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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전기 열녀의 존재 양상과 열행 인식-『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열녀를 중심으로- = The Conception of Faithful Women to be reflected in the Sinjeung Dongguk Yeoji Seun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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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신증동국여지승람』(이하 『승람』)은 1485년(성종 16)에 초간한 『동국여지승람』을 46년 후인 1531년(중종 26)에 신증한 전국읍지이다. 이 책에 실린 각 고을의 열녀 항목을 분석해보면 조선전기 지배층이 인식하고 있던 유교 윤리를 실천한 모범적인 여성의 기준을 알 수 있다. 『승람』에는 모두 157명의 여성이 고을별 열녀 항목에 실려 있는데, 81%는 조선시대 인물이며, 경상도와 전라도가 50%를 넘는다. 『승람』 편찬 당시 이 두 지역은 인구도 많았지만, 유교화가 많이 진척되었으며, 열녀 사례 발굴에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승람』의 열녀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은 남편을 일찍 여의었으나 개가하지 않고 오랫동안 수절한 경우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자살은 조선 건국 이후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초간 때인 본조 시기보다는 신증 시기에 더 증가하였다. 피살은 모두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맞서 절개를 지키다가 희생당한 경우이다. 약혼자가 사망하였지만 시집가지 않은 사례는 단 1명뿐이며, 약혼자의 사망소식을 듣고 따라 죽은 열녀는 없다. 여묘를 살기도 하였는데, 여말 선초 유교윤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었다. 『삼강행실 효자도』(1432)의 국내 효녀 8명 중 4명이 『승람』에서는 열녀 항목에 실린 것은 특기할 만하다.
      『승람』에 실린 열녀는 조선전기 지배층이 이상적으로 삼았던 모범적인 여성의 이미지이다. 조선후기의 열녀상과는 다르며, 조선전기 일반적인 여성들의 존재 양상과도 다른 아주 특별한 여성들의 모습이다. 조선전기의 열녀는 단순히 개가를 거부하고 종신 수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묘를 살거나 하층민이 포상 받는 경우도 많았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당시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절개를 지키다가 피살된 경우는 적었다. 『승람』을 편찬하면서 이전에는 효녀로 인식하던 인물을 열녀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조선전기 유교화가 진척되면서 여성에게는 열행을 효행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승람』의 열녀 항목은 조선전기 유교화 과정의 산물이며, 임진왜란 당시나 그 이후에 포상한 조선후기의 열녀와는 분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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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증동국여지승람』(이하 『승람』)은 1485년(성종 16)에 초간한 『동국여지승람』을 46년 후인 1531년(중종 26)에 신증한 전국읍지이다. 이 책에 실린 각 고을의 열녀 항목을 분석해보면 조선...

