents from the Koryo sa" 83 : 1963

      28 이익주, "13~14세기 고려-몽골관계 탐구" 동북아역사재단 2011

      29 동북아역사재단 경북대 한중교류연구원, "13~14세기 고려-몽골관계 탐구" 동북아역사재단 2011

      30 이정란, "13세기 몽골제국의 高麗觀" 한국중세사학회 (27) : 95-121, 2009

      31 이미지, "1231・1232년 對蒙 表文을 통해 본 고려의 몽고에 대한 외교적 대응" 고려사학회 (36) : 235-267, 2009

      32 이미지, "1231~1232년 외교 문서를 통해 본 고려의 대몽對蒙 교섭 상의 특징" 한국국학진흥원 (27) : 7-4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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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2-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9-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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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8 1.28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89 2.254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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