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차별적인 시선들: 일제의 3.1운동 탄압과 잔학행위에 대한 영국의 반응 = Different Discriminatory Views: Britain’s Response to Japanese Atrocities during the March First Movement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8109846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Britain's response to Japanese atrocities committed during the March First Movement in 1919 by analyzing Britain's Foreign Office documents. In the 1910s, Britain doubted the Government-General of Joseon's capabilities to govern ...

      This article examines Britain's response to Japanese atrocities committed during the March First Movement in 1919 by analyzing Britain's Foreign Office documents. In the 1910s, Britain doubted the Government-General of Joseon's capabilities to govern colonial Korea as a "guardian" and was concerned about their anti -Christian sentiment. In 1919, when the March First movement occurred, Britain pointed out that Japan's militarist colonial government lacked the representation of the native Koreans and suggested a liberal reform that would bring a civil government to Korea.
      Japan accepted this suggestion, and in August 1919, they announced the reform of th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and took more conciliatory measures, including the abolition of flogging. However,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continuously committed atrocities in Korea despite the announcement. Furthermore, later in 1920, British human rights societies and newspapers paid attention to Japanese atrocities and questioned whether or not Britain should be responsible for the ally's action. It eventually argued against the renewal of the Anglo-Japanese Alliance. Although Britain played an essential role in pressuring Japan to change its violent policies, their actions were mainly intended to defend the safety of Britons in Korea and save Britain's prestige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영국 외무성의 문서를 분석하여 3.1운동 당시 일제가 저지른 잔학 행위에 대한 영국의 반응과 그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1910년대 영국은 조선총독부가 가지고 있는 반기독교 정서...

      본고는 영국 외무성의 문서를 분석하여 3.1운동 당시 일제가 저지른 잔학 행위에 대한 영국의 반응과 그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1910년대 영국은 조선총독부가 가지고 있는 반기독교 정서에 대한 우려와 일제의 식민 통치 역량에 대한 의구심이 들고 있었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영국은 일제의 무단 통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일본은 이를 수용하여 1919년 8월 조선 식민 통치 방식을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고 태형을 폐지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경찰에 의해 잔학 행위가 외국인에 대한 적대행위가 이어지는 데다, 특히 1920년 후반 영국의 민권 단체와 언론이 일본의 잔학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당시 동맹국인 영국에 책임을 묻기 시작하자, 영국 외무성 역시 조선 내 일제의 잔학 행위 문제를 들어 영일동맹의 가치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결국 이 문제가 영국이 영일동맹을 폐기하기로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영국 역시 자국 식민지에서 유사한 잔학 행위로 논란이 있음에도 일본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를 들이밀어,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계도 있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구대열, ""자유주의" 열강과 식민지 한국(1910-1945)" 한국정치사상학회 10 (10): 85-114, 2004

      2 김진호, "홍성지역의 3·1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3) : 63-104, 2004

      3 김진호, "함경남도의 3·1운동" 20 : 149-233, 2018

      4 전상숙, "파리강화회의의 현실과 ‘식민지 조선’의 3.1운동" 일본연구소 11 (11): 180-203, 2019

      5 김진호, "충남지방 횃불독립만세운동의 전개와 일제의 탄압" 21 : 253-310, 2018

      6 이양희, "일제의 경기・인천지역 3·1운동 탄압 양상" 한국역사연구회 (113) : 85-122, 2019

      7 손준식, "일제 식민지 하 대만 경찰제도의 변천과 그 역할" 중국근현대사학회 (47) : 49-75, 2010

      8 송경근, "이집트에 대한 영국의 식민지배와 이집트 민족주의자의 저항(1882-1914)" 한국이슬람학회 15 (15): 17-36, 2005

      9 한승훈, "을사늑약을 전후한 영국의 대한정책" 고려사학회 (30) : 387-421, 2008

      10 이양희, "세종지역 3.1운동과 일제의 탄압" 호서사학회 (97) : 269-301, 2021

      1 구대열, ""자유주의" 열강과 식민지 한국(1910-1945)" 한국정치사상학회 10 (10): 85-114, 2004

      2 김진호, "홍성지역의 3·1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3) : 63-104, 2004

