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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전쟁 시기 주요 전투의 의미와 성격 : 대첩을 중심으로 = The Meaning and Character of Major Battle during the Imjin War : Focused on the Great B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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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임진전쟁 시기에 많은 전투가 있었다. 임진전쟁 시기에 있었던 65차례의 주요 육지 전투는 승패를 떠나 국난극복에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大捷으로 평가되는 전투는 사전적 의미대로 큰 승리를 거둔 전투였기에 전쟁의 국면을 전환시켰다. 그런데 이미 알려져 있는 임진전쟁 3대첩은조선시대에 평가자와 기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임진전쟁 시기에 전쟁 극복 과정에서 승리를 거두어 당대부터 대첩으로 평가받은 주요 육지 전투는 진주대첩, 행주대첩, 연안대첩, 북관대첩, 평양대첩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육지 전투들은 海戰의 승리와 함께 임진전쟁 극복에서 기억되어야 할 전투들이다. 육지 전투에서 대첩으로 평가된 金時敏의 진주대첩, 權慄의 행주대첩, 李廷馣의 연암대첩, 鄭文孚의 북관대첩,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평양대첩은 승리의 규모와 함께 전쟁의 국면을 바꾼 전투였다는 공통점이있다. 이런 측면이 널리 인식되어 대첩으로 높게 평가받아왔다.
      이제 임진전쟁 3대첩을 비롯하여 전투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도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아울러 임진전쟁 시기에 육지에서 치러진 65차례 전투의 의미와평가가 종합적으로 검토되어 임진전쟁 전투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개별 전투의성격을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서 임진전쟁 극복이라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하나의 사례로 영천복성전투를 검토해보았다.
      임진전쟁 개전기에 있었던 永川復城戰鬪는 경상좌도에서 지역의 의병과 관군이 연합하여 승전을 거둔 전투였다. 영천복성전투는 守城이 아닌 탈환에 성공하여 복성한 승첩으로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영천복성전투의 의미는 임진전쟁 개전기 전투에서 보면 전투사나 지역사 측면에서 상당한 의의가있었으며, 큰 성과를 거둔 전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영천복성전투는조선시대의 국가 기록이나 개인의 역사 기록에서 다양하게 영천대첩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영천복성전투는 영천대첩이나 승첩으로 평가해도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 글에서 주목한 임진전쟁 시기의 전투에 대한 평가는 문헌 기록과 역사적의미를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일정한 한계가 있다. 앞으로 군사사 측면에서 임진전쟁에서 수행되었던 전투 승리의 규모, 전과, 의미, 평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대첩을 규정한다면 다시 정리되어야 여지가 많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임진전쟁 시기의 각 지역 전투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성또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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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전쟁 시기에 많은 전투가 있었다. 임진전쟁 시기에 있었던 65차례의 주요 육지 전투는 승패를 떠나 국난극복에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大捷으로 평가되는 전투...

      임진전쟁 시기에 많은 전투가 있었다. 임진전쟁 시기에 있었던 65차례의 주요 육지 전투는 승패를 떠나 국난극복에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大捷으로 평가되는 전투는 사전적 의미대로 큰 승리를 거둔 전투였기에 전쟁의 국면을 전환시켰다. 그런데 이미 알려져 있는 임진전쟁 3대첩은조선시대에 평가자와 기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임진전쟁 시기에 전쟁 극복 과정에서 승리를 거두어 당대부터 대첩으로 평가받은 주요 육지 전투는 진주대첩, 행주대첩, 연안대첩, 북관대첩, 평양대첩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육지 전투들은 海戰의 승리와 함께 임진전쟁 극복에서 기억되어야 할 전투들이다. 육지 전투에서 대첩으로 평가된 金時敏의 진주대첩, 權慄의 행주대첩, 李廷馣의 연암대첩, 鄭文孚의 북관대첩,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평양대첩은 승리의 규모와 함께 전쟁의 국면을 바꾼 전투였다는 공통점이있다. 이런 측면이 널리 인식되어 대첩으로 높게 평가받아왔다.
      이제 임진전쟁 3대첩을 비롯하여 전투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도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아울러 임진전쟁 시기에 육지에서 치러진 65차례 전투의 의미와평가가 종합적으로 검토되어 임진전쟁 전투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개별 전투의성격을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서 임진전쟁 극복이라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하나의 사례로 영천복성전투를 검토해보았다.
      임진전쟁 개전기에 있었던 永川復城戰鬪는 경상좌도에서 지역의 의병과 관군이 연합하여 승전을 거둔 전투였다. 영천복성전투는 守城이 아닌 탈환에 성공하여 복성한 승첩으로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영천복성전투의 의미는 임진전쟁 개전기 전투에서 보면 전투사나 지역사 측면에서 상당한 의의가있었으며, 큰 성과를 거둔 전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영천복성전투는조선시대의 국가 기록이나 개인의 역사 기록에서 다양하게 영천대첩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영천복성전투는 영천대첩이나 승첩으로 평가해도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 글에서 주목한 임진전쟁 시기의 전투에 대한 평가는 문헌 기록과 역사적의미를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일정한 한계가 있다. 앞으로 군사사 측면에서 임진전쟁에서 수행되었던 전투 승리의 규모, 전과, 의미, 평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대첩을 규정한다면 다시 정리되어야 여지가 많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임진전쟁 시기의 각 지역 전투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성또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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