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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예맥・조선과 서주・춘추 제와의 교류 = Interaction Between Yemek・Old Joseon and Western Zhou・Qi During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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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49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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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ncient literature confirms that the power of Joung-Won recognized the presence of ethnic groups or inhabitants classified as Ye (濊) and Mek (貊) during Western Zhou (西周) since the 11th century B.C.
      Particularly, the article of Hanhu (韓侯) in Shi-Jing indicates that Yemek had concrete political relationships with countries in Joung-Won since or earlier than the late Western Zhou, when Hanhu was active. It is still controversial whether Yemek, which was active in northern China during the Western Zhou period, was related to Yemek, which was active in the Liaoning area later. However, the article showing that Hanhu presented figured leather to Ye and Mek is similar to the figured leather trade between Old Joseon and Qi recorded in “Guanzi (管子)”, suggesting the relationship of them. Articles in Shi-Jing may reflect the traces of Yemek in Hebei after Yemek in Liaoning moved to Hebei.
      It is natural to conclude that Old Joseon was in Liaoning since “Guanzi” shows that it traded with Qi in the 7th century B.C. as recorded, there are trading traces with the Liaoning region, and it is recorded as a trading partner of figured leather. In other words, Old Joseon, which traded figured leather with Qi during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is associated with the Shuangfang culture in The Liaoning region. Moreover, Yemek, which Qi faced after conquering Gozhu State, is believed as a part of Sibideiyeongza culture in the Dalinghe basin. Old Joseon is a concrete political entity that Qi traded figured leather through the interchange in the sea, while Yemek is a power that Qi indirectly contacted in the process of an expedition to conquer the north.
      From a long time ago, the Liaodong region has been in communication with the Shandong region. Shandong Dongnae region was the land of 萊夷 according to the traffic route connecting Liaodong and Qi through the Shandong Peninsula following Myodo Archipelago. It seems like Qi began to trade with Old Joseon through cooperation or pressure with Rae-Yi (萊夷) as the influence of Qi increased in the Gyodoing region after the middle or late Western Zhou. It is believed that Old Joseon interacted with Qi directly after Rae-Yi was destroyed by Qi in 567 B.C. Although the article of Guanzi, stating as if the two countries traded directly, can be considered as a record after the 6th century B.C., it can be a record reflecting the international situation that Qi needed the figured leather of Old Joseon as the dominant power of China during the era of Qi Huang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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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cient literature confirms that the power of Joung-Won recognized the presence of ethnic groups or inhabitants classified as Ye (濊) and Mek (貊) during Western Zhou (西周) since the 11th century B.C. Particularly, the article of Hanhu (韓侯) ...

      Ancient literature confirms that the power of Joung-Won recognized the presence of ethnic groups or inhabitants classified as Ye (濊) and Mek (貊) during Western Zhou (西周) since the 11th century B.C.
      Particularly, the article of Hanhu (韓侯) in Shi-Jing indicates that Yemek had concrete political relationships with countries in Joung-Won since or earlier than the late Western Zhou, when Hanhu was active. It is still controversial whether Yemek, which was active in northern China during the Western Zhou period, was related to Yemek, which was active in the Liaoning area later. However, the article showing that Hanhu presented figured leather to Ye and Mek is similar to the figured leather trade between Old Joseon and Qi recorded in “Guanzi (管子)”, suggesting the relationship of them. Articles in Shi-Jing may reflect the traces of Yemek in Hebei after Yemek in Liaoning moved to Hebei.
      It is natural to conclude that Old Joseon was in Liaoning since “Guanzi” shows that it traded with Qi in the 7th century B.C. as recorded, there are trading traces with the Liaoning region, and it is recorded as a trading partner of figured leather. In other words, Old Joseon, which traded figured leather with Qi during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is associated with the Shuangfang culture in The Liaoning region. Moreover, Yemek, which Qi faced after conquering Gozhu State, is believed as a part of Sibideiyeongza culture in the Dalinghe basin. Old Joseon is a concrete political entity that Qi traded figured leather through the interchange in the sea, while Yemek is a power that Qi indirectly contacted in the process of an expedition to conquer the north.
      From a long time ago, the Liaodong region has been in communication with the Shandong region. Shandong Dongnae region was the land of 萊夷 according to the traffic route connecting Liaodong and Qi through the Shandong Peninsula following Myodo Archipelago. It seems like Qi began to trade with Old Joseon through cooperation or pressure with Rae-Yi (萊夷) as the influence of Qi increased in the Gyodoing region after the middle or late Western Zhou. It is believed that Old Joseon interacted with Qi directly after Rae-Yi was destroyed by Qi in 567 B.C. Although the article of Guanzi, stating as if the two countries traded directly, can be considered as a record after the 6th century B.C., it can be a record reflecting the international situation that Qi needed the figured leather of Old Joseon as the dominant power of China during the era of Qi Huang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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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선진문헌에는 기원전 11세기 경 이래 濊(穢)와 貊으로 분별되는 집단의 존재가 당시 중원세력의 인식선 상에 인지됨이 확인된다.
      특히 『詩經』에 나오는 韓侯의 기사는 예・맥이 구체적으로 중원국가와 관계를 맺은 것은 이미 韓侯가 활동한 서주후기나 그 이전으로 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주시기에 중국 북방에서 활동한 예・맥이 후대 요령지역에서 활동한 예・맥과 관련이 있는지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韓侯가 문피를 바친 기사는 『管子』에서 고조선과 齊나라의 문피교역 기록과도 비슷하여 서주시기부터 예・맥 집단과 서주의 교류 사실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管子』에 나타난 기원전 7세기 齊나라와 교류한 고조선의 실체는 산동지역과 교류 흔적이 발견되고 문피의 교류지로 기록에 남아 있는 요동지역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춘추시대 齊나라와 문피 교류를 했던 고조선은 요동지역의 쌍방문화와 관련되며 제나라가 고죽을 정벌하고 접한 예맥은 대릉하 유역의 십이대영자문화로 파악된다. 고조선은 齊나라와 해로를 통해 문피를 교류한 구체적인 정치적 실체이며, 예맥은 齊나라 입장에서는 북벌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접한 세력으로 구분된다.
      오래전부터 요동지역은 산동지역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묘도열도를 따라 산동반도를 거쳐 제로 향하는 교통로를 보면 산동 東萊지역은 萊夷의 영역이었고 고조선과의 교류도 萊夷를 통해야 가능하다. 齊나라는 서주 중・후기 이후 교동지역에서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萊夷와 협력 혹은 압력을 통하여 고조선과 교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원전 567년에 齊나라에게 萊夷가 멸망하며 고조선은 齊나라와 직접 교류했을 것이다. 양국이 직접 교류한 것처럼 기록한 『管子』의 기록은 기원전 6세기 이후의 인식으로 볼 수도 있으나 양국의 교류는 이민족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지고 패자로서 조선의 문피가 필요했던 제환공 시기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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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문헌에는 기원전 11세기 경 이래 濊(穢)와 貊으로 분별되는 집단의 존재가 당시 중원세력의 인식선 상에 인지됨이 확인된다. 특히 『詩經』에 나오는 韓侯의 기사는 예・맥이 구체적으...

