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은 자신이나 데리다를 유대인 음모나 전체주의 같은 추상적 보편성을 옹호하는 부류로 인식하는 집단에 맞서 초기 데리다적 차연 개념으로 돌아갈 것을 적극적으로 호소한다. 이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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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지젝은 자신이나 데리다를 유대인 음모나 전체주의 같은 추상적 보편성을 옹호하는 부류로 인식하는 집단에 맞서 초기 데리다적 차연 개념으로 돌아갈 것을 적극적으로 호소한다. 이러한 ...
지젝은 자신이나 데리다를 유대인 음모나 전체주의 같은 추상적 보편성을 옹호하는
부류로 인식하는 집단에 맞서 초기 데리다적 차연 개념으로 돌아갈 것을 적극적으로
호소한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초기 데리다로의 단순한 복귀, 즉 데리다의 어휘를 단
순히 반복하는 진부한 시도가 아니다. 그는 데리다의 차연 개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어
휘를 끌어낸 뒤 이를 독일 관념론과 정신분석의 어휘를 통해 세분화, 구체화하여 자신
의 독특한 사유 체계를 정립해 나간다. 여러 체계들 내의 통일한 원리를 파악한 뒤 이
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체계를 구성해내는 지젝의 작업은 오늘날 지식인들이 필요로
하는 창의적 작업의 전형으로 비춰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데리다를 대립구조 속에 가두어 후기 데리다와 초기 데리다를 구분 지으려
는 지젝의 시도는 데리다의 사상을 오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초기 데리다의 차연과 마찬가지로 후기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 개념은 절대적 타
자성이라는 형식에 집착하기보다 절대적 타자성이라는 바로 그 형식을 내파해야 한다
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데리다의 정의, 코라, 탈구의 위상
은 라캉의 충동의 대상-상실로서의 오브제 a나 지젝의 시차가 차지하는 위상에 더 가
깝다. 이러한 근접성은 데리다와 정신분석의 차별성을 해체시켜버려, 라캉이나 지젝의
개념들이 결국 데리다의 연구 범주 내에 종속돼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물론 지젝은
헤겔의 절대적 보편성 개념을 끌어들임으로써 데리다의 연구가 헤겔의 그것을 다르게
반복한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조차도 정신분석이 해체주의의 범주 내에
서 작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뒤바꾸지는 못한다. 지젝이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
개념을 충동이 아닌 욕망의 구조 속에 가두어두려는 시도는 정신분석의 해체주의 극
복이라는 대의(cause) 와 연관돼 있는 듯 보인다. 아마도 지젝은 헤겔과 라캉의 이론을
강조해야 할 전략적 필요성 때문에 데리다의 작업을 일정부분 퇴색시키려 하는 것이
아닐까?
목차 (Table of Contents)
정부규모의 축소를 위한 아웃소싱의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