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이후 1929년까지 8점이라는 적은 수의 작품에 수화승의 책임을 맡고 있는 ‘만총’은 일찍이 수화승 ‘문성, 약효, 용준, 정연’ 아래 참여하여 출초(出草) 역할을 맡아오면서 실력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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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1901년 이후 1929년까지 8점이라는 적은 수의 작품에 수화승의 책임을 맡고 있는 ‘만총’은 일찍이 수화승 ‘문성, 약효, 용준, 정연’ 아래 참여하여 출초(出草) 역할을 맡아오면서 실력을 인...
1901년 이후 1929년까지 8점이라는 적은 수의 작품에 수화승의 책임을 맡고 있는 ‘만총’은 일찍이 수화승 ‘문성, 약효, 용준, 정연’ 아래 참여하여 출초(出草) 역할을 맡아오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어느 시기부터 불화 수업을 받아 왔는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지만, 1893년과 1895년의 두 작품에서만 사미승(沙彌僧)으로서 ‘출초’ 역할을 맡고 있을 뿐 이후부터는 비구승(比丘僧)으로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88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인 불화 수업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보조 화승으로 조성에 참여한 16점의 불화 가운데 8점에서 ‘출초’ 역할을 맡고 있을 정도로 밑그림 그리는 실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짐작되는 ‘만총’은, 1901년부터 1929년까지는 일련의 보조 화승들을 거느린 수화승으로서 책임을 맡아 불화를 조성함으로서 그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겠다.
1917년 무렵 완주 송광사와 남원 선원사를 주 무대로 하여 조성한 〈비로자나후불도〉와 〈지장시왕도〉, 〈신중도〉등을 통해, 동양회화의 삼원법(三遠法)과 연관지어 공간과 거리를 나타내는 서양화적 원근법, 그리고 공간감 부여 및 온화한 느낌의 한난대비(寒暖對比) 효과와 화면을 넓어 보이게 하는 면적대비(面積對比)와 보색대비(補色對比)를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일정한 굵기의 철선묘(鐵線描)를 사용하여 길어진 존상의 얼굴 형태와 상호표현을 하고 있으며, 서양화적 명암을 더하여 입체감을 강조하고 담채기법(淡彩技法)의 수채화적 분위기의 필법을 구사한 서양화적 표현기법을 보여줌으로써 근대기로 지칭하는 시기의 불화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만의 새로운 화풍을 살펴보았다는 데 연구 의의를 둘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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