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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麗前期와 宋의 서예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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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高麗前期(918-1170)와 宋(960-1279)은 시기적으로 비슷한 시대에 처해있지만, 서예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차이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시대적 배경, 서예교육, 서예가, 서풍, 서론, 서예작품 등으로 나누어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고려전기는 유교를 정치이념을 삼고 불교를 정신계의 지도이념으로 삼았으며, 文臣이 정권을 잡아 귀족문화를 발달시켰다. 서예는 신라를계승하고 初唐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가 ‘상의’서풍의 영향을 받아 고유색을 띠기
      시작하였다. 이에 비해 宋은 태조는 건국 후 文治主義를 표방하자 많은 문인 서예가들이 나와 서예를 발전시켰다. 제왕들이 서예를 좋아하고『순화각첩』을 발간하였으며, 당의 ‘尙法’에서 벗어나 서예가의 정감 · 주관 · 개성을 중시하는 ‘尙意’로발전하였다.서예교육으로 보면, 고려전기는 국자감에 書學을 정식과목으로 설치하고, 과거제도에서 書業에 대한 시험을 걸쳐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 이에 비해 송은 자감에書學을 두어 교육을 하였지만, 과거제도에서는 身 · 言 · 書 · 判의 取士제도를 폐지하였고 휘종 이후 書學生을 翰林書藝局에 입학시켰다.서예가로 보면, 고려전기는 50명의 유명 서예가에서 坦然 · 柳伸 · 文公裕 · 文克謙 등을 대표로 하는 귀족문인 서예가를 형성했다. 이에 비해 송은 866명의 유명 서예가에서 蔡襄 · 蘇軾 · 黃庭堅 · 米芾 등을 대표로 하는 문인 서예가를 형성했다.서풍으로 보면, 고려전기는 신라, 초당의 대가들과 ‘이왕’, ‘상의’서풍의 영향아래왕희지와 구양순체가 주를 이루었다. 이에 비해 송은 문인들 각자의 성정에 따라자유로운 정감을 표현하는 ‘상의’서풍이 주를 이루었다.서론으로 보면, 고려전기는 거의 없으나 소동파의 영향을 받은 林椿의 ‘書象其人論’이 보인다. 이에 비해 송은 대표적 서론으로는 ‘상의’서풍의 물꼬를 터준 歐陽脩의 ‘學書爲樂’ · ‘自適’과 蔡襄의 ‘神氣說’, ‘상의’서풍을 주도했던 ‘송사대가’에서 蘇軾의 ‘通其意’ · ‘自然天趣’ · ‘出新意’, 黃庭堅의 ‘重韻’ · ‘韻勝’, 米芾의 ‘眞趣’ · ‘古
      雅’ 등이 있다. 이외에 朱長文의 ‘以人品評書品’, 趙構의 ‘得趣’, 陳槱의 ‘神氣’, 姜夔 의 ‘風神’, 陳思의 ‘師承 · 變化’의 이론 또한 ‘상의’서풍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서예작품으로 보면, 碑를 중심으로 한 해서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실용서예에서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송은 帖을 중심으로 한 행초서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예술서예와 작품의 다양화를 모색하였다.이상 고려전기와 송의 서예 비교가 바로 한국서단이 나아가야할 바를 밝혀주고있는 것 같았다. 한국서단은 아직까지 청나라 비학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새로운 서풍을 진작시키려면 이론의 정립과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서예라는 것이 문자를 떠나서 존립하지 않는 한 學養과 이론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제기될 것이다. 실제로 올바르고 건전한 ‘서예문화’를 조성하려면 더욱 더 이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항상 주장하는 학양과 정감을 숭상하는 ‘尙情’을 이 시대의 지표로 삼을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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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麗前期(918-1170)와 宋(960-1279)은 시기적으로 비슷한 시대에 처해있지만, 서예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차이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시대적 배경, 서예교육, 서예가, 서풍, 서론, 서예작품 ...