      선진문헌에는 기원전 11세기 경 이래 濊(穢)와 貊으로 분별되는 집단의 존재가 당시 중원세력의 인식선 상에 인지됨이 확인된다.
      특히 『詩經』에 나오는 韓侯의 기사는 예・맥이 구체적으로 중원국가와 관계를 맺은 것은 이미 韓侯가 활동한 서주후기나 그 이전으로 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주시기에 중국 북방에서 활동한 예・맥이 후대 요령지역에서 활동한 예・맥과 관련이 있는지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韓侯가 문피를 바친 기사는 『管子』에서 고조선과 齊나라의 문피교역 기록과도 비슷하여 서주시기부터 예・맥 집단과 서주의 교류 사실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管子』에 나타난 기원전 7세기 齊나라와 교류한 고조선의 실체는 산동지역과 교류 흔적이 발견되고 문피의 교류지로 기록에 남아 있는 요동지역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춘추시대 齊나라와 문피 교류를 했던 고조선은 요동지역의 쌍방문화와 관련되며 제나라가 고죽을 정벌하고 접한 예맥은 대릉하 유역의 십이대영자문화로 파악된다. 고조선은 齊나라와 해로를 통해 문피를 교류한 구체적인 정치적 실체이며, 예맥은 齊나라 입장에서는 북벌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접한 세력으로 구분된다.
      오래전부터 요동지역은 산동지역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묘도열도를 따라 산동반도를 거쳐 제로 향하는 교통로를 보면 산동 東萊지역은 萊夷의 영역이었고 고조선과의 교류도 萊夷를 통해야 가능하다. 齊나라는 서주 중・후기 이후 교동지역에서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萊夷와 협력 혹은 압력을 통하여 고조선과 교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원전 567년에 齊나라에게 萊夷가 멸망하며 고조선은 齊나라와 직접 교류했을 것이다. 양국이 직접 교류한 것처럼 기록한 『管子』의 기록은 기원전 6세기 이후의 인식으로 볼 수도 있으나 양국의 교류는 이민족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지고 패자로서 조선의 문피가 필요했던 제환공 시기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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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北京市文物硏究所, "琉璃河西周燕國墓地 : 1973-1977" 文物出版社 1995

      2 朱永剛, "遼東地區雙房式陶壺硏究" 2 : 2008

      3 朱貴, "遼寧朝陽十二臺營子靑銅短劍墓" 1 : 1960

      4 "呂氏春秋"

      5 靳楓毅, "論中國東北地區含曲刃靑銅短劍的文化遺存(上・下)" 4 : 1982

      6 박준형, "한중관계사상의 교역과 교통로" 주류성 2019

      7 박선미, "한중관계사상의 교역과 교통로" 주류성 2019

      8 이성규, "한국사시민강좌 32" 2003

      9 김정배, "한국사4(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국사편찬위원회 1997

      10 이성규, "한국사1(총설)" 국사편찬위원회 2002

      1 北京市文物硏究所, "琉璃河西周燕國墓地 : 1973-1977" 文物出版社 1995

      2 朱永剛, "遼東地區雙房式陶壺硏究" 2 : 2008

      3 朱貴, "遼寧朝陽十二臺營子靑銅短劍墓" 1 : 1960

      4 "呂氏春秋"

      5 靳楓毅, "論中國東北地區含曲刃靑銅短劍的文化遺存(上・下)" 4 : 1982

      6 박준형, "한중관계사상의 교역과 교통로" 주류성 2019

      7 박선미, "한중관계사상의 교역과 교통로" 주류성 2019

      8 이성규, "한국사시민강좌 32" 2003

      9 김정배, "한국사4(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국사편찬위원회 1997

      10 이성규, "한국사1(총설)" 국사편찬위원회 2002

      11 서영수, "한국사 시민강좌 2" 1988

      12 김철준, "한국사 2" 국사편찬위원회 1977

      13 윤내현, "한국고대사신론" 일지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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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박준형, "고조선사의 전개" 서경문화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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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하문식, "고조선 사람들이 잠든 무덤" 주류성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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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爾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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