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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석문을 통해 본 6세기 신라 법제와 지방민 인식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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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10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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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신라사에서 6세기 전·중반이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시기라는 이해가 일찍부터 나온 바 있다. 하지만 근자에 들어 이러한 이해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하는 반문이 많�...

      신라사에서 6세기 전·중반이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시기라는 이해가 일찍부터 나온 바 있다. 하지만 근자에 들어 이러한 이해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하는 반문이 많이 나오고 있다. 7세기 삼국쟁패가 심화되면서 국망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성리비>·<냉수리비>·<봉평리비> 및 진흥왕대 건립된 5개 비문의 변화상을 살펴보면, 이 시기가 법제원칙을 수립하고 지방민 처우를 개선하여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시기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진흥왕대의 순수비 등에서는 새롭게 편입된 지역민, 즉 新民을 舊民과 함께 어루만지겠다고 표명하고, 지방민도 공을 세우면 포상할 것을 구체적으로 약속하였는데, 국왕 스스로 신민에 대한 撫育이 철저하지 못했음을 시인한 점에서 지방민 교화와 목민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방민을 국가의 인적자원으로 포섭하려는 이러한 전환은 <봉평리비>에서 이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중성리비>와 <냉수리비>에서는 판결에 대한 재론금지와 처벌을 강조한 반면, <봉평리비>에서는 사건경위와 판시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였고, 사건발생 책임에 따른 형벌이 대다수 당해 지역민에게는 미치지 않도록 처결하고, 땅을 지키고 왕을 받들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늦어도 법흥왕대는 본격적인 영토확장과 삼국쟁패라는 시대적 상황을 당면하여, 법령의 투명성을 지향하고 지방민 차별 해소의 의지를 드러낸 전환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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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t has long been established that Silla made growth as an ancient state and built a foundation for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in the early and middle sixth century in its history, but there have been many questions as to the validity of this un...

      It has long been established that Silla made growth as an ancient state and built a foundation for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in the early and middle sixth century in its history, but there have been many questions as to the validity of this understanding in recent years since Silla faced a risk of fall with the deepening struggle for supremacy among the Three Kingdoms in the seventh century. A look at the changing patterns of five epitaphs made during the reign of King Jinheung as well as the “Tombstone of Jungseong-ri,” “Tombstone of Naengsu-ri,” and “Tombstone of Bongpyeong-ri,” however, reconfirms that this period witnessed Silla establishing its legal principles, improving treatments for its local population, and building a foundation for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In the Tombstone of Sunsu during the reign of King Jinheung and others, the king declared his intention to embrace local people that were newly incorporated or the new population along with the old population and made a concrete promise to reward even local people that made a contribution. Considering that the king himself admitted that no thorough care was offered to the new population, it is estimated that it was not a onetime event to edify and govern the local population.
      “Tombstone of Bongpyeong-ri” contains some clues for this shift to the inclusion of local people as part of the state’s human resources. While “Tombstone of Jungseong-ri” and “Tombstone of Naengsu-ri” put an emphasis on the prohibition of re-discussions about rulings and punishments, “Tombstone of Bongpyeong-ri” made specific mentions about details of events and grounds for rulings, made it sure that punishments according to the accountability of events would not affect a majority of local people in the concerned area, and emphasized that they should protect the land and serve the king. Based on these aspects, it seems that Silla faced a turning point of pursuing the transparency of legislation and demonstrating the will to end discriminations against the local people under the situations of fullblown territorial expansion and struggle for supremacy among the Three Kingdoms during the reign of King Beopheung at the la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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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 초록
      • Ⅰ. 머리말
      • Ⅱ. 세 비문의 주요논점 재검토
      • Ⅲ. 6세기 전반 ‘頒示律令’과 지방민 처우 개선
      • Ⅳ. 맺음말
      • 국문 초록
      • Ⅰ. 머리말
      • Ⅱ. 세 비문의 주요논점 재검토
      • Ⅲ. 6세기 전반 ‘頒示律令’과 지방민 처우 개선
      • Ⅳ.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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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鍾旭, "李基白先生古稀紀念 韓國史學論叢(上)" 一潮閣 1994