      高麗前期(918-1170)와 宋(960-1279)은 시기적으로 비슷한 시대에 처해있지만, 서예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차이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시대적 배경, 서예교육, 서예가, 서풍, 서론, 서예작품 등으로 나누어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고려전기는 유교를 정치이념을 삼고 불교를 정신계의 지도이념으로 삼았으며, 文臣이 정권을 잡아 귀족문화를 발달시켰다. 서예는 신라를계승하고 初唐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가 ‘상의’서풍의 영향을 받아 고유색을 띠기
      시작하였다. 이에 비해 宋은 태조는 건국 후 文治主義를 표방하자 많은 문인 서예가들이 나와 서예를 발전시켰다. 제왕들이 서예를 좋아하고『순화각첩』을 발간하였으며, 당의 ‘尙法’에서 벗어나 서예가의 정감 · 주관 · 개성을 중시하는 ‘尙意’로발전하였다.서예교육으로 보면, 고려전기는 국자감에 書學을 정식과목으로 설치하고, 과거제도에서 書業에 대한 시험을 걸쳐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 이에 비해 송은 자감에書學을 두어 교육을 하였지만, 과거제도에서는 身 · 言 · 書 · 判의 取士제도를 폐지하였고 휘종 이후 書學生을 翰林書藝局에 입학시켰다.서예가로 보면, 고려전기는 50명의 유명 서예가에서 坦然 · 柳伸 · 文公裕 · 文克謙 등을 대표로 하는 귀족문인 서예가를 형성했다. 이에 비해 송은 866명의 유명 서예가에서 蔡襄 · 蘇軾 · 黃庭堅 · 米芾 등을 대표로 하는 문인 서예가를 형성했다.서풍으로 보면, 고려전기는 신라, 초당의 대가들과 ‘이왕’, ‘상의’서풍의 영향아래왕희지와 구양순체가 주를 이루었다. 이에 비해 송은 문인들 각자의 성정에 따라자유로운 정감을 표현하는 ‘상의’서풍이 주를 이루었다.서론으로 보면, 고려전기는 거의 없으나 소동파의 영향을 받은 林椿의 ‘書象其人論’이 보인다. 이에 비해 송은 대표적 서론으로는 ‘상의’서풍의 물꼬를 터준 歐陽脩의 ‘學書爲樂’ · ‘自適’과 蔡襄의 ‘神氣說’, ‘상의’서풍을 주도했던 ‘송사대가’에서 蘇軾의 ‘通其意’ · ‘自然天趣’ · ‘出新意’, 黃庭堅의 ‘重韻’ · ‘韻勝’, 米芾의 ‘眞趣’ · ‘古
      雅’ 등이 있다. 이외에 朱長文의 ‘以人品評書品’, 趙構의 ‘得趣’, 陳槱의 ‘神氣’, 姜夔 의 ‘風神’, 陳思의 ‘師承 · 變化’의 이론 또한 ‘상의’서풍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서예작품으로 보면, 碑를 중심으로 한 해서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실용서예에서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송은 帖을 중심으로 한 행초서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예술서예와 작품의 다양화를 모색하였다.이상 고려전기와 송의 서예 비교가 바로 한국서단이 나아가야할 바를 밝혀주고있는 것 같았다. 한국서단은 아직까지 청나라 비학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새로운 서풍을 진작시키려면 이론의 정립과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서예라는 것이 문자를 떠나서 존립하지 않는 한 學養과 이론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제기될 것이다. 실제로 올바르고 건전한 ‘서예문화’를 조성하려면 더욱 더 이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항상 주장하는 학양과 정감을 숭상하는 ‘尙情’을 이 시대의 지표로 삼을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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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高麗前期(918-1170)與宋(960-1279)在時期上處於相似的時代, 但看書法方面上有很多區別了. 一些此討論分別時代背景, 書法敎育, 書法家, 書風, 書論, 書法作品等如下.從時代背景來看, 高麗前期以儒敎爲政治理念而以佛敎爲精神指導理念發達了文臣專政的貴族文化. 書法是繼承了新羅, 在初唐影響下開始帶了‘尙意’書風的固有色彩起來的. 對此宋是宋太祖建國後標榜文治主義出現了一批文人書法家振作書法. 帝王們愛好書法而發刊淳化刻帖, 突破于唐‘尙法’的泥古發展了注重書法家的情感主觀個性的‘尙意’書風.從書法敎育來看, 高麗前期在國子監把‘書學’設置了正式科目, 而在科擧用‘書業’取士接待隆重.
      對此宋在子監設置了‘書學’敎育書法, 但在科擧閉止了用身言書判取士制度, 到了徽宗以後在翰林書藝局入學了書學生.從書法家來看, 高麗前期形成了五十餘人著名書法家中坦然柳伸文公裕文克謙爲主的貴族文人書法. 對此宋形成了八百六十六人著名書法家中蔡襄蘇軾黃庭堅米芾爲主的文人書法.從書風來看, 高麗前期在新羅初唐諸家以及二王與尙意書風影響下以王羲之歐陽詢體爲主. 對此宋每人一些文人從性情表現了自由情感的尙意書風爲主.從書論來看, 高麗前期很少書論著作, 只有帶了蘇軾影響的林椿‘書象其人論’. 對此宋有先河尙意書風歐陽脩的‘學書爲樂’‘自適’, 蔡襄的‘神氣說’, 還有主導尙意書風的宋四大家中蘇軾的‘通其意’‘自然天趣’‘出新意’, 黃庭堅的‘重韻’‘韻勝’, 米芾的‘眞趣’‘古雅’等很多. 以外還朱長文的‘以人品評書品’, 趙構的‘得趣’, 陳槱的‘神氣’, 姜夔的‘風神, 陳思的’師承變化‘的書論也脈絡了與尙意書風
      的.從書法作品來看, 高麗前期以碑爲中心多半楷書作品而還不能突破實用書法境界. 對此宋以帖爲中心多半行草作品而摸索了與藝術書法多樣化.由此可見, 比較高麗前期與宋的書法, 就呈現將未來韓國書壇走向的路. 我想韓國書壇還未能突破淸代的碑學影響, 要振作新書風一定需要定立理論與設定方向. 如書法離文字不能存立來說, 不斷提出了關于學養與理論問題. 事實上要造成了良正健全的‘書法文化’尤其考慮深刻這點. 從這種意味來說,再强調把我常提唱了學養與崇尙情感的‘尙情’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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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麗前期(918-1170)與宋(960-1279)在時期上處於相似的時代, 但看書法方面上有很多區別了. 一些此討論分別時代背景, 書法敎育, 書法家, 書風, 書論, 書法作品等如下.從時代背景來看, 高麗前...

