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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개항 초기(1876~1880) 釜山駐在 日本管理官의 파견·활동과 그 특징 = A Study on The Activity of The Japanese's Gwanrigwan to Busan and The Nature of Their Task at The Early of Opening of Port(1876-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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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details of dispatch of the Japanese's Gwanrigwan to Busan and their activities, and is to consider the recognization of Japan to Chosun and diplomatic policy at the early of Opening of Port. The Japanese's Gwanrigwan was the first modern diplomat residing in Chosun before the dispatch of Japanese consul in Busan on February 1880. After organizing the system of the Consul in 1871, Japan had sent the consul to abroad. Dispatch a consul was a general practice to Japan that had sent a consul to 11 cities before the Opening of Busan Port. But in those days of Opening of Port, due to the anti-Japanese sentiment Japan had not sent a consul who was a modern diplomat but a Gwanrigwan who was titled newly. Gwanrigwan who was sent only to Busan was an unique official name four men was dispatched at this times, but they had overseas experiences or activities in Chosun. And most of them had restarted for their post as a consul of opening ports in Chosun. The first consul general in Wonsan and Busan was a former Gwanrigwan. Receiving the same treatment of as consul, Gwanrigwan had protected Japanese in Chosun, promoted the interest of their traders, and discussed diplomatic issues with Chosun, and performed the proxy task of diplomatic minister. After all the analysis, the Gwanrigwan who was sent in Chosun at the early of Opening of Port was working as an advance guard for settlement of Japanese in Busan and the extension of their power into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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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details of dispatch of the Japanese's Gwanrigwan to Busan and their activities, and is to consider the recognization of Japan to Chosun and diplomatic policy at the early of Opening of Port. The Japanese's Gwanrigwan was...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details of dispatch of the Japanese's Gwanrigwan to Busan and their activities, and is to consider the recognization of Japan to Chosun and diplomatic policy at the early of Opening of Port. The Japanese's Gwanrigwan was the first modern diplomat residing in Chosun before the dispatch of Japanese consul in Busan on February 1880. After organizing the system of the Consul in 1871, Japan had sent the consul to abroad. Dispatch a consul was a general practice to Japan that had sent a consul to 11 cities before the Opening of Busan Port. But in those days of Opening of Port, due to the anti-Japanese sentiment Japan had not sent a consul who was a modern diplomat but a Gwanrigwan who was titled newly. Gwanrigwan who was sent only to Busan was an unique official name four men was dispatched at this times, but they had overseas experiences or activities in Chosun. And most of them had restarted for their post as a consul of opening ports in Chosun. The first consul general in Wonsan and Busan was a former Gwanrigwan. Receiving the same treatment of as consul, Gwanrigwan had protected Japanese in Chosun, promoted the interest of their traders, and discussed diplomatic issues with Chosun, and performed the proxy task of diplomatic minister. After all the analysis, the Gwanrigwan who was sent in Chosun at the early of Opening of Port was working as an advance guard for settlement of Japanese in Busan and the extension of their power into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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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1876년 10월 일본이 부산에 파견한 釜山駐在 日本管理官의 파견경위와 그들의 활동을 분석해 개항 초기 일본의 대조선 인식과 외교정책의 초기형태를 고찰한 것이다. 관리관은 1880년 2월 부산에 領事가 파견되기 전까지 조선에 상주한 최초의 근대적 외교관이다.
    일본은 1871년 영사관제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해외 곳곳에 영사를 파견하였다. 부산 개항 이전에 이미 일본은 11개 도시에 영사를 파견할 정도로 영사파견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개항 당시 조선의 대일감정의 악화 등으로 말미암아 근대적 제도인 영사를 파견하지 않고 관리관이라는 새로운 명칭의 외교관을 파견하였다. 관리관은 일본이 오직 부산에만 파견한 독특한 명칭의 외교관인 것이다.
    이시기 파견된 관리관은 네 명으로 이들은 모두 해외경험이 있거나 개항 전 조선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후 조선의 개항장에 영사로 재부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산의 초대 총영사와 부산의 초대 영사는 모두 관리관 출신이었던 것이다. 영사에 준하는 관리관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무역상 이익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과의 외교현안을 협의하고 처리하는 등 공사의 대리업무까지 수행하며 실로 다양하게 활동하였다. 개항 초기 파견된 관리관은 부산으로 이주하는 자국민의 정착과 세력 확장을 위한 첨병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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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1876년 10월 일본이 부산에 파견한 釜山駐在 日本管理官의 파견경위와 그들의 활동을 분석해 개항 초기 일본의 대조선 인식과 외교정책의 초기형태를 고찰한 것이다. 관리관은 1880...

