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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자료를 통해서 본 연희자로서의 수척과 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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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0484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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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고려시대에는 북방 민족인 양수척이 있었는데, 도살ㆍ수렵ㆍ유기장ㆍ잡희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기생도 이들 가운데서 나왔다. 조선시대에도 이들의 후예들이 계속 도살ㆍ수렵ㆍ유기장ㆍ잡희를 담당했다. 그래서 남한 지역의 재인들은 주로 세습무계 출신이었지만, 세습무가 없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는 북방 민족인 양수척의 후예들이 재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박은용의 논문과 『朝鮮の聚落』 中篇 구백정부락 조를 통해, 재인촌은 바로 양수척의 후예임이 드러난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본산대놀이를 하던 연희자들은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이다. 이들은 서울 관청의 관노였기 때문에 서울에 거주할 수 있었다. 여러 기록들, 특히 『승정원일기』 숙종 8년(1682) 민정중(閔鼎重)의 상소는 “나라의 풍속은 (반인들이) 소 도살과 악(樂, 공연예술)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라고 하며, 반인을 전문적 연희자로 밝히고 있다. 이 기록은 『예종실록』 1년(1469) 양성지의 상소문 가운데 조선의 재인과 백정은 고려시대 양수척의 후예로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풍습과 짐승을 도살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내용과 그대로 부합된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반인들 가운데 재인과 백정, 즉 수척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면서, 반인이 서울 본산대놀이의 연희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을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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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에는 북방 민족인 양수척이 있었는데, 도살ㆍ수렵ㆍ유기장ㆍ잡희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기생도 이들 가운데서 나왔다. 조선시대에도 이들의 후예들이 계속 도살ㆍ수렵ㆍ유기...

      고려시대에는 북방 민족인 양수척이 있었는데, 도살ㆍ수렵ㆍ유기장ㆍ잡희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기생도 이들 가운데서 나왔다. 조선시대에도 이들의 후예들이 계속 도살ㆍ수렵ㆍ유기장ㆍ잡희를 담당했다. 그래서 남한 지역의 재인들은 주로 세습무계 출신이었지만, 세습무가 없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는 북방 민족인 양수척의 후예들이 재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박은용의 논문과 『朝鮮の聚落』 中篇 구백정부락 조를 통해, 재인촌은 바로 양수척의 후예임이 드러난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본산대놀이를 하던 연희자들은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이다. 이들은 서울 관청의 관노였기 때문에 서울에 거주할 수 있었다. 여러 기록들, 특히 『승정원일기』 숙종 8년(1682) 민정중(閔鼎重)의 상소는 “나라의 풍속은 (반인들이) 소 도살과 악(樂, 공연예술)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라고 하며, 반인을 전문적 연희자로 밝히고 있다. 이 기록은 『예종실록』 1년(1469) 양성지의 상소문 가운데 조선의 재인과 백정은 고려시대 양수척의 후예로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풍습과 짐승을 도살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내용과 그대로 부합된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반인들 가운데 재인과 백정, 즉 수척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면서, 반인이 서울 본산대놀이의 연희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을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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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e Koryo dynasty, there lived a northern ethnic group called Yangsucheok. Their livelihood depended on butchery, hunting, wickerwork making and performing arts. Traditional female entertainers of Korea (Gisaeng) are also from these people. The descendants of Yangsucheok continued their work of butchery, hunting, wickerwork making and performing arts in the Joseon dynasty. Professional entertainers from South Korean region were mostly from the background of hereditary shamans. However, in Hwanghae and Pyongan province where there are no hereditary shamans, descendants of Yangsucheok worked as professional entertainers. The fact that villages of professional entertainers (Jaeinchon) are the descendants of Yansucheok can be seen in Park Eunyong’s thesis and 『朝鮮の聚落』 中篇 GuBaekJeongBuRak(舊白丁部落 條).
      In Seoul, entertainers who were performing bonsandae-nori and living in Seoul were government slaves or people of similar class. The people who are paid attention to in this circumstances are government slaves of Seonggyungwan, Banin. They were able to live in Seoul because they belonged to the administrative office of Seoul. Numerous records illuminate Banin as entertainers. This is shown especially on the appeal of MinJeongJoong (閔鼎重) written in 『Seungjeongwon Ilgi』 on Sukjong 8(1682), “Banin live by cow buthchery and performing arts as a traditional custom”. This record corresponds with the appeal of YangSeongJi written in 『The annals of Yejong』 on Yejong 1(1469). It is recorded that professional entertainers and butchers of Joseon are, as the descendants of Yangsucheok, working in “the custom of playing instruments while singing and butchering animals”. These records deliver the fact that among Banin that consist of various people, were professional entertainers and butchers, in other words Sucheok. They also reveal the background information of how Banin were able to participate in Seoul bonsandae-nori as professional perfor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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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Koryo dynasty, there lived a northern ethnic group called Yangsucheok. Their livelihood depended on butchery, hunting, wickerwork making and performing arts. Traditional female entertainers of Korea (Gisaeng) are also from these people. The des...