      高麗前期(918-1170)與宋(960-1279)在時期上處於相似的時代, 但看書法方面上有很多區別了. 一些此討論分別時代背景, 書法敎育, 書法家, 書風, 書論, 書法作品等如下.從時代背景來看, 高麗前期以儒敎爲政治理念而以佛敎爲精神指導理念發達了文臣專政的貴族文化. 書法是繼承了新羅, 在初唐影響下開始帶了‘尙意’書風的固有色彩起來的. 對此宋是宋太祖建國後標榜文治主義出現了一批文人書法家振作書法. 帝王們愛好書法而發刊淳化刻帖, 突破于唐‘尙法’的泥古發展了注重書法家的情感主觀個性的‘尙意’書風.從書法敎育來看, 高麗前期在國子監把‘書學’設置了正式科目, 而在科擧用‘書業’取士接待隆重.
      對此宋在子監設置了‘書學’敎育書法, 但在科擧閉止了用身言書判取士制度, 到了徽宗以後在翰林書藝局入學了書學生.從書法家來看, 高麗前期形成了五十餘人著名書法家中坦然柳伸文公裕文克謙爲主的貴族文人書法. 對此宋形成了八百六十六人著名書法家中蔡襄蘇軾黃庭堅米芾爲主的文人書法.從書風來看, 高麗前期在新羅初唐諸家以及二王與尙意書風影響下以王羲之歐陽詢體爲主. 對此宋每人一些文人從性情表現了自由情感的尙意書風爲主.從書論來看, 高麗前期很少書論著作, 只有帶了蘇軾影響的林椿‘書象其人論’. 對此宋有先河尙意書風歐陽脩的‘學書爲樂’‘自適’, 蔡襄的‘神氣說’, 還有主導尙意書風的宋四大家中蘇軾的‘通其意’‘自然天趣’‘出新意’, 黃庭堅的‘重韻’‘韻勝’, 米芾的‘眞趣’‘古雅’等很多. 以外還朱長文的‘以人品評書品’, 趙構的‘得趣’, 陳槱的‘神氣’, 姜夔的‘風神, 陳思的’師承變化‘的書論也脈絡了與尙意書風
      的.從書法作品來看, 高麗前期以碑爲中心多半楷書作品而還不能突破實用書法境界. 對此宋以帖爲中心多半行草作品而摸索了與藝術書法多樣化.由此可見, 比較高麗前期與宋的書法, 就呈現將未來韓國書壇走向的路. 我想韓國書壇還未能突破淸代的碑學影響, 要振作新書風一定需要定立理論與設定方向. 如書法離文字不能存立來說, 不斷提出了關于學養與理論問題. 事實上要造成了良正健全的‘書法文化’尤其考慮深刻這點. 從這種意味來說,再强調把我常提唱了學養與崇尙情感的‘尙情’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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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시대적 배경
      • Ⅲ. 서예교육
      • Ⅳ. 서예 비교
      • Ⅴ. 맺는말
      • Ⅰ. 머리말
      • Ⅱ. 시대적 배경
      • Ⅲ. 서예교육
      • Ⅳ. 서예 비교
      • Ⅴ.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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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崔完秀, "옛탁본의 아름다움, 그리고 우리 역사 in : 우리나라 고대 · 중세 서예사의 흐름과 특질" 예술의전당 1998

