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강원지역의 구석기문화’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지금까지 강원지역의 구석기유적 발굴조사에서 얻어진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강원지역의 구석기문화가 시간의 흐름...
이 논문은 ‘강원지역의 구석기문화’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지금까지 강원지역의 구석기유적 발굴조사에서 얻어진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강원지역의 구석기문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갔는가를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현재까지 강원지역에서 발굴조사된 유적은 모두 48군데에 이른다. 이 중에는 양구 상무룡리, 홍천 하화계리, 철원 장흥리, 춘천 금산리 갈둔, 동해 기곡, 동해 월소, 영월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 등이 포함되어 있어 이 지역 구석기유적을 편년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석기유물군 구성과 변화 양상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원지역의 구석기유적은 영서지역의 경우 북한강․홍천강․남한강, 그리고 이들 대하천으로 유입되는 크고 작은 지류로 구성되어 있는 하계망을 따라 하안단구 지형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영동지역에는 해안선을 따라 분포해 있는 해안단구 지형에 주로 구석기유적이 입지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강원지역에서 발굴조사된 유적의 지층과 유물층의 층서를 대비하여 유적마다 층위학적 맥락이 매우 뚜렷하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A층(명갈색 점토층), B-1층(암갈색 점토층), C-1층(적갈색 점토층)을 기준으로 층서를 확립하고, 그 사이에 유적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지층들(B-2층, C-2층)의 선후 관계를 정리하였다. 이렇게 정리된 층서를 바탕으로 각 지층에 해당되는 유적에서 확보한 절대연대 측정 결과를 나열하여 연대 범위를 설정하고, 문화 양상의 변화를 고려하여 중기 구석기시대 1․2․3기, 후기 구석기시대 1․2기로 시기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 구분에 따라 고환경의 변화, 층위 양상의 변화, 돌감 및 석기 갖춤새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강원지역 구석기문화의 전개 양상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강원지역에서는 아직까지 10만년전 이상 올라가는 전기 구석기시대 유적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두 번째 토양쐐기 구조가 발달한 적갈색 점토층(C-1층) 보다 하부 층준인 C-2층을 중기 구석기시대 1기(80~100 ka BP), 이 보다 상부 층인 C-1층을 중기 구석기시대 2기(65~80 ka BP)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층의 선후 관계에 의한 구분이며, 석기의 구성 등 문화 양상에서는 양자간에 큰 차이가 인지되지 않는다.
중기 구석기시대 1․2기는 마지막 간빙기의 대체로 따뜻하고 습윤한 기후환경에서 형성되었다. 중기 구석기시대 1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영서지역의 백이 1유물층, 금산리 갈둔 4유물층, 상무룡리(강원대) 최하층, 영동지역의 월소 5유물층, 월소 4-2유물층, 망상동 360-34 3유물층 등을 들 수 있다. 중기 구석기시대 2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영서지역의 백이 2유물층, 작은솔밭 3․4유물층, 금산리 갈둔 3유물층, 거두리 2유물층, 삼옥리, 영동지역의 월소 4-1유물층, 노봉 3유물층, 기곡 3유물층, 망상동 360-34 2유물층, 발한동 하층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주먹도끼 및 주먹찌르개, 찍개, 여러면석기, 주먹대패 등 대형의 몸돌석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또한 비교적 대형의 몸돌과 격지들이 주로 출토되었다. 중기 구석기시대 1기 유적에서는 발굴 면적이 적었던 망상동 360-34 유적을 제외한 모든 유적에서 주먹도끼류 석기가 출토된 반면, 중기 구석기시대 2기 유적에서는 주먹도끼류 석기가 포함되지 않은 유적도 여럿 있다. 돌감은 석영 및 규암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중기 구석기시대 1․2기의 따뜻했던 기후는 중기 구석기시대 3기(40~65 ka BP)로 접어들면서부터 대체로 마지막 빙하기의 춥고 건조한 기후 환경으로 변화되었다. 이 시기에 급격한 추위가 시작되면서 C-1층 상부에 두 번째 토양쐐기 구조가 발달하고 B-2층이 퇴적되었으나, 기후 조건 변화의 영향으로 이전 시기에 비해 유적의 수가 현저히 감소하고, 석기의 출토 빈도 수도 높지 않은 편이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영서지역의 백이 3유물층, 연봉리 3유물층, 영동지역의 월소 3유물층, 기곡 A지구 2유물층, 심곡리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백이 3유물층과 월소 3유물층에서 주먹도끼류, 찍개, 여러면석기 등과 더불어 긁개, 밀개, 홈날, 찌르개 등의 소형 석기가 집중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적에서는 소량의 석기들이 산발적으로 출토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편 후기 구석기시대 1기(20~40 ka BP)는 첫 번째 토양쐐기 구조가 발달한 암갈색 점토층(B-1층)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긴 빙하기의 중간에 해당되어 지금보다는 더 추운 기후였다고 생각된다.
후기 구석기시대 1기에 해당되는 유적으로는 영서지역의 거두리 1유물층, 금산리 갈둔 2유물층, 돌터거리, 연봉리 2유물층, 작은솔밭 2유물층, 연당리 피난굴(쌍굴), 기화리 쌍굴, 영동지역의 노봉 2유물층, 기곡 B지구 2유물층, 망상동 360-34 1유물층, 월소 2유물층, 주수리 2유물층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해당되는 유적들에서 출토된 석기구성 비율을 분석한 결과 찍개, 여러면석기, 주먹대패, 주먹도끼류 석기의 비율은 현저히 감소한 반면, 상대적으로 소형석기에 해당하는 긁개․밀개․홈날․찌르개 등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 시기는 석영제 소형석기 중심의 유물군이 두드러진다. 돌감 중 석영 및 규암의 높은 비율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후기 구석기시대 늦은 시기에 주로 나타나는 반암, 니암 등 정질의 돌감이 적은 비율이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변화가 나타난다.