      『신증동국여지승람』(이하 『승람』)은 1485년(성종 16)에 초간한 『동국여지승람』을 46년 후인 1531년(중종 26)에 신증한 전국읍지이다. 이 책에 실린 각 고을의 열녀 항목을 분석해보면 조선전기 지배층이 인식하고 있던 유교 윤리를 실천한 모범적인 여성의 기준을 알 수 있다. 『승람』에는 모두 157명의 여성이 고을별 열녀 항목에 실려 있는데, 81%는 조선시대 인물이며, 경상도와 전라도가 50%를 넘는다. 『승람』 편찬 당시 이 두 지역은 인구도 많았지만, 유교화가 많이 진척되었으며, 열녀 사례 발굴에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승람』의 열녀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은 남편을 일찍 여의었으나 개가하지 않고 오랫동안 수절한 경우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자살은 조선 건국 이후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초간 때인 본조 시기보다는 신증 시기에 더 증가하였다. 피살은 모두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맞서 절개를 지키다가 희생당한 경우이다. 약혼자가 사망하였지만 시집가지 않은 사례는 단 1명뿐이며, 약혼자의 사망소식을 듣고 따라 죽은 열녀는 없다. 여묘를 살기도 하였는데, 여말 선초 유교윤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었다. 『삼강행실 효자도』(1432)의 국내 효녀 8명 중 4명이 『승람』에서는 열녀 항목에 실린 것은 특기할 만하다.
      『승람』에 실린 열녀는 조선전기 지배층이 이상적으로 삼았던 모범적인 여성의 이미지이다. 조선후기의 열녀상과는 다르며, 조선전기 일반적인 여성들의 존재 양상과도 다른 아주 특별한 여성들의 모습이다. 조선전기의 열녀는 단순히 개가를 거부하고 종신 수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묘를 살거나 하층민이 포상 받는 경우도 많았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당시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절개를 지키다가 피살된 경우는 적었다. 『승람』을 편찬하면서 이전에는 효녀로 인식하던 인물을 열녀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조선전기 유교화가 진척되면서 여성에게는 열행을 효행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승람』의 열녀 항목은 조선전기 유교화 과정의 산물이며, 임진왜란 당시나 그 이후에 포상한 조선후기의 열녀와는 분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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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looked into the behavior, locale and era of the 157 women written in the section of the faithful women(烈女) in Sinjeung Dongguk Yeoji Seungram(『新增東國輿地勝覽』, here after Seungram). As a result the following facts were revealed.
      Jeolla Province was enthusiastic about discovering the cases of the faithful women and Chungcheong Province was neglectful about finding the faithful women as well as devoted sons. According to the Diary of the King Yeonsan(『燕山君日記』), during that period six faithful women were rewarded, and five of them are mentioned in the Seungram. According to the Seungram there is only one faithful woman rewarded during the King Yeonsan period.
      The most frequent cases covering 58 percent, were women who kept a chaste life. 19 percent of the cases were the women who chose suicide, which were found only during the time when the original and revised book were written. 10 percent of the cases were the women who were murdered and they all were sacrificed while trying to keep chaste(守節) against the Japanese invaders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The cases in which wives hung themselves or starved themselves to death after their husband died increased. There was one case when the woman did not get married after her fiancé died, but there were no cases of faithful women dying following the fiancé’s death.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customs of wives’ living in a hut near the husband’s grave during the time when the original edition of the book was written, many such women were rewarded, but when the revised book was written, those cases were remarkably decreased. This change reflects that it was now required for women to have only one husband, keep chaste after the husband’s death, and not to remarry(改嫁).
      The faithful women in Seungram is the product of the Confucianization(儒敎化) and were clearly different from faithful women who were rewarded during and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the first half of the Joseon dynasty, faithful women were rewarded for living in a hut near their husband’s grave and refusing to remarry, but in the last half of the Joseon dynasty, women hardly lived near their husbands’ graves and it was unthinkable for a woman from a good class to rem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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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looked into the behavior, locale and era of the 157 women written in the section of the faithful women(烈女) in Sinjeung Dongguk Yeoji Seungram(『新增東國輿地勝覽』, here after Seungram). As a result the following facts were rev...

      This paper looked into the behavior, locale and era of the 157 women written in the section of the faithful women(烈女) in Sinjeung Dongguk Yeoji Seungram(『新增東國輿地勝覽』, here after Seungram). As a result the following facts were revealed.
      Jeolla Province was enthusiastic about discovering the cases of the faithful women and Chungcheong Province was neglectful about finding the faithful women as well as devoted sons. According to the Diary of the King Yeonsan(『燕山君日記』), during that period six faithful women were rewarded, and five of them are mentioned in the Seungram. According to the Seungram there is only one faithful woman rewarded during the King Yeonsan period.
      The most frequent cases covering 58 percent, were women who kept a chaste life. 19 percent of the cases were the women who chose suicide, which were found only during the time when the original and revised book were written. 10 percent of the cases were the women who were murdered and they all were sacrificed while trying to keep chaste(守節) against the Japanese invaders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The cases in which wives hung themselves or starved themselves to death after their husband died increased. There was one case when the woman did not get married after her fiancé died, but there were no cases of faithful women dying following the fiancé’s death.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customs of wives’ living in a hut near the husband’s grave during the time when the original edition of the book was written, many such women were rewarded, but when the revised book was written, those cases were remarkably decreased. This change reflects that it was now required for women to have only one husband, keep chaste after the husband’s death, and not to remarry(改嫁).
      The faithful women in Seungram is the product of the Confucianization(儒敎化) and were clearly different from faithful women who were rewarded during and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the first half of the Joseon dynasty, faithful women were rewarded for living in a hut near their husband’s grave and refusing to remarry, but in the last half of the Joseon dynasty, women hardly lived near their husbands’ graves and it was unthinkable for a woman from a good class to rem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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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헌산지"

      2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 아카넷 2003

      3 장민걸, "중국의 혼인과 가정" 문사철 2012

      4 P. B. 에브레이, "중국 여성의 결혼과 생활" 삼지원 2000

      5 김성우, "조선중기 국가와 사족" 역사비평사 2001

      6 강명관, "조선전기 부처제(婦處制)와 ‘사나운 처’(悍婦)" 한국여성사학회 (25) : 1-27, 2016

      7 "조선왕조실록"