    본 연구는 1876년 10월 일본이 부산에 파견한 釜山駐在 日本管理官의 파견경위와 그들의 활동을 분석해 개항 초기 일본의 대조선 인식과 외교정책의 초기형태를 고찰한 것이다. 관리관은 1880년 2월 부산에 領事가 파견되기 전까지 조선에 상주한 최초의 근대적 외교관이다.
    일본은 1871년 영사관제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해외 곳곳에 영사를 파견하였다. 부산 개항 이전에 이미 일본은 11개 도시에 영사를 파견할 정도로 영사파견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개항 당시 조선의 대일감정의 악화 등으로 말미암아 근대적 제도인 영사를 파견하지 않고 관리관이라는 새로운 명칭의 외교관을 파견하였다. 관리관은 일본이 오직 부산에만 파견한 독특한 명칭의 외교관인 것이다.
    이시기 파견된 관리관은 네 명으로 이들은 모두 해외경험이 있거나 개항 전 조선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후 조선의 개항장에 영사로 재부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산의 초대 총영사와 부산의 초대 영사는 모두 관리관 출신이었던 것이다. 영사에 준하는 관리관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무역상 이익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과의 외교현안을 협의하고 처리하는 등 공사의 대리업무까지 수행하며 실로 다양하게 활동하였다. 개항 초기 파견된 관리관은 부산으로 이주하는 자국민의 정착과 세력 확장을 위한 첨병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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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현수, "해리 S. 파크스 : 대영제국의 동아시아 외교 주역" 단국대학교출판부 2011

    2 최덕수,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 열린책들 2010

    3 손승철, "조선시대 한일관계사연구" 지성의샘 1994

    4 허경진, "일본 시인 이시바타 사다(石幡貞)의 눈에 비친 19세기 부산의 모습" 인문과학연구소 15 (15): 49-71, 2010

    5 "일본 國立公文書館의 ‘アジア歷史資料センター’ 소장자료"

    6 김승, "신편 부산대관"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2010

    7 다카사키 소지, "식민지조선의 일본인들" 역사비평사 2006

    8 아이 사키코, "부산항 일본인 거류지의 설치와 형성" 3 : 2010

    9 홍순권, "부산의 도시형성과 일본인들" 선인 2008

    10 함동주, "근대 초기 일본의 외교체계 수립과 동아시아 정책 - 조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이화사학연구소 (29) : 2-14, 2002

    1 김현수, "해리 S. 파크스 : 대영제국의 동아시아 외교 주역" 단국대학교출판부 2011

    2 최덕수,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 열린책들 2010

    3 손승철, "조선시대 한일관계사연구" 지성의샘 1994

    4 허경진, "일본 시인 이시바타 사다(石幡貞)의 눈에 비친 19세기 부산의 모습" 인문과학연구소 15 (15): 49-71, 2010

    5 "일본 國立公文書館의 ‘アジア歷史資料センター’ 소장자료"

    6 김승, "신편 부산대관"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2010

    7 다카사키 소지, "식민지조선의 일본인들" 역사비평사 2006

    8 아이 사키코, "부산항 일본인 거류지의 설치와 형성" 3 : 2010

    9 홍순권, "부산의 도시형성과 일본인들" 선인 2008

    10 함동주, "근대 초기 일본의 외교체계 수립과 동아시아 정책 - 조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이화사학연구소 (29) : 2-14, 2002

    11 한철호, "개화기(1880∼1906) 역대 주한 일본공사의 경력과 한국 인식" 한국사상사학회 25 : 271-314, 2005

    12 현명철, "개항전 한일관계의 변화에 대한 고찰 –일본의 개항부터 왜관접수까지 일본사 이해를 중심으로-" 72 : 1996

    13 박한민, "개항장 ‘間行里程’ 운영에 나타난 조일 양국의 인식과 대응" 한국사연구회 (165) : 143-184, 2014

    14 차철욱, "개항기~1916년 부산 일본인상업회의소의 구성원 변화와 활동" 부경역사연구소 0 (0): 203-204, 2004

    15 하원호, "개항기 재한 외국공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

    16 강성우, "개항기 일본인의 부산 이주와 헤게모니 확장" 부경역사연구소 (33) : 97-131, 2013

    17 김승, "개항 이후 부산의 일본거류지 사회와 일본인 자치기구의 활동" 역사문화학회 15 (15): 307-360, 2012

    18 "高宗實錄"

    19 角山榮, "領事報告の硏究" 同文館 1986

    20 孫禎睦, "韓國開港期 都市變化過程硏究" 一志社 1984

    21 孫禎睦, "韓國開港期 都市社會經濟史硏究" 一志社 1982

    22 金義煥, "釜山近代都市形成史硏究" 硏文出版社 1973

    23 森田福太郞, "釜山要覽" 釜山商業會議所 1912

    24 "釜山府史原稿"

    25 高秉雲, "近代朝鮮租界史の硏究" 雄山閣出版 1987

    26 田保橋潔, "近代日鮮關係の硏究" 朝鮮總督府中樞院 1940

    27 "航韓必携"

    28 "舊韓國外交文書"

    29 "東京日日新聞"

    30 "朝鮮交際始末"

    31 中野許太郞, "日語工夫" 釜山許書房 1891

    32 "日本外交文書"

    33 渡邊修次郞, "日本外交始末 全" 松井·淸水藏版 1880

    34 "承政院日記"

    35 外務省百年史編纂委員會, "外務省の百年史 上卷" 原書房 1969

    36 原敬, "外交官領事官制度" 警星社書店 1899

    37 "同文彙考"

    38 "備邊司謄錄"

    39 "修好條規附錄及貿易章程伺書"

    40 "(日本外務省)特殊調査文書" 고려서림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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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4-12-17 학회명변경 한글명 : 동국사학회 ->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영문명 : Dongguk Historical Society -> Dongguk history & culture institute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8-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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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6 0.36 0.3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8 0.4 0.758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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