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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유학자들의 타 종교관 연구 = A study on the other religion of the Neo-Confucianist in Chosun-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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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0213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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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여말(麗末)로부터 선말(鮮末)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 봉건기를 견인했던 주자학적 사유는 전기의 불교 및 도교 배척과정, 중기의 무극과 태극, 사단과 칠정, 예송, 인물성 등에 대한 논변과정, 후기의 천주교 및 서학(西學)과의 충돌과정을 거쳐 점차 그 유기체적 생명력을 다하게 된다.
      전기의 불교 및 도교 배척기가 우리사회의 고대적 요소를 축출해 가는 과정임과 동시에 봉건적 의식으로서의 주자학이 그 스스로의 자아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었다면, 임진왜란 전후 200여 년 동안 전개된 주자학 (즉 理學 및 禮學)상의 내부논변기는 조선사회가 스스로의 봉건자아적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선말 서학 내지 천주교에 가해진 박해는 경험적 사유를 수반하여 도전해 온 서구문명에 맞서 봉건적 사유로서의 조선유학이 그 자아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말 · 선초에 이 땅에 처음 나타나서 격렬한 몸짓으로 불교와 도교를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고, 16세기 초로부터 18세기 초에 이르는 2백여 년 간의 치열한 논변을 일으키며, 선말에 박해를 통하여 서구적 사유를 부인하려했던 일련의 사건들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충돌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사유의 필연적 과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종교는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과거에서 미래로,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다만 종교나 사상이 특수한 시대사회에 전파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의식했건 안했건 간에 그 사회가 가지는 시간성에 최적화하는 변용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 종교적 사유의 시대사회적 변용의 과정을 우리는 ‘역사적’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아무리 원형을 잘 유지했다고 하더라도 수당고 고려의 불교는 ‘역사적’ 불교이고 양송과 조선의 유학은 ‘역사적’ 유교인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일반적인 논의에 바탕해서 조선유교의 ‘역사성’ 곧 봉건성을 드러내 보이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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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말(麗末)로부터 선말(鮮末)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 봉건기를 견인했던 주자학적 사유는 전기의 불교 및 도교 배척과정, 중기의 무극과 태극, 사단과 칠정, 예송, 인물성 등에 대한 논변과...

      여말(麗末)로부터 선말(鮮末)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 봉건기를 견인했던 주자학적 사유는 전기의 불교 및 도교 배척과정, 중기의 무극과 태극, 사단과 칠정, 예송, 인물성 등에 대한 논변과정, 후기의 천주교 및 서학(西學)과의 충돌과정을 거쳐 점차 그 유기체적 생명력을 다하게 된다.
      전기의 불교 및 도교 배척기가 우리사회의 고대적 요소를 축출해 가는 과정임과 동시에 봉건적 의식으로서의 주자학이 그 스스로의 자아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었다면, 임진왜란 전후 200여 년 동안 전개된 주자학 (즉 理學 및 禮學)상의 내부논변기는 조선사회가 스스로의 봉건자아적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선말 서학 내지 천주교에 가해진 박해는 경험적 사유를 수반하여 도전해 온 서구문명에 맞서 봉건적 사유로서의 조선유학이 그 자아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말 · 선초에 이 땅에 처음 나타나서 격렬한 몸짓으로 불교와 도교를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고, 16세기 초로부터 18세기 초에 이르는 2백여 년 간의 치열한 논변을 일으키며, 선말에 박해를 통하여 서구적 사유를 부인하려했던 일련의 사건들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충돌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사유의 필연적 과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종교는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과거에서 미래로,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다만 종교나 사상이 특수한 시대사회에 전파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의식했건 안했건 간에 그 사회가 가지는 시간성에 최적화하는 변용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 종교적 사유의 시대사회적 변용의 과정을 우리는 ‘역사적’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아무리 원형을 잘 유지했다고 하더라도 수당고 고려의 불교는 ‘역사적’ 불교이고 양송과 조선의 유학은 ‘역사적’ 유교인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일반적인 논의에 바탕해서 조선유교의 ‘역사성’ 곧 봉건성을 드러내 보이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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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mind is reflection of the materials. The thought is ‘historic’. In Korai-Buddhism(高麗佛敎), the situation of the special times of ‘Korai-society(高麗社會) was reflected.
      Chu-Hsi(朱子) made the Study of Chu-His, and the Study of Chu-His made Chosun-dynasty, and Chosun-dynasty developed the study of Chu-Hsi again. Scholars(儒學者) of Chosun-dynasty always said the universal rule, but Actually, the bigger profit of the landed classes that oneself belonged to was interest. When Chosun-Dynasty began, as for scholars, they having expelled Buddhism Terribly. Buddhism was thought for the Royal Family nobles, but not for the landed classes.
      In the middle of Chosun-Dynasty, the debate between schools(儒學學派) was fierce. They insisted that their words were almost more truth, but there was the cause of quarrel was going to protect the profit of the group where oneself belonged to. For the last years of Chosun-Dynasty, the reason why scholars oppressed Catholicism (天主敎) was that they challenged the view of the world and the profit of the group.
      If we looked at a point of view called the development history, A Feudalistic-thought, feudal reason beat what Neo-Confucianism won Buddhism in early Chosun-Dynasty, it is that feudalistic-thought won the ancient-thought, and the scholars failed in control of the Catholicism (天主敎) and west-study(西學) at the later Chosun-Dynasty, was the same the feudalistic-thought lost in modernistic ? thought.
      The thought is progressively advances by the law of th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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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ind is reflection of the materials. The thought is ‘historic’. In Korai-Buddhism(高麗佛敎), the situation of the special times of ‘Korai-society(高麗社會) was reflected. Chu-Hsi(朱子) made the Study of Chu-His, and the Study o...

