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방 목관묘는 묘제의 기본적인 모습이나 장례와 관련지우면 중국 중원에서 성립된 묘제가 변용된 것이다. 이 목관묘는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청동기로 보아 처음에는 한반도 서북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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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orean
목관묘 ; 적석목관 ; 사로 ; 고조선 ; 청동기 ; 육촌 ; wooden coffin tomb(木棺墓) ; wooden coffin with stones(積石木棺) ; Saro (斯盧) ; the old Joseon(古朝鮮) ; bronze ; six villages(六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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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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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방 목관묘는 묘제의 기본적인 모습이나 장례와 관련지우면 중국 중원에서 성립된 묘제가 변용된 것이다. 이 목관묘는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청동기로 보아 처음에는 한반도 서북지방...
영남지방 목관묘는 묘제의 기본적인 모습이나 장례와 관련지우면 중국 중원에서 성립된 묘제가 변용된 것이다. 이 목관묘는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청동기로 보아 처음에는 한반도 서북지방에서 유래하여 호서와 호남에서 정착하여 새롭게 변용된 이형동기와 함께 상주를 비롯한 낙동강 중상류로 먼저 들어와 그것이 낙동강을 따라 남하하여 대구와 경주지역에서 많이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 이것이 목관묘 문화의 1차적 파급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묘제는 적석목관묘일 가능성이 크고 순수목관묘도 존재했을 것이다. 이후 2차의 목관묘 문화 파급으로 군집하는 경향이 발생하였다. 이때는 점차 순수목관묘만 사용된다.
이러한 목관묘와 그 유물은 이제까지 논의되어 온 바와 같이 고조선계 유이민과 관련되었음을 증빙하는 자료로 판단된다. 이형동기가 출토되는 적석목관묘가 섞인 1차 파급 목관묘 문화의 경우 준왕의 남래, 秦·漢 문화가 섞인 2차 파급 목관묘 문화의 경우 고조선 멸망 즈음의 유이민과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위만의 성립 이후 중국 秦·漢을 통해 그 문화가 그 이전 재지 문화와 융합되어 있었고, 그것이 남하하여 남부지방 목관묘 문화를 형성시킨 것이 된다.
경주의 사로국은 이러한 목관묘 문화의 2차 파급 후 좀 시간이 흘러 기원전 1세기 후반 무렵에 성립되었다. 처음 목관묘를 축조하는 2차 파급의 유이민 집단은 산간에 자리하여 그리 세력을 확장할 수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발달된 문화 수준과 서북지방과의 교류 장악 등을 통해 세력을 키웠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성립된 사로국은 그 기반이 경주지역의 지리적으로 구분되는 6개 지구에 자리했던 세력집단이었다. 그리고 남산 서북록에 중심을 둔 경주시가지 지구의 세력이 대표적인 존재로 사로의 국읍으로 역할을 하였다. 이들이 육촌과 관련될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wooden coffin tomb in Yeongnam province is transformed from tombstyle which is estavlished in China central plains. To begin with, this wooden coffin tomb originate in the Northwestern Part of Korean Peninsula, look at bronze goods of excavated re...
The wooden coffin tomb in Yeongnam province is transformed from tombstyle which is estavlished in China central plains. To begin with, this wooden coffin tomb originate in the Northwestern Part of Korean Peninsula, look at bronze goods of excavated relics, become established in Hoseo and Honam region. It first of all came in upper-middle region of Nakdong river, inculding Sangju etc, with the particular shaped bronze which were transformed new style. This moved south along Nakdong river, and It is used in Daegu and Gyeongju. This is able to primary affect of the wooden coffin tomb culture, and maybe this tomb-style will be the wooden coffin with stones and exist the original wooden coffin. Since then tendency to community come into the secondary ripple effect of the wooden coffin tomb culture. At this time, there is used gradually the original wooden coffin.
These kind of wooden coffin tomb and relic seemed to be evidence which related the old Joseon emigration. The primary ripple effect which is excavated the particular shaped bronze and mixed the wooden coffin with stones is associated with king Jun’s south movement, the secondary ripple effect of the wooden coffin tomb culture which is mixed the Chin-Han culture in China is associated with emigration when happened at the fall of the old Joseon.
The small state of Gyeongju, ‘Saro(斯盧)’ is established at the second half of the 1st century B.C after the secondary ripple effect of the wooden coffin tomb culture. At first, emigration group who construct the wooden coffin tomb are located in the hills, they can’t extend. But as time goes on widen it’s influence through developed culture and interchange of northwestern area, after all this established culture is based. ‘Saro’ located at Gyeongju where is classified into the district of the six villages(六村). The power group of Gyeongju downtown where place at the northwest of Namsan mountain play a role as capital of ‘Saro’.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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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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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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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69 | 1.69 | 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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