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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와 5·16, 자유와 빵의 토포스 = The Topology of April Uprising and May 16 Coup-d'ét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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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pril uprising is a bifurcating point in contemporary Korean history, yet its actual faces have been befogged for last 50 years. Mythical glorification has substituted the actual living faces of April uprising, and the antagonist opposition to May 16 coup-d'état paradoxically reinforced its halo effect. April uprising and May 16 coup-d'état have been allocated to the binary term of freedom and repression respectively, and the representation of the people has been limited to one of the underground dwellers who can hardly enjoy the sunlight of the legitimate regime. However, April uprising and May 16 coup-d'état are interwoven at the level of unconscious desire, and their relationship is expressed through the rhetoric of freedom and bread. Freedom, which had overwhelmed 1950s', was focalized in the experience of April uprising, then soon marginalized for 1 year after uprising. There appeared the phrases such as ‘freedom without bread’, ‘lack of qualification for democracy’, or ‘strong leadership’ and ‘good-willed dictatorship’, which the junta of coup-d'état welcomed and appealed to. The expectation for ‘young and strong patriarch’ was widely expressed even in a variety of popular narratives, and the desire to forget the history as a colony of 1910~45, of division and war of 1945~53 altogether has grown among the people. Covert and overt desire for ‘bread more than freedom’, ‘economic development more than democracy’ had not been canceled until the government of developmental dictatorship disclosed and reinforced its violent suppression; people was ready to withdraw their hasty supports when they discover that their developed sensibility of socio-cultural freedom could not coexist with the developmental dictat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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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ril uprising is a bifurcating point in contemporary Korean history, yet its actual faces have been befogged for last 50 years. Mythical glorification has substituted the actual living faces of April uprising, and the antagonist opposition to May 16 ...

      April uprising is a bifurcating point in contemporary Korean history, yet its actual faces have been befogged for last 50 years. Mythical glorification has substituted the actual living faces of April uprising, and the antagonist opposition to May 16 coup-d'état paradoxically reinforced its halo effect. April uprising and May 16 coup-d'état have been allocated to the binary term of freedom and repression respectively, and the representation of the people has been limited to one of the underground dwellers who can hardly enjoy the sunlight of the legitimate regime. However, April uprising and May 16 coup-d'état are interwoven at the level of unconscious desire, and their relationship is expressed through the rhetoric of freedom and bread. Freedom, which had overwhelmed 1950s', was focalized in the experience of April uprising, then soon marginalized for 1 year after uprising. There appeared the phrases such as ‘freedom without bread’, ‘lack of qualification for democracy’, or ‘strong leadership’ and ‘good-willed dictatorship’, which the junta of coup-d'état welcomed and appealed to. The expectation for ‘young and strong patriarch’ was widely expressed even in a variety of popular narratives, and the desire to forget the history as a colony of 1910~45, of division and war of 1945~53 altogether has grown among the people. Covert and overt desire for ‘bread more than freedom’, ‘economic development more than democracy’ had not been canceled until the government of developmental dictatorship disclosed and reinforced its violent suppression; people was ready to withdraw their hasty supports when they discover that their developed sensibility of socio-cultural freedom could not coexist with the developmental dictat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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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60년의 4·19와 1961년의 5·16-지금껏 이 두 사건 사이의 관련은 4·19로 집결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자주와 통일에 대한 모색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을 무렵 5·16 쿠데타가 그런 다중의 노력을 압살시켜 버렸다는 서사로 이해되어 왔다. ‘혁명’ 대 ‘반혁명’이라는 수사가 적절하게 대응될 법 관계였다고 하겠다. 1960~70년대의 역사 전반을 평가할 때라면 이런 평가는 대체로 수긍할 법하다. 그러나 당대, 4·19와 5·16을 눈앞의 사건으로 맞이했던 1960년대 초반의 감각을 직접 상대한다면 어떠할까?4·19라는 사건의 실제부터 문제될 법하다. 4·19의 주역은 대학생-지식인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신화이지만, ‘다비데’요 ‘젊은 사자들’로 불린 이들은 실상 사건의 마지막 국면에서야 등장했다. 사건 초기의 주역은 고등학생이었고, 폭력적 진압에 맞서 4·19의 열기를 지속시킨 이들은 넝마주이·구두닦이나 기능직 노동자 등 도시의 하위주체들이었으며, 대학생 집단은 오히려 이승만의 하야성명 이후 사태가 계속 확산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고대생 데모나 교수단 시위 등의 사건을 흡수하며 탄생한 대학생-지식인 신화는 이후 이들을 선도적 주체, 지도자적 주체로 만들었고, 4·19 이후 1년여의 모색 혹은 혼란의 시기를 거쳐 개발독재라는 새로운 체제에 접어들었을 때 대중이 ‘빵’과 ‘성장’의 약속에 취해 체제와 타협했을 때 지식인만은 ‘자유’ 즉 개인적·민족적 ‘자주’를 지켰다는 인식론적 분할을 가능케 했다.
      실상 모든 혁명의 화두라 할 ‘자유’와 ‘빵’이 대립적인 가치로 인식되었다는 것은 4·19 직후 1960년대 초반의 전반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자유’는 포식해 보았으니 ‘빵’에 주력하자는 대중적 분위기 속에서 ‘선의의 독재’며 ‘민주주의의 유예’며 ‘강력한 지도자’ 등이 논의되는 가운데 5·16 쿠데타는 그런 기대-우려를 현실화시킨 사건으로서 출현했다. 당연히 5·16 직후의 대중적 반응은 기대와 공포가 섞인 긴장된 것으로서, 그러한 긴장상태 속에서 쿠데타세력은 ‘세대교체’와 ‘민족적 민주주의’ 등을 통해 강력한 개발독재체제를 준비할 수 있었다. ‘빵’과 ‘성장’의 논리를 ‘민족’을 통해 전유하는 것이 1960년대 개발독재정권의 요체였으며, 이러한 명분 뒤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과 종속의 가능성이 뚜렷해질 때까지 민족의 성장을 이끄는 젊은 가부장이라는 서사는 적잖은 대중적 지지 기반을 획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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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의 4·19와 1961년의 5·16-지금껏 이 두 사건 사이의 관련은 4·19로 집결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자주와 통일에 대한 모색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을 무렵 5·16 쿠데타가 그런 다중�...