      3 김진호, "함경남도의 3·1운동" 20 : 149-233, 2018

      4 전상숙, "파리강화회의의 현실과 ‘식민지 조선’의 3.1운동" 일본연구소 11 (11): 180-203, 2019

      5 김진호, "충남지방 횃불독립만세운동의 전개와 일제의 탄압" 21 : 253-310, 2018

      6 이양희, "일제의 경기・인천지역 3·1운동 탄압 양상" 한국역사연구회 (113) : 85-122, 2019

      7 손준식, "일제 식민지 하 대만 경찰제도의 변천과 그 역할" 중국근현대사학회 (47) : 49-75, 2010

      8 송경근, "이집트에 대한 영국의 식민지배와 이집트 민족주의자의 저항(1882-1914)" 한국이슬람학회 15 (15): 17-36, 2005

      9 한승훈, "을사늑약을 전후한 영국의 대한정책" 고려사학회 (30) : 387-421, 2008

      10 이양희, "세종지역 3.1운동과 일제의 탄압" 호서사학회 (97) : 269-301, 2021

      11 홍창희, "세브란스병원의 진료활동으로 본 3・1운동" 의학사연구소 22 (22): 151-168, 2019

      12 박찬승,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 민속원 2018

      13 김상기, "瑞山지역 3·1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36) : 221-248, 2010

      14 김승태, "『재팬 애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ser)』의 3.1운동 관련 보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54) : 161-204, 2016

      15 國史編纂委員會,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19" 國史編纂委員會 1994

      16 Allerfeldt, Kristofer, "Wilsonian Pragmatism? Woodrow Wilson, Japanese Immigration, and the Paris Peace Conference" 15 (15): 545-572, 2004

      17 Dwyer, Philip, "Violence, Colinialism and Empire in the Modern World" Palgrave Macmillan 2018

      18 Best, Antony, "The International History of East Asia, 1900-1968: Trade, Ideology and the Quest for Order" Routledge 2009

      19 Umemori, Naoyuki, "Politics of Flogging: The Making of Japanese Colonial Governmentality" 363 : 37-44, 2006

      20 Ku, Dae-Yeol, "Korea under Colonialism : The March First Movement and Anglo-Japanese Relations"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1985

      21 Pete, Stephen, "Flogging, Fear and Food: Punishment and Race in Colonial Natal" 31 (31): 3-21, 2005

      22 "FO 410, Foreign Office: Confidential Print Japan"

      23 "FO 371, Foreign Office: Political Departments: General Correspondence from 1906-1966"

      24 권의석, "An Unfulfilled Expectation: Britain’s Response to the Question of Korean Independence, 1903-1905" 한국사연구소 23 (23): 27-53, 2018

      25 Nish, Ian, "Alliance in Decline: A Study of Anglo-Japanese Relations, 1908-23" Bloomsbury Academic 1972

      26 김원수, "4국협조체제와 한일병합의 국제관계, 1907~1912 - 영국의 동맹협상외교와 연계하여 -" 동북아역사재단 (29) : 55-96, 2010

      27 이덕주, "3ㆍ1운동과 제암리사건" 7 : 39-73, 1997

      28 안종철, "3ㆍ1운동, 선교사 그리고 미일간의 교섭과 타결" 한국민족운동사학회 (53) : 49-82, 2007

      29 이정은, "3·1독립운동의 지방시위에 관한 연구" 국학자료원 2009

      30 김승태, "3·1독립운동과선교사들의 대응에 관한 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45) : 105-159, 2013

      31 임후남, "1910년대 전후 기독교 초등교육 연구" 교육사학회 17 (17): 115-142, 2007

      32 염복규, "1910년대 일제의 태형제도 시행과 운용" 한국역사연구회 (53) : 187-219, 2004

      33 김지민, "1910년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과 3.1운동에 대한 반응" 역사실학회 (74) : 191-232, 2021

      34 윤경로, "105인 사건과 신민회 연구" 한성대학교 출판부 2009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2012-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10-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6-22 학회명변경 한글명 : 무악실학회 -> 역사실학회
      영문명 : Mooak Silhakhoe : The Historical Society Of Mooak Silhak -> Yeoksa Silhakhoe: The Historical Society of Yeoksa Silhak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5 0.65 0.7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4 0.69 1.438 0.21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