다음으로 후기 구석기시대 2기(10~20 ka BP)는 명갈색 점토층(A층)에 해당한다. 속초 영랑호의 꽃가루 분석 결과, 17~15 ka BP 시기에는 빙하기의 추운 기후하에서 전나무속, 오엽송, 가문비나무속, 이깔나무속, 사초과 식물 등이 주로 자라 아한대성 침엽수림이 형성되어 있었고, 10 ka BP 이후에는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는 이엽송, 참나무속, 버드나무속, 호두나무속, 서어나무속, 느릅나무속 등이 증가하여 기후가 더 따뜻하고 건조해졌음을 알 수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 2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영서지역의 사둔지, 도둔, 작은솔밭 1유물층, 장흥리 1유물층, 상무룡리(경희대), 금산리 갈둔 1유물층, 연봉리 1유물층, 영동지역의 주수리 1유물층, 노봉 1유물층, 구미동, 월소 1유물층, 기곡 1유물층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찍개, 주먹대패, 여러면석기 등 대형석기의 비율은 대부분 5%미만에 그치고, 주먹도끼류 석기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긁개나 밀개, 새기개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슴베찌르개, 화살촉, 돌날 및 좀돌날(몸돌 포함)은 오로지 이 시기에만 확인된다. 이 시기 석기구성에서 매우 주목되는 양상은 영서지역의 상무룡리, 사둔지, 작은솔밭 1유물층에서 돌날 및 좀돌날(몸돌 포함)의 비율이 현저히 높은 반면, 영동지역의 구미동, 노봉 1유물층, 주수리 1유물층, 월소 1유물층 등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아 양 지역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곡 유적을 제외하고, 영동지역 유적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 1기의 석영제 소형석기 중심의 유물군 전통이 후기 구석기시대 2기까지 지속되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 시기 강원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주요 석기로는 갈린 좀돌날몸돌 및 좀돌날, 쐐기형 석기, 화살촉을 들 수 있다. 장흥리와 상무룡리 유적의 '한쪽 면이 갈린 좀돌날몸돌'과 더불어 장흥리․상무룡리․하화계리에서 확인된 '갈린 면을 지닌 잔손질된 흑요석 좀돌날'은 후기 구석기시대 2기의 새로운 좀돌날(몸돌) 제작 기술 공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흑요석 돌날을 소재로 한 몸돌의 한쪽 배면 전부 혹은 일부를 곱게 갈고, 이 갈린 배면을 타격면으로 삼아 등 방향으로 가파르게 잔손질하여 모서리를 만든 후 첫 돌날떼기를 하면 한쪽 가장자리에 갈린 면이 있는 잔손질된 좀돌날을 얻게 된다. 이것은 흑요석 돌날을 소재로 한 히로사토형 몸돌 작업 공정과 관련된다.
또한 동해 기곡 유적에서 출토된 '위․아래 모두 연속적으로 으스러진 두 개의 가로날을 특징으로 하는 쐐기형 석기'를 프랑스의 pièce esquillée와 동일한 유형의 석기로 인식하였으며, 사용흔 분석을 통해 이 석기는 단순한 양극떼기 기법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쐐기와 같은 중간매체 도구(tool)로서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동해 기곡과 월소에서 출토된 후기구석기 최말기의 수정 혹은 석영제 화살촉 4점은 후기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전이되는 과정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후기 구석기시대 2기에 속하는 철원 장흥리와 동해 기곡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용흔적들이 관찰되었다. 이 시기에 주로 출토되는 석기 중 새기개, 뚜르개, 긁개, 밀개, 좀돌날 등에서 석기의 사용 목적과 잘 일치하는 닳은 자국과 줄 자국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잔손질이 이루어지지 않은 석영제 격지에서 나타난 사용흔은 긁거나 자르는 기능을 하는데 격지의 가장자리 날카로운 날이 유용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이다.
후기 구석기시대 2기 유적들에서 출토된 석기의 돌감 구성 비율을 분석한 결과, 이전 시기와 달리 석영과 규암 이외에 흑요석, 수정, 반암, 니암 등 정질의 다양한 돌감이 현저하게 증가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영서지역의 하화계리 사둔지, 작은솔밭, 장흥리, 상무룡리 유적에서는 흑요석이 다량 출토되었다. 흑요석을 분석한 결과, 하나의 유적에서 여러 종류의 흑요석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아 백두산이라는 단일한 원산지에서만 기원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여러 곳의 흑요석 산지에서 채취된 원석이 돌감을 매개로 한 다양한 루트의 교류를 통해 원거리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반면에 영동지역에서는 기곡 유적에서만 유일하게 흑요석이 소량 출토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석영과 규암이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해 양 지역의 차이가 뚜렷이 드러났다.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주변 지역과의 교류 관계에 대한 연구, 석회암 동굴 유적 발굴조사를 통한 새로운 연구 방향의 모색, 동해안과 내륙에 입지한 유적의 문화양상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등이 이루어져 시간변화에 따른 강원지역의 구석기문화상이 확고하게 정립되길 기대한다.
주제어 : 강원지역, 석기 갖춤새, 편년, 층서 대비, 돌감, 입지 유형, 고환경, 중기 구석기시대, 후기 구석기시대, 사용흔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