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국제적 측면에서 일본의 ‘한국병합’과정을 해명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언론 논조를 중심으로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 및 서양 각국의 반응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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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국제적 측면에서 일본의 ‘한국병합’과정을 해명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언론 논조를 중심으로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 및 서양 각국의 반응을 살펴...
본 연구는 국제적 측면에서 일본의 ‘한국병합’과정을 해명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언론 논조를 중심으로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 및 서양 각국의 반응을 살펴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소장된 「伊藤公爵滿洲視察一件」(외무성기록 문서번호 4.2.5 245-1∼5)에 실려 있는 「伊藤公爵遭難ニ關シ各國人ノ態度竝新聞論調」(245-2)를 검토, 분석하였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중국에서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침략을 받은 입장에서 이토의 죽음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거나 이토를 죽인 안중근에 행위에 동조하는 한편, 이토가 죽더라고 일본의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에서 일본의 중국침략에 경계감을 드러냈다. 홍콩의 신문들은 전반적으로 일본이 한국을 억압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토를 높이 평가하고 안중근의 이토 사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침략할 것이라고 우려한 점에서는 중국 신문들과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러시아의 언론은 안중근의 이토 저격에 동정을 표하면서도 이 사건이 러시아의 지배권이 미치는 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사건의 책임이 러시아에 없다는 것을 강조해 러일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반면 앞으로의 일본의 대외정책에 대한 전망은 충분히 제시하지 않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미국의 언론 논조는 대체적으로 일본에 우호적이었으며 이토의 죽음으로 일본의 한국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등 유럽의 신문들은 일부에서 일본의 한국지배를 비판하고 안중근의 행동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으나 대체적으로 동아시아 정세에 무지하여 잘못된 사실을 오보하거나 피상적인 관찰이 많았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에 관한 각국 언론의 논조는 이토의 사망으로 인해 일본의 한국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에서는 열강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 동병상린의 입장에서 안중근의 행동에 크게 자극받았으나, 구미 각국에서는 일본의 한국정책에 대한 비판론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이 서양 열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그들은 ‘한국병합’으로 나아가는 일본의 한국지배정책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사실상 묵인했다고 할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reactions of China, Russia, and the Western nations to the assassination of Ito Hirobumi through their press editorials, so as to illustrate the international perspective regarding Japan’s annexation of Korea. The major sourc...
This study examines the reactions of China, Russia, and the Western nations to the assassination of Ito Hirobumi through their press editorials, so as to illustrate the international perspective regarding Japan’s annexation of Korea. The major source reviewed and analyzed is the 「伊藤公爵遭難ニ關シ各國人ノ態度竝新聞論調」(245-2) 「Regarding Marquis Ito’s accident, the attitudes and newspaper editorials of foreign powers」 included in the 「伊藤公爵滿洲視察一件」(Ministry of Foreign Affairs Document number 4.2.5 245-1∼5) 「Marquis Ito’s visit to Manchuria」 preserved at the Diplomatic Record Office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In sum, the Chinese press showed cold reaction to the death of Ito, or even expressed a sympathy with the An Chunggun’s action, reflecting China’s plight as a victim of Japanese aggression like Korea. It was also very suspicious of the aggressive intent of Japan’s policy against China, which would remain unchanged regardless of the death of Ito. In the meantime, the newspapers published at Hong Kong, while admitting that Japan was oppressive to Korea, in general showed negative reaction to the An’s assassination of Ito, to whom they awarded a high credit. Yet, they echoed the Chinese press’s fear that Japan would all the more aggressive toward China in the aftermath of this incidence.
The Russian press, while showing a sympathy with the An’s action, still expressed the misgiving that the incidence might negatively affect the Russo-Japanese relation, because the incidence took place within the jurisdiction of Russia. It tried to remain neutral and cautions, emphasizing that Russia had nothing to do with the responsibility for the incidence, and refraining from offering the clear prospect of Japanese foreign policy. The U.S. press was in general favorable to Japan, predicting no radical change in Japan’s policy toward Korea. Some of European newspapers from Austria, Italy, Sweden, Norway, and France offered a sympathetic view of the An’s action and criticized Japan’s oppressive control of Korea, but most of them reported mistaken facts, or superficial observations owing to the lack of knowledge on East Asian politics.
The general consensus among the foreign press was that no radical change of Japan’s foreign policy could be anticipated in the ftermath of Ito’s death. The Chinese press with the same anti-Japanese sentiment like Koreans was greatly excited at the An’s action, whereas the Western press was more or less silent in the criticism against Japan’s policy toward Korea. In short, An Chunggun’s assassination of Ito Hirobumi had little impact on the Western perspective on Japan’s policy toward Korea, which tacitly acknowledged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without any meaningful cri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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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합’에 대한 재한일본 언론의 동향 - 잡지 『朝鮮』을 중심으로 -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에 관한 청 정부의 인식과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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