      The mind is reflection of the materials. The thought is ‘historic’. In Korai-Buddhism(高麗佛敎), the situation of the special times of ‘Korai-society(高麗社會) was reflected.
      Chu-Hsi(朱子) made the Study of Chu-His, and the Study of Chu-His made Chosun-dynasty, and Chosun-dynasty developed the study of Chu-Hsi again. Scholars(儒學者) of Chosun-dynasty always said the universal rule, but Actually, the bigger profit of the landed classes that oneself belonged to was interest. When Chosun-Dynasty began, as for scholars, they having expelled Buddhism Terribly. Buddhism was thought for the Royal Family nobles, but not for the landed classes.
      In the middle of Chosun-Dynasty, the debate between schools(儒學學派) was fierce. They insisted that their words were almost more truth, but there was the cause of quarrel was going to protect the profit of the group where oneself belonged to. For the last years of Chosun-Dynasty, the reason why scholars oppressed Catholicism (天主敎) was that they challenged the view of the world and the profit of the group.
      If we looked at a point of view called the development history, A Feudalistic-thought, feudal reason beat what Neo-Confucianism won Buddhism in early Chosun-Dynasty, it is that feudalistic-thought won the ancient-thought, and the scholars failed in control of the Catholicism (天主敎) and west-study(西學) at the later Chosun-Dynasty, was the same the feudalistic-thought lost in modernistic ? thought.
      The thought is progressively advances by the law of th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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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한글요약
      • 1. 서론
      • 2. 다른 사상들에 대한 중국유자들의 태도
      • 3. 봉건적 자아의 확대과정 ; 도 · 불 배척기
      • 4. 봉건적 정체성의 확립과정 ; 내부투쟁기
      • 한글요약
      • 1. 서론
      • 2. 다른 사상들에 대한 중국유자들의 태도
      • 3. 봉건적 자아의 확대과정 ; 도 · 불 배척기
      • 4. 봉건적 정체성의 확립과정 ; 내부투쟁기
      • 5. 근대성과의 조우 ; 천주교 비판
      • 5. 결론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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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안향, "회헌집, 유국자제생문"

      2 조광, "황사영백서의 사회사상적 배경" (21, 22) : 1977

      3 최석우, "한국천주교의 역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4 황성모, "한국사회사론" 심설당 306-, 1984

      5 윤성범, "한국기독교와 제사문제" (12,13) : 1968

      6 최석우, "한국교회사의 탐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7 유홍렬, "증보한국천주교회사" 가톨릭출판사 1981