      8 박주, "조선시대의 효와 여성" 국학자료원 2000

      9 이정주, "조선시대 貞節 倫理의 실천자와 身分" 한국역사민속학회 (24) : 103-164, 2007

      10 이순구, "조선 전기 ‘딸에서 며느리로’ 정체성 변화와 재산권 - 경주 양동마을을 중심으로 -" 한국여성사학회 (23) : 37-66, 2015

      1 "헌산지"

      2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 아카넷 2003

      3 장민걸, "중국의 혼인과 가정" 문사철 2012

      4 P. B. 에브레이, "중국 여성의 결혼과 생활" 삼지원 2000

      5 김성우, "조선중기 국가와 사족" 역사비평사 2001

      6 강명관, "조선전기 부처제(婦處制)와 ‘사나운 처’(悍婦)" 한국여성사학회 (25) : 1-27, 2016

      7 "조선왕조실록"

      8 박주, "조선시대의 효와 여성" 국학자료원 2000

      9 이정주, "조선시대 貞節 倫理의 실천자와 身分" 한국역사민속학회 (24) : 103-164, 2007

      10 이순구, "조선 전기 ‘딸에서 며느리로’ 정체성 변화와 재산권 - 경주 양동마을을 중심으로 -" 한국여성사학회 (23) : 37-66, 2015

      11 이희환, "조선 말기의 旌閭와 家門 숭상의 풍조" 17 : 2001

      12 이숙인, "정절의 역사" 푸른역사 2014

      13 이정주, "전국지리지를 통해 본 조선시대 忠·孝·烈 윤리의 확산 양상" 한국사상사학회 (28) : 293-324, 2007

      14 정일영, "임진왜란 이후 ‘敎化’의 양상 -광해군대 『東國新續三綱行實圖』를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회 (34) : 67-125, 2010

      15 강명관, "열녀의 탄생" 돌베개 2009

      16 이숙인, "열녀 조씨의 진실"

      17 노사신, "신증동국여지승람" 명문당 1981

      18 "신증동국여지승람"

      19 이화형, "섹슈얼리티로 본 한국 전통여성의 주체적 삶의 양상" 동아시아고대학회 (38) : 159-186, 2015

      20 강명관, "삼강행실도-약자에게 가해진 도덕의 폭력" 한국고전여성문학회 (5) : 5-32, 2002

      21 "삼강행실 효자도"

      22 "삼강행실 열녀도"

      23 후이민, "명청시기 휘주 여인들의 순절과 정절" 호남학연구원 (50) : 1-24, 2011

      24 서보경, "동아시아 열녀담론 재고" 우리문학회 (51) : 35-69, 2016

      25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Ⅰ~Ⅶ" 민족문화추진회 1967

      26 "고려사"

      27 권순형, "고려말 열녀 사례 연구 - 양수생 처 열부 이씨" 한국여성사학회 (22) : 29-62, 2015

      28 "경국대전"

      29 강명관, "節婦, 烈婦, 烈女" 동양한문학회 25 (25): 5-30, 2007

      30 朴珠, "朝鮮時代의 旌表政策" 一潮閣 1990

      31 金龍德, "婦女守節考" 3 : 1964

      32 이재두, "『헌산지』에 실린 『여지도서』의 목차와 편찬 규정" 영남문화연구원 (60) : 241-272, 2017

      33 이재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반영된 효 인식" 영남문화연구원 (28) : 321-356, 2015

      34 이재두, "『신증동국여지승람』 효자편의 효행 사례와 정표 유형" 24 : 2015

      35 이경하, "『삼강행실도』의 폭력성 재고 -열녀편을 중심으로-" 한국고전문학회 (35) : 453-483, 2009

      36 이재두, "『동국여지승람』의 효행 기록과 효 인식" 경북대학교 대학원 2005

      37 강순애, "『經國大典』의 편찬․반포와 초주갑인자본 관련 초기 판본에 관한 연구" 한국서지학회 (76) : 105-134, 2018

      38 양혜원, "『經國大典』 판본 연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3) : 155-191, 2018

      39 金澤中, "『元史』 「列女傳」의 수록기준과 서술형태" 10ㆍ11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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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23 통합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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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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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9 0.79 0.7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2 0.66 1.364 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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