      1960년의 4·19와 1961년의 5·16-지금껏 이 두 사건 사이의 관련은 4·19로 집결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자주와 통일에 대한 모색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을 무렵 5·16 쿠데타가 그런 다중의 노력을 압살시켜 버렸다는 서사로 이해되어 왔다. ‘혁명’ 대 ‘반혁명’이라는 수사가 적절하게 대응될 법 관계였다고 하겠다. 1960~70년대의 역사 전반을 평가할 때라면 이런 평가는 대체로 수긍할 법하다. 그러나 당대, 4·19와 5·16을 눈앞의 사건으로 맞이했던 1960년대 초반의 감각을 직접 상대한다면 어떠할까?4·19라는 사건의 실제부터 문제될 법하다. 4·19의 주역은 대학생-지식인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신화이지만, ‘다비데’요 ‘젊은 사자들’로 불린 이들은 실상 사건의 마지막 국면에서야 등장했다. 사건 초기의 주역은 고등학생이었고, 폭력적 진압에 맞서 4·19의 열기를 지속시킨 이들은 넝마주이·구두닦이나 기능직 노동자 등 도시의 하위주체들이었으며, 대학생 집단은 오히려 이승만의 하야성명 이후 사태가 계속 확산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고대생 데모나 교수단 시위 등의 사건을 흡수하며 탄생한 대학생-지식인 신화는 이후 이들을 선도적 주체, 지도자적 주체로 만들었고, 4·19 이후 1년여의 모색 혹은 혼란의 시기를 거쳐 개발독재라는 새로운 체제에 접어들었을 때 대중이 ‘빵’과 ‘성장’의 약속에 취해 체제와 타협했을 때 지식인만은 ‘자유’ 즉 개인적·민족적 ‘자주’를 지켰다는 인식론적 분할을 가능케 했다.
      실상 모든 혁명의 화두라 할 ‘자유’와 ‘빵’이 대립적인 가치로 인식되었다는 것은 4·19 직후 1960년대 초반의 전반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자유’는 포식해 보았으니 ‘빵’에 주력하자는 대중적 분위기 속에서 ‘선의의 독재’며 ‘민주주의의 유예’며 ‘강력한 지도자’ 등이 논의되는 가운데 5·16 쿠데타는 그런 기대-우려를 현실화시킨 사건으로서 출현했다. 당연히 5·16 직후의 대중적 반응은 기대와 공포가 섞인 긴장된 것으로서, 그러한 긴장상태 속에서 쿠데타세력은 ‘세대교체’와 ‘민족적 민주주의’ 등을 통해 강력한 개발독재체제를 준비할 수 있었다. ‘빵’과 ‘성장’의 논리를 ‘민족’을 통해 전유하는 것이 1960년대 개발독재정권의 요체였으며, 이러한 명분 뒤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과 종속의 가능성이 뚜렷해질 때까지 민족의 성장을 이끄는 젊은 가부장이라는 서사는 적잖은 대중적 지지 기반을 획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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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재천, ""진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gress)"과 미국의 민주주의 "확장정책(Enlargement Policy)": 케네디 행정부의 도미니카 공화국 정책 사례 연구" 한국국제정치학회 44 (44): 7-28, 2004