      8 무내의웅, "중국사상사" 여강 1987

      9 권상우, "주희의 ‘仁義’에 대한 理一分殊적 해석" 새한철학회 4 (4): 25-48, 2007

      10 이능화, "조선도교사" 보성문화사 2000

      1 안향, "회헌집, 유국자제생문"

      2 조광, "황사영백서의 사회사상적 배경" (21, 22) : 1977

      3 최석우, "한국천주교의 역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4 황성모, "한국사회사론" 심설당 306-, 1984

      5 윤성범, "한국기독교와 제사문제" (12,13) : 1968

      6 최석우, "한국교회사의 탐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7 유홍렬, "증보한국천주교회사" 가톨릭출판사 1981

      8 무내의웅, "중국사상사" 여강 1987

      9 권상우, "주희의 ‘仁義’에 대한 理一分殊적 해석" 새한철학회 4 (4): 25-48, 2007

      10 이능화, "조선도교사" 보성문화사 2000

      11 이능화, "조선기독교급외교사" 한국학연구소 1928

      12 금장태, "조선근대사상의 도전" 전통문화연구회 1995

      13 이진용, "위진시기 유가사상 속의 은일隱逸사상 - 갈홍의 『포박자외편抱朴子外篇』을 중심으로 -" 새한철학회 1 (1): 243-264, 2008

      14 홍이섭, "신유년에 있어서의 신문상황" 8 (8): 1965

      15 주재용, "선유의 천주사상과 제사문제" 경향잡지사 1958

      16 석정수부, "봉건사회 해체기의 사회경제구조" 청아출판사 1982

      17 최석우, "병인박해자료연구" 한국교회사연구소 1968

      18 최석우, "병인박해자료연구" 한국교회사연구소 1968

      19 조광, "번암 채제공의 서학관" (17,18) : 1973

      20 안종수, "마테오 리치의 리기관(理氣觀)" 새한철학회 60 (60): 37-58, 2010

      21 수본순일랑, "동양정치사상사 연구" 동녘 1985

      22 박지훈, "당송변혁기의 화이관의 이해" 한국중국학회 40 : 1999

      23 삼환, "근기실학연원제현집 권6"

      24 유홍렬, "고종치하 서학수난의 연구" 을유문화사 1962

      25 "高麗史"

      26 안정복, "順菴集, 「天學考」"

      27 이기경, "闢衛編" 한국교회사연구소 1978

      28 이만채, "闢衛篇" 闢衛社 1931

      29 이시홍, "闢洋學文"

      30 이항로, "鎖國攘夷思想. 論洋敎之禍"

      31 김평묵, "重庵集, 「禦洋論」, 「海上錄」 「斥洋大義」"

      32 이정관, "辟邪辨變證"

      33 이이명, "踈齋集, 書牘 「與西洋人蘇霖戴進賢」"

      34 이수광, "芝峯類說의 天主實義에 관한 評論"

      35 전우, "艮齋集, 「闢邪」, 상, 하. 自西東辨, 梁集諸說辨, 新學論"

      36 홍양호, "耳溪集, 「與紀尙書昀書」의 別幅 및 附答書"

      37 박지원, "熱河日記의 북경천주당 기사. 利馬竇塚의 기사"

      38 신후담, "河濱全集, 권2 내편 「紀聞 (星湖紀聞)」, 「遯窩西學辨」"

      39 장재, "正蒙"

      40 주자, "朱子大全, 朱子語類"

      41 구양수, "本論"

      42 "朝鮮王朝實錄"

      43 이언적, "晦齋全書"

      44 이익, "星湖先生全集, 권55 「跋天主實義」"

      45 조인영, "斥邪閏音"

      46 김치진, "斥邪論"

      47 김정원, "斥邪疏"

      48 이간, "巍巖遺稿"

      49 이명환, "家學闢異淵源錄序,근기실학연원제현집, 권6"

      50 이헌경, "天學問答"

      51 朴志焄, "南宋 高宗代 主戰派의 華夷論" 동양사학회 85 : 2-99, 2003

      52 한원진, "南塘集"

      53 최익현, "勉庵集, 卷16 雜著, 「布告八道士民」"

      54 손복, "儒辱篇, 春秋尊王發微"

      55 이규경, "五洲衍文, 正廟戊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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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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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5 0.75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8 1.432 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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