      2 전덕재, "한국고대사회의 왕경인과 지방민" 태학사 2002

      3 강종훈, "한국 고대 금석문 자료에 대한 사료 비판론" 한국고대사학회 (68) : 301-334, 2012

      4 주보돈, "포항중성리신라비의 構造와 내용" 한국고대사학회 (65) : 117-158, 2012

      5 노중국, "포항중성리비를 통해 본 麻立干시기 신라의 분쟁처리 절차와 六部체제의 운영" 한국고대사학회 (59) : 57-94, 2010

      6 박성현, "포항 중성리신라비 비문의 형식과 분쟁의 성격"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5) : 3-22, 2011

      7 김기흥, "천년의 왕국 신라" 창비 2000

      8 張晋藩, "중국법제사" 소나무 2006

      9 강종훈, "울진봉평신라비의 재검토" 국학연구원 (148) : 1-50, 2009

      10 하일식, "울진 봉평비의 ‘오(五)’자 논란에 대해" 한국역사연구회 (110) : 253-268, 2018

      1 李鍾旭, "李基白先生古稀紀念 韓國史學論叢(上)" 一潮閣 1994

      2 전덕재, "한국고대사회의 왕경인과 지방민" 태학사 2002

      3 강종훈, "한국 고대 금석문 자료에 대한 사료 비판론" 한국고대사학회 (68) : 301-334, 2012

      4 주보돈, "포항중성리신라비의 構造와 내용" 한국고대사학회 (65) : 117-158, 2012

      5 노중국, "포항중성리비를 통해 본 麻立干시기 신라의 분쟁처리 절차와 六部체제의 운영" 한국고대사학회 (59) : 57-94, 2010

      6 박성현, "포항 중성리신라비 비문의 형식과 분쟁의 성격"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5) : 3-22, 2011

      7 김기흥, "천년의 왕국 신라" 창비 2000

      8 張晋藩, "중국법제사" 소나무 2006

      9 강종훈, "울진봉평신라비의 재검토" 국학연구원 (148) : 1-50, 2009

      10 하일식, "울진 봉평비의 ‘오(五)’자 논란에 대해" 한국역사연구회 (110) : 253-268, 2018

      11 울진군,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한국 고대 금석문" 2011

      12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문자자료 Ⅰ"

      13 한국고대사학회, "신라 최고의 금석문-포항 중성리비와 냉수리비" 주류성 2012

      14 윤진석, "신라 部體制의 특징 - 사탁부의 위상과 諸部의 내부구성을 중심으로 -" 호서사학회 (77) : 35-68, 2016

      15 심현용, "고고자료로 본 5~6세기 신라의 강릉지역 지배방식" 국립문화재연구소 42 (42): 4-24, 2009

      16 李宇泰, "迎日冷水里碑의 再檢討 : 財의 性格을 中心으로" 6 : 1992

      17 韓國古代社會硏究所, "譯註 韓國古代金石文(제2권)" 1992

      18 朱甫暾, "蔚珍鳳坪新羅碑와 法興王代 律令" 2 : 1989

      19 朱甫暾, "新羅의 村落構造와 그 變化" 35 : 1992

      20 李喜寬, "新羅上代 智證王系의 王位繼承과 朴氏王妃族" 20 : 1990

      21 朱甫暾, "丹陽新羅赤城碑의 再檢討 ; 碑文의 復元과 分析을 中心으로" 7 : 1984

      22 문경현, "上中古期 新羅六部의 史的 考察" 45 : 1993

      23 여호규, "6세기 금석문과신라사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韓國古代史學會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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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7-07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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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69 1.69 1.8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64 1.57 3.463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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