      2 4․19혁명부상자회 광주전라지부, "호남 4․19 30년사" 1995

      3 "형성"

      4 송기한, "해방공간의 비평문학 2" 태학사 1991

      5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 "한국현대사2―1950년대 한국사회와 4월민중항쟁" 풀빛 1991

      6 송영조, "한국의 비동맹외교" (32) : 1997

      7 "청맥"

      8 임종명, "제1공화국 초기 대한민국의 가족국가화와 內破" 한국사연구회 (130) : 289-329, 2005

      9 김용구, "자유하의 발전" 사상계사 1962

      10 함석헌, "인간혁명" 일우사 1961

      1 김재천, ""진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gress)"과 미국의 민주주의 "확장정책(Enlargement Policy)": 케네디 행정부의 도미니카 공화국 정책 사례 연구" 한국국제정치학회 44 (44): 7-28, 2004

      2 4․19혁명부상자회 광주전라지부, "호남 4․19 30년사" 1995

      3 "형성"

      4 송기한, "해방공간의 비평문학 2" 태학사 1991

      5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 "한국현대사2―1950년대 한국사회와 4월민중항쟁" 풀빛 1991

      6 송영조, "한국의 비동맹외교" (32) : 1997

      7 "청맥"

      8 임종명, "제1공화국 초기 대한민국의 가족국가화와 內破" 한국사연구회 (130) : 289-329, 2005

      9 김용구, "자유하의 발전" 사상계사 1962

      10 함석헌, "인간혁명" 일우사 1961

      11 변재란, "영화. in: 한국현대예술사대계 3" 시공사 2001

      12 권보드래, "아프레 걸 사상계를 읽다" 동국대 출판부 2009

      13 박계형, "속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신아출판사 1968

      14 "세대"

      15 "사상계"

      16 조희연, "박정희와 개발독재체제" 역사비평사 2007

      17 황병주, "박정희 체제의 지배담론" 한양대 2008

      18 박계형,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대문출판사 1966

      19 김소연, "매혹과 혼돈의 시대―50년대의 한국 영화" 소도 2003

      20 이병주, "대통령들의 초상―우리의 역사를 위한 변명" 서당 1991

      21 19 민주혁명 대구/경북동지회, "대구 4․19 민주혁명―주역들의 회고" 2009

      22 홍기돈, "날개 꺾인 세대의식과 배반당한 혁명" 우리문학회 (20) : 397-420, 2006

      23 안동일,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9

      24 박정희, "국가와 혁명과 나" 향문사 1963

      25 6․3 동지회, "6․3 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26 군사혁명사 편찬위원회, "5․16 군사혁명의 전모" 문광사 1964

      27 조화영, "4월혁명투쟁사" 국제출판사 1960

      28 홍영유, "4월혁명통사 10" 천지창조 2010

      29 박수만, "4월 혁명" 사월혁명동지회출판부 1965

      30 김미란, "4․19혁명의 정치적 상상력과 개인서사" (35) : 2005

      31 편집부, "4․19의 민중사" 학민사 1984

      32 4월민중항쟁 연구반, "4․19와 남북관계" 민연 2000

      33 한완상, "4․19 혁명론 1" 일월서각 1983

      34 정용욱, "1960년대 한국의 근대화와 지식인" 선인 2004

      35 이상록, "1960년대 한국 지식인들의 ‘신생국 근대화론’ 수용과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 2010

      36 홍석률, "1960년대 한국 민족주의의 흐름과 지식인사회" 2010

      37 최미진, "1960년대 소설의 서사전략 연구" 푸른사상 2006

      38 오영숙, 1950년대, "1950년대, 한국 영화와 문화 담론" 소명출판 2007

      39 김기석, "1950년대 한국교육. in: 1950년대 한국사의 재조명" 선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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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20-03-12 학회명변경 영문명 : Sanghur Hakbo-The Jou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 -> The Learned Society of Sanghur’s Literature KCI등재
      2020-03-1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Leaned Society of sanghur`s Literature -> Sanghur Hakbo: The Jour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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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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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4 1.14 1.1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25 1.21 2.23 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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