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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한국 무교회주의자들의 공동체 구상 = On the Ideas of Community of Korean Non-Congregationalists after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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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82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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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korean non-congregationalist movement was really started by korean followers of Uchimura Kanzo such as Kim Kyo-Sin and Ham Seok-heon in late 1920s. After liberation, the lineage of non-congregationalists who were searching for the ideas of community, was divided into two groups. One is the vein which flowed down via Kim Kyo-sin to Ryu Dal-yeong, and the other is the vein which flowed down via Ham Seok-heon to Lee Chan-gap and Hong Sun-myeong. Ryu Dal-yeong tried to realize his master Kim Kyo-sin’s idea of community on a national scale by participating in Anti-usury Project National Rebuilding Movement during the period of 5.16 military regime. Lee Chan-gap attempted to build the small scale, self-sufficient community, more faithful to the original creed of the non-congregationalism. Ryu Dal-yeong’s idea was reappropriated into SaeMaul Undong by the later government, and Lee Chan-gap’s idea is still activated by Hong Sun-myeong in Hongseong, Chu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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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korean non-congregationalist movement was really started by korean followers of Uchimura Kanzo such as Kim Kyo-Sin and Ham Seok-heon in late 1920s. After liberation, the lineage of non-congregationalists who were searching for the ideas of communi...

      The korean non-congregationalist movement was really started by korean followers of Uchimura Kanzo such as Kim Kyo-Sin and Ham Seok-heon in late 1920s. After liberation, the lineage of non-congregationalists who were searching for the ideas of community, was divided into two groups. One is the vein which flowed down via Kim Kyo-sin to Ryu Dal-yeong, and the other is the vein which flowed down via Ham Seok-heon to Lee Chan-gap and Hong Sun-myeong. Ryu Dal-yeong tried to realize his master Kim Kyo-sin’s idea of community on a national scale by participating in Anti-usury Project National Rebuilding Movement during the period of 5.16 military regime. Lee Chan-gap attempted to build the small scale, self-sufficient community, more faithful to the original creed of the non-congregationalism. Ryu Dal-yeong’s idea was reappropriated into SaeMaul Undong by the later government, and Lee Chan-gap’s idea is still activated by Hong Sun-myeong in Hongseong, Chu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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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한국 무교회주의는 1920년대 말, 일본의 무교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조선인 제자였던 김교신과 함석헌 등에 의해 본격 시작되었다. 해방 후 공동체 구상과 관련하여 무교회주의의 계보는, 김교신을 경유하여 류달영으로 내려가는 맥과 함석헌을 경유하여 이찬갑-홍순명으로 내려가는 맥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류달영은 5․16 군정기 재건국민운동을 통해 스승 김교신의 구상을 국가적 스케일에서 현실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찬갑은 보다 더 무교회주의의 본령에 충실한 소규모의 자족적 지역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류달영의 구상은 후일 정권에 의해 새마을 운동으로 전유되었고, 이찬갑의 구상은 홍순명을 통해 충남 홍성에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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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무교회주의는 1920년대 말, 일본의 무교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조선인 제자였던 김교신과 함석헌 등에 의해 본격 시작되었다. 해방 후 공동체 구상과 관련하여 무교회주의의 계...

      한국 무교회주의는 1920년대 말, 일본의 무교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조선인 제자였던 김교신과 함석헌 등에 의해 본격 시작되었다. 해방 후 공동체 구상과 관련하여 무교회주의의 계보는, 김교신을 경유하여 류달영으로 내려가는 맥과 함석헌을 경유하여 이찬갑-홍순명으로 내려가는 맥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류달영은 5․16 군정기 재건국민운동을 통해 스승 김교신의 구상을 국가적 스케일에서 현실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찬갑은 보다 더 무교회주의의 본령에 충실한 소규모의 자족적 지역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류달영의 구상은 후일 정권에 의해 새마을 운동으로 전유되었고, 이찬갑의 구상은 홍순명을 통해 충남 홍성에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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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함석헌,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1956

      2 정해진, "풀무학교의 근대 교육사적 의의" 안암교육학회 19 (19): 233-268, 2013

      3 류달영, "재건국민운동의 방향과 방법" 1962

      4 우치무라 간조, "우치무라 간조 전집 10" 크리스찬서적 2001

      5 백소영, "왜 하필 무교회인가" 2003

      6 류달영, "소중한 만남" 솔 1998

      7 류달영, "새 역사를 위하여" 부민문화사 1962

      8 류달영, "만남의 인생" 성천문화재단 2003

      9 홍순명,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풀무학교 이야기" 내일을 여는 책 1998

      10 "김교신 전집 2(신앙론)" 부키 2001

      1 함석헌,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1956

      2 정해진, "풀무학교의 근대 교육사적 의의" 안암교육학회 19 (19): 233-268, 2013

      3 류달영, "재건국민운동의 방향과 방법" 1962

      4 우치무라 간조, "우치무라 간조 전집 10" 크리스찬서적 2001

      5 백소영, "왜 하필 무교회인가" 2003

      6 류달영, "소중한 만남" 솔 1998

      7 류달영, "새 역사를 위하여" 부민문화사 1962

      8 류달영, "만남의 인생" 성천문화재단 2003

      9 홍순명,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풀무학교 이야기" 내일을 여는 책 1998

      10 "김교신 전집 2(신앙론)" 부키 2001

      11 "김교신 전집 1(인생론)" 부키 2001

      12 백승종, "그 나라의 역사와 말" 궁리 2002

      13 허은, "5․16 군정기 재건국민운동의 성격" 11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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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6-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1-10-19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AKOS(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 INAKOS(International Association of Korean Literary and Cultural Studies)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07-05-08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 INAKOS(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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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3 0.73 0.8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 0.78 1.756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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