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eung(江陵) JaejiSajok(在地士族) participated in a group that shares a sense of consciousness, confrontation and conflict occurred frequently in the process of dealing with and solving important problems in the Gangneung local society at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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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민 (가톨릭관동대학교)
2018
Korean
Gangneung ; GuYoo(舊儒) ; ShinYoo(新儒) ; JaejiSajok ; Seongyojang ; Lee nae Bon ; 강릉 ; 사족 ; 선교장 ; 향교 ; 서원 ; 신유 ; 구유
KCI등재
학술저널
34-57(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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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neung(江陵) JaejiSajok(在地士族) participated in a group that shares a sense of consciousness, confrontation and conflict occurred frequently in the process of dealing with and solving important problems in the Gangneung local society at the...
Gangneung(江陵) JaejiSajok(在地士族) participated in a group that shares a sense of consciousness, confrontation and conflict occurred frequently in the process of dealing with and solving important problems in the Gangneung local society at the 18~19C. In particular, conflicts between GuYoo(舊儒) and ShinYoo(新儒) occurred steadily during the operation of Confucian schools and the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the Seowon.
Mrs. Andong Kwon and her son Lee nae Bon(李乃蕃), who went to Gangnung at the time of growing conflict between the Sajok of the Gangneung region, were able to maintain their status as a Hyangban(鄕班). It was because the families of Andong(安東) Kwon's mother had long maintained their status as JaejiSajok in Gangneung.
However, they could not easily participate in the local community's important realities. Because it was not formed the marriage of an organic relationship with the other JaejiSajok family members besides their mother's side, at the start of their stay in Gangneung.
Mrs. Andong Kwon and her son Lee nae Bon devoted to boosting the family's economic base. Gangwon Youngdong Province has a sea, but its salt production was not very active. Recognizing these conditions, Mrs. Andong Kwon started securing economic power by using a salt farm project, and based on such efforts, increased her agricultural base economic power by actively clearing land and purchasing farmland. In addition, the Seongyojang family was very active in testing public affairs and entering government service to raise the status of their family based on the economic foundation.
Therefore, Gangneung JaejiSajok did not recognize their family as wealthy. Gangneung JaejiSajok was recognized as a family with economic power, a celebrated family who passed the examination and entered the government, and an able to have organic solidarity with the Seoul Sajok. And it was not only material support to local communities, but also recognized as an information exchange area for famous writers, politicians and artists
국문 초록 (Abstract)
18~19C 강릉 사족들은 의식을 공유하는 결사에 참여하면서 향촌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처리 및 해결하는 과정에서 의견의 대립과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특히 향교의 운영, 서원의 설립과 ...
18~19C 강릉 사족들은 의식을 공유하는 결사에 참여하면서 향촌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처리 및 해결하는 과정에서 의견의 대립과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특히 향교의 운영, 서원의 설립과 운영과정에서 구유와 신유의 갈등 등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였다.
이처럼 강릉지방 재지사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던 시점에 외향인 강릉으로 온 안동권씨 부인과 이내번은 외가인 안동권씨 가문이 재지사족 가문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향반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입향 초기에는 외가를 제외한 향촌 내 다른 사족 가문과의 통혼 등과 같은 유기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에 쉽사리 향촌사회의 중요 사안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안동권씨 부인과 이내번은 가문의 위상을 올리기 위해 우선 경제력을 확충하는데 전념하였다. 강원 영동지방은 바다가 있지만 소금 생산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이러한 여건을 인식한 안동권씨 부인은 염전사업을 통해 점차 경제력을 확보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농토의 개간, 매입 등을 통해 농업적 기반의 경제력을 한층 더 증대시켰다. 아울러 경제적 토대를 기반으로 가문의 위상을 키우기 위해 과거응시와 출사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따라서 강릉지방 사족들은 부호로만 선교장을 인식하였던 것에서 반전되어, 향촌사회 내 재지사족들과 부민들은 경제력, 과거합격과 출사자를 배출한 명문가, 재경사족과의 유기적 연대가 가능한 명문가,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물적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유명 문인, 정치인, 예술인들의 교류 공간으로 선교장을 인식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Reference)
1 "臨瀛(江陵·溟州)誌" 臨瀛誌增補發刊委員會 1975
2 "하남재지"
3 임호민, "조선후기 강릉지방 사족의 향촌활동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5
4 "임영토비소록"
5 "임영유의"
6 "오봉서원실기"
7 "숙종실록"
8 차장섭, "선교장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집 이야기" 열화당 2011
9 "사마방목"
10 "비변사등록"
1 "臨瀛(江陵·溟州)誌" 臨瀛誌增補發刊委員會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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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호민, "조선후기 강릉지방 사족의 향촌활동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5
4 "임영토비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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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봉서원실기"
7 "숙종실록"
8 차장섭, "선교장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집 이야기" 열화당 2011
9 "사마방목"
10 "비변사등록"
11 "고종실록"
12 "강릉향교실기"
13 徐炳沛, "江陵 船橋莊의 秋收記分析" 한국서지학회 3 : 1990
14 李揆大, "朝鮮後期 嶺東地方의 鄕村支配構造에 關한 硏究" 中央大學校 1991
15 "喜畏案"
16 徐炳沛, "19세기 江陵地方 土地所有에 대하여-船橋莊을 중심으로-" (46) : 1996
17 徐炳沛, "19世紀 兩班層 土地保有 狀況에 관한 硏究-江陵, 船橋莊의 秋收記 中心으로-" 상명여자대학교 1991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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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20-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재인증) | |
2017-03-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Academy of Korean ->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1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탈락 (등재후보1차) |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2007-05-15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angseogak -> JANGSEOGAK |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6 | 0.86 | 0.7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6 | 0.67 | 1.505 | 0.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