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잡전>>에선 법흥왕 15년(528)설을 주장하였지만, <아도기라>와 <촉향문예불결사문>과 <이차돈순교비>에서는 구체적인 연대 없이 법흥왕대를 제시하고 있다.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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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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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잡전>>에선 법흥왕 15년(528)설을 주장하였지만, <아도기라>와 <촉향문예불결사문>과 <이차돈순교비>에서는 구체적인 연대 없이 법흥왕대를 제시하고 있다. <봉...
<<계림잡전>>에선 법흥왕 15년(528)설을 주장하였지만, <아도기라>와 <촉향문예불결사문>과 <이차돈순교비>에서는 구체적인 연대 없이 법흥왕대를 제시하고 있다. <봉암사지증대사비>에서 이차돈의 순교를 중국의 불교사 즉 양무제의 사신과 비교하면서 그 연대를 528년이라 하였다. <<고기>>에서는 양무제의 사신연대인 대통원년(527) 3월 11을 아도의 사적과 연관시키고, <영통사대각국사비>에서도 신라불교 전래를 대통원년이라 하였다. <<해동고승전>>은 이차돈의 순교를 529년이라 하였다. <<삼국사기>>는 <<계림잡전>>에 의거해 법흥왕 15년(528)이라 했고, <<삼국유사>>는 이차돈의 순교를 달마와 연관시켜 보통8년(527)이라 하였다.
신라의 불교 전래에 공을 세운 아도, 법흥왕, 이차돈을 삼성이라 하는데, 사실 이들과 관련된 연대는 누층적으로 새로운 의미가 부가되어 왔다. 처음에는 단지 <<계림잡전>>에서 528년이라 했지만, <아도기라>, <촉향분예불결사문>, <이차돈순교비>에서는 단지 법흥왕대로 하였다. 최치원은 처음 528년을 양무제의 사신과 관련을 맺었고, 각훈은 아도의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양무제가 사신한 날인 527년 3월 11일을 언급하였다. 일연은 양무제의 사신이란 관점보다는 이차돈의 순교를 달마의 중국 선법 전달과 관련을 맺었다. 즉 이차돈의 순교연대는 국내적인 차원, 양무제의 사신, 달마의 중국 선종 전달 과정과 연관되어 의미부여 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차돈의 순교연대는 양무제의 사신이나 달마와 연관시키지 않고 국내불교사의 관점에서 다룬 <<계림잡전>>의 견해인 528년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