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도 서정시의 개념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서정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북한에서 서정시에 대한 언급은 「조선문학통사」(1959)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해방직후 서정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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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북한에서도 서정시의 개념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서정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북한에서 서정시에 대한 언급은 「조선문학통사」(1959)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해방직후 서정시에...
북한에서도 서정시의 개념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서정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북한에서 서정시에 대한 언급은 「조선문학통사」(1959)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해방직후 서정시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은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해방의 기쁨을 담기에 서정시는 좋은 그릇역할을 했다.
두 번째로 해방이 되고 1946년 2월 8일 북한에서 임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가장 당면한 과제로 친일과 반민족주의자들의 숙청과 지주들의 토지를 소작농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는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대한 희망 등이 서정시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서정시는 196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에 의해 유일사상 체계가 구축되면서부터 다시 <주체의 서정시>란 이름으로 둔갑되어 북한의 문학사에서 크게 부상하게 되었다.
최근 「서정시 선집」(1955)이 발견된 것은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선 남북한 문학사에서 동시에 사라졌던 월북 시인들의 동향을 어느 정도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된 데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정지용·김기림·백석·오장환 등의 시인들은 50년대 초반에 사라진 이후 그 무렵 어느 시집에도 다시 등장하지 않았음이 확인이 되었고,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의 여파로 수많은 시인들이 연루되어 숙청된 결과 문학사를 수놓았던 임화·안막·민병균·서만일·김조규·박팔양· 등의 중요한 시인들이 줄줄이 실종되어 버리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하지만 숙청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한 리용악·조벽암·김조규(한 때 제명되었으나 다시 부상함) 등이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반면 안룡만·김북원·김순석·리맥·리효운·정문향·정서촌·동승태·마우룡·리호남·강승한·김광섭·김귀련·김춘희·김철 등 해방 전후에 등단한 신인들이 북한 문학사를 새롭게 떠맡게 된 것을 확인한 것도 큰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서정시 선집」에 발표된 당대 북한을 움직인 서정시인들의 시를 분석해보면, 해방 직후부터의 북한 사회의 변화양상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첫째, 이들 서정시는 소련과의 친선을 강조하고 국제주의를 예찬한다. 둘째, 6·25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시들에서는 인민군대를 예찬하고 미군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고 있다. 셋째, 김일성에 대한 찬양이 나오되, 고매한 인간성과 인민에 대한 자애로움을 강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새 공화국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고 '민주기지론'을 강조하여 통일에 대한 분리주의적 태도를 보여준다. 다섯째, 토지개혁 등 민주개혁 조치를 지지하고 이러한 개혁을 통한 농촌이나 공장 등에서의 변화된 환경에 대한 기쁨을 노래하는 시가 많이 눈에 띈다. 여섯째, 자주통일 독립을 위한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고 남한에 대한 비판(주로 이승만 정권을 괴뢰정부로 묘사함)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목차 (Table of Contents)
북한, 중국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안보정세:북한의 최근변화동향을 중심으로
북이탈 주민 남한사회 정착교육의 현황과 개선방향:하나원 사회적응 교육 평가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