      2 민족문화추진회, "고려사절요" 경인문화사 1977

      3 이성배, "高麗書藝의 特徵" (2) :

      4 金忠顯, "高麗時代의 書藝" 藝術院事務局 1964

      5 朴龍雲, "高麗時代史" 一志社 1994

      6 金光郁, "韓國의 論書詩 硏究" 단국대학교 2006

      7 任昌淳, "韓國의 美⑥ 書藝" 中央日報社 1992

      8 金基昇, "韓國書藝史" 博英社 1966

      9 震檀學會, "韓國史-中世篇" 을유문화사 1977

      10 李睟光, "芝峯類說" 筆說·學書自成家說

      1 崔完秀, "옛탁본의 아름다움, 그리고 우리 역사 in : 우리나라 고대 · 중세 서예사의 흐름과 특질" 예술의전당 1998

      2 민족문화추진회, "고려사절요" 경인문화사 1977

      3 이성배, "高麗書藝의 特徵" (2) :

      4 金忠顯, "高麗時代의 書藝" 藝術院事務局 1964

      5 朴龍雲, "高麗時代史" 一志社 1994

      6 金光郁, "韓國의 論書詩 硏究" 단국대학교 2006

      7 任昌淳, "韓國의 美⑥ 書藝" 中央日報社 1992

      8 金基昇, "韓國書藝史" 博英社 1966

      9 震檀學會, "韓國史-中世篇" 을유문화사 1977

      10 李睟光, "芝峯類說" 筆說·學書自成家說

      11 徐居正, "筆苑雜記"

      12 吳世昌, "槿域書畵徵" 시공사 1999

      13 蘇軾, "東坡題跋" 評草書

      14 沈尹黙, "書法論叢" 東文選 1993

      15 劉熙載, "書槪"

      16 郭魯鳳, "時代書風에 대한 小攷" 한국서학연구소 2008

      17 郭魯鳳譯, "中國書藝美學" 東文選 1998

      18 曹寶麟, "中國書法史" 江蘇敎育出版社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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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재인증) KCI등재
      2019-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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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27 0.27 0.2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25 0.2 0.63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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