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rrent understanding of Taesamyo (太師廟) in Andong is centered around the deed of Three Meritorious Retainers and the resulting promotion of Gochang-goon to Andong-bu. However, the original understanding of the Three Retainers’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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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current understanding of Taesamyo (太師廟) in Andong is centered around the deed of Three Meritorious Retainers and the resulting promotion of Gochang-goon to Andong-bu. However, the original understanding of the Three Retainers’ significance...
The current understanding of Taesamyo (太師廟) in Andong is centered around the deed of Three Meritorious Retainers and the resulting promotion of Gochang-goon to Andong-bu. However, the original understanding of the Three Retainers’ significance and the nature of their temple until 1425 greatly differed from that of the present days.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The Three Meritorious Retainers’ Temple existed in the current location, which consisted the office area Busa (府司) administered by the local official Hyangli. Its location signifies that its character resembled that of the Bugeundang religion prompted by the Hyangli group. However, it is likely that the Three Retainers in Goryo period functioned as the patron gods of the central city of Andong area. Their temple also possibly enshrined female deity as well as the male Three Retainers. The ruling Hyangli class, which was the descendant of the Three Retainers, administered the ritual for them and thus secured the authority to lead the local society.
국문 초록 (Abstract)
현재 안동시에 있는 ‘태사묘太師廟’는 삼공신의 공훈과 이로 인한 고창군의 안동부 승격을 중심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1425년 이전에 안동 지역에서 삼공신에게 부여한 의미와 역할, ...
현재 안동시에 있는 ‘태사묘太師廟’는 삼공신의 공훈과 이로 인한 고창군의 안동부 승격을 중심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1425년 이전에 안동 지역에서 삼공신에게 부여한 의미와 역할, 삼공신을 모신 사당과 이곳에서 이루어진 제향의 성격은 현재의 태사묘와 크게 달랐다. 태사묘와 그 전신인 ‘삼공신묘’는 조선시대 전 기간 현재의 위치에 있었으며, 이 위치는 향리가 관할하는 ‘부사府司’영역이었다. 위치를 보면 조선전기 삼공신묘의 성격은 관청의 서리 향리 집단이 주도한 ‘부근당’ 신앙과 유사하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삼공신은 고려시대 치소성의 성황신으로서 지역 전체를 수호하는 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성황사에는 남신인 삼공신상 외에 여신상도 함께 안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삼공신의 후손이자 지배층이었던 상급 향리집단은 성황제의를 주도하며 삼공신을 자신들과 연결시켜 권위를 높이고 지역사회를 이끌었다.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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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선택서 연길귀감涓吉龜鑑 고찰— 건축택일 및 이사택일을 중심으로
조애중曺愛重의 병자일기丙子日記 배접지에 기록된 제문과 간찰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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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9-08-0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Korea Studies Adancement Center -> The Korean Studies Institute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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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5 | 0.65 | 0.6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6 | 0.62 | 1.324 | 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