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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세기 義州府 小通事의 존재양상과 활동 = The Substantial Aspect of Sotongsa Beloinging to Uiju Office and Their Activities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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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thesis aims to explore the actual state of Sotongsa belonging to Uiju Office and their activities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Uiju was the region that functioned as an important base for the national defense, international trade, and diplomat...

      This thesis aims to explore the actual state of Sotongsa belonging to Uiju Office and their activities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Uiju was the region that functioned as an important base for the national defense, international trade, and diplomatic relations due to the fact that its location was a major gateway to China. Sotongsa of Uiju Office, as lower interpreters born in Uiju, assisted official interpreters, who were dispatched to Uiju, in doing latter’s working at Sayeokwon (the foreign language educational institution of the Joseon Dynasty). Given that Sotongsa have had a significant relation to the history of Korean- Chinese relation and the regional history of Uiju, it should be considered as one of important research topics as much as Uiju merchants. Therefore, examining the actual state of Sotongsa and their activities would give a more detailed and varied image on the diplomatic relations and international trade with the Qing Dynasty.
      In the later Joseon Dynasty, there were 50 Sotongsa in Uiju Office. They had Tongsacheong as their workspace and workd in following tasks: counting the number of packhorses returning from Chaekmun and being in charge of Jamun. Sotongsa also took charge of assisting the imperial envoy during its visit to Joseon. They often used their position to follow their own self-interest by using their position. In addition to this, Sotongsa took part in delegates dispatched to Qing as well as Yeokhaeng as official members. They could participate in missions except Yeokhaeng under the name of Madu or Guin. Furthermore, they acted as intepreters at the Open Market of Junggang and checked the kind and number of trade goods at the Market of Chaekmun.
      After the Joseon Dynasty opened her ports to trade, Sotongsa carried out translation jobs and communication with the home government as one of members in Yeongsonsa dispatched to Tianjin in 1881. Moreover, they acted as Geomhwa in the Uiju Customs and interpreted for the government as regular members in the Busan Customs and the Qing Consulate.
      Sotongsa belonging to Uiju Office took an active part in the diplomacy with the Qing Dynasty and trade business around Uiju. They were able to become ‘the first direct persons contacting with foriegners’ by the use of their language ability after the opening the port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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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에서는 18~19세기를 중심으로 義州府 小通事의 실상과 활동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았다. 義州는 조선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으로 국방ㆍ무역ㆍ외교의 거점이었다. 의주부 ...

      이 논문에서는 18~19세기를 중심으로 義州府 小通事의 실상과 활동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았다. 義州는 조선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으로 국방ㆍ무역ㆍ외교의 거점이었다. 의주부 소통사는 의주 출신의 하급 통역관으로서, 司譯院에서 의주로 파견된 譯官의 실무를 보좌했다. 소통사는 한중관계사와 의주 지역사에 중첩되어 있어, 의주상인 못지않게 중요한 연구주제라고 생각한다. 소통사의 실상과 활동을 살피면 대청외교와 무역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다채로운 상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조선후기 의주부에는 50명의 소통사가 있었다. 소통사에게는 그들 고유의 업무공간인 通事廳이 있었다. 이들은 평소에 柵門에서 돌아오는 駄馬를 파악하는 임무, 咨文을 담당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勅行이 있을 때는 칙사일행을 접대하는 실무를 맡았다. 소통사는 이러한 지위를 이용해서 종종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도 했다. 소통사는 對淸使行에 참여했다. 曆行에는 正官으로 참여했고 이외의 사행에는 馬頭나 驅人의 명목으로 참여했다. 한편 소통사는 中江開市에서 통역으로 활동했으며, 柵門後市에서 무역품의 물종과 수량을 파악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개항 이후 소통사는 1881년 天津으로 파견된 領選使에서 통역과 관련한 실무와 본국간의 통신을 담당했다. 의주 세관에서는 檢貨로서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부산의 해관과 청국영사관에서는 정식인원으로 소속되어 통역관으로서 활동하였다.
      의주부 소통사는 의주에서 수행하는 대청외교 및 무역의 실무에서 활약한 존재였다. 이들은 개항 이후에도 언어능력을 바탕으로 ‘일차적인 외국인 접촉자’로서 역할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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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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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 1 0.7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1 0.74 1.55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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