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리처드 2세를 폭군으로 묘사하는 휘그적인 해석을 벗어나, 영국사의 흐름 속에서 리처드 2세의 폐위와 헨리 4세의 등극과정을 불안정한 헌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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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리처드 2세를 폭군으로 묘사하는 휘그적인 해석을 벗어나, 영국사의 흐름 속에서 리처드 2세의 폐위와 헨리 4세의 등극과정을 불안정한 헌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
본 논문은 리처드 2세를 폭군으로 묘사하는 휘그적인 해석을 벗어나, 영국사의 흐름 속에서 리처드 2세의 폐위와 헨리 4세의 등극과정을 불안정한 헌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필자는 헨리 4세의 왕위자격의 명분으로 암시된 ‘인민의 동의’를 중심으로 데이비드 흄의 『영국사』 전반을 통해서 이 사건의 의미를 조망한다. 여기서 필자는 흄의 영국정치사기술에 녹아들어 있는 ‘제도의 정착’에 대한 관점을 해명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흄은 ‘법리의 관점’에서 리처드 2세를 폭군으로 보는 휘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세의 관점’에서는 당면한 정세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리처드 2세의 정치적 자질의 결여를 지적하고 있다. 법리의 관점은 사회의 안정에 중점을 두며, 정세의 관점은 정치의 선도성에 초점을 둔다. 리처드 2세의 폐위는 법리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인민의 수립된 특권들을 옹호한 1688년 혁명과 달리 한 파벌에서 다른 파벌로 급격하게 요동한 것일 따름이었다. 다른 한편 이 사건은 헨리 4세가 왕위자격의 명분으로 새로운 정치원칙인 인민의 동의를 암시적으로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원의 권위가 성장하고 귀족과 성직자의 권위가 꺾이면서 인민의 동의는 의회로 구현되어 갔다. 의회가 인민의 대의를 집약하는 곳으로 정착되어 가면서 인민의 동의는 이른바 “의회 속의 군주”라는 관념으로 안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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