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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통삼한 의식’과 표상으로서의 ‘삼한’ = The ‘Perception of Iltong-Samhan (Unification Three Hans)’ and the ‘Samhan’ as a Pres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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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Recently, three opinions have been in confrontation over the time of the formation of the ‘Perception of Iltong-Samhan (Unification Three Hans)’. First, the theory that the perception of Iltong-Samin was formed with ‘the war of unification of th...

      Recently, three opinions have been in confrontation over the time of the formation of the ‘Perception of Iltong-Samhan (Unification Three Hans)’. First, the theory that the perception of Iltong-Samin was formed with ‘the war of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in the 7th century as a momentum; second, the theory that although the relevant perception appeared in the 7th century, it was a false consciousness made up irrelevant to the reality; and third, the theory that the perception of ‘Iltong-Samhan’ not only was a false consciousness but also the time of occurrence of that was the 9th century, relevant to the late Silla dynasty. Of them, the second view and the third view are based on the perception that the so-called ‘war of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is not compatible with the actual historical fact and that the relevant war was just Silla’s war of the integration of Baekje. However, when the contents of various materials of the time, the fact that the ‘perception of Iltong-Samhan’ appeared in the 7th century is verified. The people of Shilla had a perception that they unified ‘the Land of Samhan,’ including Goguryeo as well as Baekje spatially. The term ‘Samhan’ used at the time was a concept of a historical and geographic space covering the central south Korean peninsula including the Pyongyang region. According to this, the slogan, ‘Samhan Iltong’ was a concept that had logical completeness itself unlike the ’perception of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implying territorial imperf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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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일통삼한 의식’의 형성 시기에 대해 최근 세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첫 번째는 7세기에 있었던 ‘삼국통일 전쟁’을 계기로 일통삼한 의식이 형성되었다는 설, 두 번째는 해당 의식...

      ‘일통삼한 의식’의 형성 시기에 대해 최근 세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첫 번째는 7세기에 있었던 ‘삼국통일 전쟁’을 계기로 일통삼한 의식이 형성되었다는 설, 두 번째는 해당 의식이 7세기에 등장하기는 하였지만 현실과 무관하게 만들어낸 허위의식이라 설, 세 번째는 ‘일통삼한’ 의식이 허위의식일 뿐만 아니라 발생 시기도 신라 말에 해당하는 9세기라는 설이다. 이중 두 번째 설과 세 번째 설은 이른바 ‘삼국통일 전쟁’은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으며 해당 전쟁은 신라의 백제통합전쟁이었을 뿐이라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당대의 여러 자료들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보았을 때 ‘일통삼한 의식’이 7세기대에 등장한 것은 사실로 확인된다. 신라인들은 공간적으로 백제 뿐만 아니라 고구려까지 포괄하고 있는 ‘삼한지지(三韓之地)’를 일통하였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사용되었던 ‘삼한’이라는 용어는 평양 일대를 비롯하여 한반도 중남부를 포괄하는 역사지리적 공간 개념이었다. 이에 따르면 ‘삼한일통’이라는 구호는 영토적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는 ’삼국통일‘ 의식과 달리 그 자체로 논리적 완결성을 가진 개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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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전진국, "「청주운천동신라사적비」의 제작 연대 검토- 서체와 주변 환경을 중심으로 -" 한국사연구회 (184) : 147-176, 2019

      2 권순홍, "역사용어에도 유효기한이 있다―신라 ‘삼국통일’의 균열" 75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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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윤경진, "신라의 영토의식과 삼한일통의식" 역사문제연구소 (126) : 12-39, 2019

      6 김영하, "신라의 ‘백제통합’과 ‘일통삼한’ 재론 -최근의 사료 비판과 해석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89) : 241-276, 2018

      7 장원섭, "신라삼국통일론 논의의 연구사적 검토" 신라사학회 (43) : 67-104, 2018

      8 윤경진, "신라 통일기 금석문에 나타난 天下觀과 歷史意識: 三韓一統意識의 성립 시기 고찰" 수선사학회 (49) : 177-216, 2014

      9 박남수, "신라 문무대왕의 삼국통일과 宗廟制 정비" 신라사학회 (38) : 263-316, 2016

      10 윤경진, "신라 興德王代 체제 정비와 金庾信 追封 ― 三韓一統意識 출현의 일 배경 ―" 수선사학회 (52) : 105-14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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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윤경진, "신라 통일기 금석문에 나타난 天下觀과 歷史意識: 三韓一統意識의 성립 시기 고찰" 수선사학회 (49) : 177-216, 2014

      9 박남수, "신라 문무대왕의 삼국통일과 宗廟制 정비" 신라사학회 (38) : 263-3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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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윤경진, "신라 神武-文聖王代의 정치 변동과 三韓一統意識의 출현" 신라문화연구소 46 : 207-24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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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김영하, "7세기 동아시아의 정세와 전쟁 -신라의 백제 통합과 관련하여-" 신라사학회 (38) : 1-38, 2016

      31 윤경진, "671년 「答薛仁貴書」의 ‘平壤已南 百濟土地’에 대한 재해석 : 백제의 영토의식과 浿河의 새로운 이해" 역사문화연구소 (60) : 3-5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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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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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09 1.09 0.9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5 0.85 1.637 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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