      In the Koryo dynasty, there lived a northern ethnic group called Yangsucheok. Their livelihood depended on butchery, hunting, wickerwork making and performing arts. Traditional female entertainers of Korea (Gisaeng) are also from these people. The descendants of Yangsucheok continued their work of butchery, hunting, wickerwork making and performing arts in the Joseon dynasty. Professional entertainers from South Korean region were mostly from the background of hereditary shamans. However, in Hwanghae and Pyongan province where there are no hereditary shamans, descendants of Yangsucheok worked as professional entertainers. The fact that villages of professional entertainers (Jaeinchon) are the descendants of Yansucheok can be seen in Park Eunyong’s thesis and 『朝鮮の聚落』 中篇 GuBaekJeongBuRak(舊白丁部落 條).
      In Seoul, entertainers who were performing bonsandae-nori and living in Seoul were government slaves or people of similar class. The people who are paid attention to in this circumstances are government slaves of Seonggyungwan, Banin. They were able to live in Seoul because they belonged to the administrative office of Seoul. Numerous records illuminate Banin as entertainers. This is shown especially on the appeal of MinJeongJoong (閔鼎重) written in 『Seungjeongwon Ilgi』 on Sukjong 8(1682), “Banin live by cow buthchery and performing arts as a traditional custom”. This record corresponds with the appeal of YangSeongJi written in 『The annals of Yejong』 on Yejong 1(1469). It is recorded that professional entertainers and butchers of Joseon are, as the descendants of Yangsucheok, working in “the custom of playing instruments while singing and butchering animals”. These records deliver the fact that among Banin that consist of various people, were professional entertainers and butchers, in other words Sucheok. They also reveal the background information of how Banin were able to participate in Seoul bonsandae-nori as professional perfor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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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연희자로서의 수척
      • Ⅲ. 연희자로서의 반인
      • Ⅳ. 본산대놀이와 반인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연희자로서의 수척
      • Ⅲ. 연희자로서의 반인
      • Ⅳ. 본산대놀이와 반인
      • Ⅴ. 결론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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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전경욱, "해서탈춤의 악사와 재인촌" 한국구비문학회 24 (24): 443-480, 2007

      2 윤광봉, "한국의 연희" 반도출판사 1992

      3 송석하, "한국민속고" 일신사 1960

      4 전경욱, "한국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열화당 1998

      5 서연호, "한국 가면극 연구" 월인 2002

      6 김동욱, "춘향전 연구" 연세대 출판부 1965

      7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과학원출판사 1958

      8 박은용, "재인들의 처지와 재인청에 대하여" 조선역사편찬위원회 6 : 1967

      9 사진실, "인조 이후 나례(儺禮)의 사습(私習)과 산대도감패의 흥행 활동" 한국공연문화학회 (28) : 83-151, 2014

      10 김동욱, "이조 학교 풍속고-성균관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1958

      1 전경욱, "해서탈춤의 악사와 재인촌" 한국구비문학회 24 (24): 443-480, 2007

      2 윤광봉, "한국의 연희" 반도출판사 1992

      3 송석하, "한국민속고" 일신사 1960

      4 전경욱, "한국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열화당 1998

      5 서연호, "한국 가면극 연구" 월인 2002

      6 김동욱, "춘향전 연구" 연세대 출판부 1965

      7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과학원출판사 1958

      8 박은용, "재인들의 처지와 재인청에 대하여" 조선역사편찬위원회 6 : 1967

      9 사진실, "인조 이후 나례(儺禮)의 사습(私習)과 산대도감패의 흥행 활동" 한국공연문화학회 (28) : 83-151, 2014

      10 김동욱, "이조 학교 풍속고-성균관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1958

      11 서연호, "산대탈놀이" 열화당 1987

      12 최상수, "산대, 성황신제 가면극의 연구" 성문각 1985

      13 김일출, "봉산탈놀이의 옛 모습을 찾아서" 과학원출판사 3 : 1957

      14 전경욱, "문묘제례악과 양주별산대놀이"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2004

      15 손태도, "광대의 가창문화" 집문당 2003

      16 손태도, "가면극의 종합적 고찰" 박이정 2010

      17 정약용, "雅言覺非" 일지사 2001

      18 秋葉隆, "朝鮮民俗誌" 六三書院 1954

      19 朝鮮總督府, "朝鮮の聚落, 中篇" 朝鮮總督府 1933

      20 崔恩禎, "18세기 懸房의 商業活動과 運營 : 牛肉販賣活動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1997

      21 이두현, "(신수판)한국연극사" 학연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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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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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2 0.52 0.5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64 0.96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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