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영조대 남대문의 장소성 변화와 그를 통한 통치방식을 살폈다. 조선시대 남대문은 서울의 정문으로 기능하며 각종 의례가 시행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앞 시기에는 사형이나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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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Korean
영조 ; 남대문 ; 헌괵례 ; 을해옥사 ; 금주령 ; Yeongjo ; Namdaemun ; Heongoikrye ; Eulhaeoksa ; prohibition of drinkin
KCI등재
학술저널
259-28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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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영조대 남대문의 장소성 변화와 그를 통한 통치방식을 살폈다. 조선시대 남대문은 서울의 정문으로 기능하며 각종 의례가 시행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앞 시기에는 사형이나 처벌...
본 연구는 영조대 남대문의 장소성 변화와 그를 통한 통치방식을 살폈다. 조선시대 남대문은 서울의 정문으로 기능하며 각종 의례가 시행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앞 시기에는 사형이나 처벌이 시행되지 않았다. 영조대에 남대문은 이전 왕들의 시기와 구분되는 장소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헌괵례와 각종 처벌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1728년 무신란 때 남대문에서 헌괵례가 실시되었다. 영조는 이곳에서 난이 진압되었음을 알리는 승리의식을 거행했다. 이때의 남대문은 그의 건재함과 통치가 지속될 것임을 알리는 권위의 공간이었다. 이후 『국조속오례의』에 정리되면서 헌괵의 장소로 지정되었다. 1755년 을해옥사와 임오화변이 있던 1762년 윤구연 사건을 거치면서 남대문은 권위의 공간에서 권력의 장소로 변화한다. 영조는 남대문에서 직접적인 사형과 처벌을 실시하면서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제 남대문은 사형의 장소로 그리고 상징적 처벌을 통해 視의 통치를 구현하는 장소가 되었다. 영조는 그의 권위가 실추될 때마다 헌괵의 장소에서 형을 집행하는 것을 통해 그의 권력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재위 후반으로 갈수록 역모뿐만 아니라 금주령이나 범야 등을 저지른 범법자를 이곳에서 처벌했다. 영조는 남대문에서 상징적 처벌을 시행하고 이를 통해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통치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study looked into changes of placeness of Namdaemun and governing ways through it. Namdaemun in the Joseon dynasty functioned as the main gate of the capital. And there, several ceremonies were held. So death penalty or other punishment was not ex...
The study looked into changes of placeness of Namdaemun and governing ways through it. Namdaemun in the Joseon dynasty functioned as the main gate of the capital. And there, several ceremonies were held. So death penalty or other punishment was not executed there in the times before Yeongjo reign.
Namdaemun in Yeongjo period had placeness different from the times of existing Kings. This is because Heongoikrye(獻馘禮), a ceremony to present head or left ear of a dead enemy after winning in a war) and several punishments were executed there. In the Musin(戊申) Revolt in 1728, Heongoikrye was executed at Namdaemun. Yeongjo held a ceremony to celebrate victory there, publicizing that the revolt was suppressed. Then, Namdaemun was a place of authority to make it known that he was well and his governing would be continued. After then, the ceremony was listed on Gukjosokohryeui 『國朝續五禮儀』. Namdaemun was designated as a place of Heongoikrye.
After Eulhaeoksa(乙亥獄事) in 1755 and Yoon Gu-yeon case in 1762, Namdaemun became a place of power from a place of authority - Yimohhwabyeon(壬午禍變) took place in the same year as Yoon Gu-yeon case. Yeongjo exerted power, executing death penalty and other punishment in person at Namdaemun. So Namdaemun as a place of death penalty, became a place to realize governing of deeply seeing through symbolic punishment. Whenever authority of Yeongjo was lost, he directly disclosed his power through execution of punishment at the place Heongoikrye. And as time passed to later period of his reign, conspiracy as well as breach of prohibition of drinking or passing etc. were punished there. Yeongjo showed governing way to aroused people’s attention through symbolic punishment at Namdaemun.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상배, "조선후기 정치와 괘서" 국학자료원 1999
2 조윤선, "조선후기 영조 31년 乙亥獄事의 추이와 정치적 의미" 고려사학회 (37) : 233-26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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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백철, "두 얼굴의 영조" 태학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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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백철, "英祖의 義理明辯書『闡義昭鑑』 편찬과 정국변화 : 堯舜의 두 가지 얼굴, 탕평군주와 전제군주의 경계" 한국학중앙연구원 33 (33): 7-40, 2010
12 신진혜, "英祖代 凱旋 儀禮의 整備와 그 意義" 태동고전연구소 34 : 7-41, 2015
13 "朝鮮王朝實錄"
14 박진, "朝鮮時代 禁酒令과 減膳의 정치적 활용" 한국역사민속학회 (53) : 93-128, 2017
15 "推案及鞫案"
16 "承政院日記"
17 정다함, "征伐이라는 戰爭/征伐이라는 祭祀 - 世宗代 己亥年 “東征”과 婆猪江 “野人征伐”을 중심으로 -" 고려사학회 (52) : 271-306, 2013
18 "國朝寶鑑"
19 이경구, "1740년(영조 16) 이후 영조의 정치 운영" 한국역사연구회 (53) : 23-44, 2004
개항기 및 일제 강점기 전기(前期, 1893~1924년) 목포화교의 경제 · 사회적 활동에 관한 연구
목포의 ‘로컬리티’로서 고하도 이충무공 문화유산의 전승 내력과 가치
지역사회의 혁신학교 만들기와 과정 중심 교육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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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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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9 | 0.29 | 0.3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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