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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호란 연구의 제문제 = Problems of Researches on Jurchen’s Invasion War(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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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44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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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First, Outer Reason of Jurchen’s Invasion War was the dynamic changes of international politics in the East Asia, and Inner Reason was Chosun Government’s unwise No-Negotiation Policy. Secondly, but No-Negotiation Policy at Jurchen’s Invasion W...

      First, Outer Reason of Jurchen’s Invasion War was the dynamic changes of international politics in the East Asia, and Inner Reason was Chosun Government’s unwise No-Negotiation Policy.
      Secondly, but No-Negotiation Policy at Jurchen’s Invasion War could not be criticized on the present viewpoint. The public opinion at that time was No-Negotiation.
      Thirdly, Recently some researchers ackowledge Chosun’ Military Defence positively but we need to be more prudent.
      Fourthly, Tenacious registance at Nam-Han Fortress could be estimated posivitively both present and hisoriccal viewpoint.
      Fifthly, No-Negotiation Policy could be ackowledged its loyalties, if it argued Military Defence at the same time.
      Sixthly, Many Civil Prisoners of War during the war were caused by military mistakes.
      Seventhly, Jurchen’s Invasion War caused the long duration of Anti-Ch’ng Feeling, Seo-In Dictatorship in the lat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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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첫째 병자호란의 외적 요인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에 동아시아 전체 국제정세의 변화이다. 내적 요인은 당시 조선 조정이 냉철하게 현실적 대응을 못한 점이다. 둘째 척...

      첫째 병자호란의 외적 요인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에 동아시아 전체 국제정세의 변화이다. 내적 요인은 당시 조선 조정이 냉철하게 현실적 대응을 못한 점이다.
      둘째 척화론이 당시 공론인 상황에서 척화의 방향으로 결정한 것에 대하여 현재의 가치관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셋째 최근 병자호란 시 조선군의 전략에 대하여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보는 평가가 나오고 있으나 좀더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넷째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이후 끈질기게 저항한 것은 당시적, 현재적 관점에서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섯째 척화론자 가운데 척화와 더불어 내정개혁 및 군비강화를 함께 주장하는 경우는 현재적 관점에서도 그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
      여섯째 피로인이 대규모 발생하게 된 데에는 조선의 전략적 실수가 근본 요인이라는 주장은 타당하다.
      일곱째 병자호란 이후 반청정서의 장기지속과 대명의리론의 강화 등은 그 정치적 결과로서 이후 300년 가까이 서인 독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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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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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4-2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Korean Society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KCI등재후보
      2005-04-10 학술지등록 한글명 : 韓國史學史學報
      외국어명 : 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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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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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7 0.47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1 0.54 1.937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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