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기포의 기획단계인 사발통문에 대한 재검토와 내용, 그리고 고부기포에서 무장을 거쳐 백산에서 혁명군으로 위상을 갖추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발통문에 대한 재검토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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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현 (청암대학교)
2013
Korean
Kobugipo ; Mujanggipo ; Baeksan Meeting ; Jeon Bong-jun ; Cho Byung-Gap ; Donghak ; Donghak Peasant Revolution ; 고부기포 ; 무장기포 ; 백산대회 ; 전봉준 ; 조병갑 ; 동학 ; 동학농민혁명
KCI등재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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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고부기포의 기획단계인 사발통문에 대한 재검토와 내용, 그리고 고부기포에서 무장을 거쳐 백산에서 혁명군으로 위상을 갖추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발통문에 대한 재검토이다. 그...
고부기포의 기획단계인 사발통문에 대한 재검토와 내용, 그리고 고부기포에서 무장을 거쳐 백산에서 혁명군으로 위상을 갖추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발통문에 대한 재검토이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연구에서 많은 부분에서 사발통문을 분석하였다. 이들 대부분의 연구는 기존의 사발통문이었다. 그런데 이 사발통문은 진위논쟁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기 전까지라는 전제 아래 그 내용에서도 많은 논란이 재기되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가 송재섭의 사발통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송재섭의 사발통문은 기존의 사발통문에서 알려지지 않은 통문을 비롯하여 격문을 수록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사발통문의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료하고 할 수 있다.
둘째, 사발통문은 단순하고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고부기포를 위한 ‘고도의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송재섭의 사발통문의 통문과 격문은 고부기포의 당위성을 밝히자 곳곳에서 민중들이 모여 호응하였고, 고부기포에 직접 참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통문과 통문의 성격은 반봉건 반외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무장포고문과 백산대회 격문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사발통문의 서명자의 경우 대부분 동학교인이었으며, 생존자는 이후 천도교 고부교구를 설립 하는 등 천도교단과 그 맥을 같이 하였다. 사발통문의 4대 항목은 단순히 고부라는 지역성을 넘어 전국적인 차원에서 준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혁명 전 과정의 기획성이었음을 보여준다.
셋째, 고부기포의 성격이다. 고부기포는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에서 前段階 즉 民亂으로서의 인식이 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부기포는 3월 13일 ‘완전 해체’ 또는 “결국 3월 13일에 이르러 두 달 동안 환히 타올랐던 조항의 횃불이 완전히 꺼지고 말았다”라는 확신하였다. 이는 고부기포와 무장기포를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부기포의 지도부가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무장에서 다시 기포를 준비하였다. 이는 고부기포의 완전 해체 또는 완전히 꺼진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무장기포는 고부기포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고부기포가 그 시발점이었으며, 무장기포를 거쳐 백산대회를 통해 동학농민군은 명실상부한 혁명군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었다. 이러한 점에서 고부와 백산은 동학농민혁명의 상징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amied to reexamine of Sabaltongmun and its contents which appeared in the stage of planning of Kobugipo, and the progress of being revolutionary army in Baeksan. At first, it concerned with reexamination of Sabaltongmun. By this time, the ...
This paper amied to reexamine of Sabaltongmun and its contents which appeared in the stage of planning of Kobugipo, and the progress of being revolutionary army in Baeksan.
At first, it concerned with reexamination of Sabaltongmun. By this time, the Sabaltongmun has been analyzed in many ways in the study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Most of these studies were concerned with the existing Sabaltongmun. However, these studies caused controversy about its contents because the another one was newly discovered, as well as the problem of its authenticity. It was the Song Jae-Seop’s Sabaltongmun that supported it. The Song’s Sabaltongmun included the manifest, as well as a circular that was unknown in existing Sabaltongmun. It could be an evidence that compensate the limitation of existing Sabaltongmun.
Secondly, the Sabaltongmun the ‘high-degree of planning’ for Kobugipo, not simple and accidental. In particular, when the circular and manifesto of Song’s Sablatongmun make known the appropriateness of Kobukipo, the people responded together and directly participated in Kobukipo. Moerover, the character of its circular and manifesto revealed anti-feudalism and anti-foreign, and intactly reflected in the declaration of Mujang and Baeksan Meeting. The most of signers to Sabaltogmun had faith in Donghak, and survivors established a parish of Cheondogyo in Kobu, sharing their fortunes with Cheondogyo. The 4 main items of Sabaltongmun revealed the planning of the whole process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beyond the regionality of Kobu.
Thirdly, it concerned with the character of Kobugipo. Until now, Kobulipo was regarded as the advance stage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that is, uprising. Therefore, the Kobukipo was seemed to be entirely dissolution in 13 March. It suggests that Kobugipo and Mujanggipo was recognized in ‘separate event’. However, while the leading group of Kobugipo still survived, Mujangkipo was prepared again. This means that Kobugipo was not entirely dissolution. Therefore, the Mujanggipo was an extension of Kobugipo.
The Kobugipo was the startin point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and through Kubugipo and Baeksan Meeting, the army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became truly revolutionary army. In this, Kobu and Baeksan are the symbol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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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의환, "전봉준실기" 정음사 1974
9 "시천교역사"
10 "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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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석남역사"
12 "브리태니커사전"
13 황현, "번역 오하기문" 역사비평사 1994
14 조광환, "발로 찾아 쓴 동학농민혁명소통하는 우리 역사" 살림터 2008
15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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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김은정, "동학농민혁명100년" 나남출판 1995
19 신용하,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 일조각 1993
20 "동아일보"
21 "동도문변"
22 "네이버 어학사전"
23 "고종실록"
24 정창렬, "고부민란의 연구(하)" 49 : 1895
25 신용하, "고부민란의 사발통문, In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 일조각 1993
26 김용덕, "격문을 통해 본 전봉준의 혁명사상" 외솔회 15 : 1974
27 송재섭, "갑오동학혁명난과 전봉준장군실기"
28 신용하, "갑오농민전쟁의 제1차농민전쟁" 40 : 1985
동학농민전쟁에 있어 고부봉기의 위상-사발통문과 일본 측 자료를 중심으로-
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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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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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0.81 | 0.81 | 0.72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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