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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여성 전문 인력으로서의 조산사의 양성 = Training of Midwife as Female Professional in 1950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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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2208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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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서양의학의 도입과 함께 자리 잡게 된 조산사라는 직업은 여성의 재생산이 멈추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는 한국 사회에서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여기에서는 1950년대 조산사 양성 과정을 다루었다. 해방 뒤 조산사가 가장 증가한 때는 1950년대로 전염병 관리를 포함한 기초적 보건 관리와 한국전쟁 동안 인구의 이동과 사망·출생 등을 포함한 인구동태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늘어났다. 조산사 인원 증가와 함께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조산사들이 임상 실습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사회부는 원조기관에 조산사 재교육을 요구했으며 1955-1957년까지 총 773명에 대한 조산사 재교육이 이루어졌다. 조산사 재교육은 서울을 비롯한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전주, 청주에서 진행되었다. 대한조산원회는 각 지역에서 재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협력했으며 조산사 교육과 관련해 국립 조산학교와 모자병원의 설립을 요구했지만 1950년대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실현되지 않았다. 따라서 1950년대 유일하게 조산교육이 이루어진 곳은 일신부인병원이었다. 일신부인병원은 1950년대 독자적으로 조산 교육 6개월간의 정규과정을 개설했다. 그런 일신부인병원도 2009년에는 조산 수습교육이 폐지되었다. 이 논문은 1950년대 조산사 교육의 현황과 보건사회부, 조산원회, OEC(경제조정관실) 간의 국립조산학교 설립에 둘러싼 이해를 중심으로 1950년대 조산사 양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다. 조산사 재생산의 문제는 여성인력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주제이다. 즉 조산사는 전문 의료인이었지만 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한국 사회에서는 전쟁동원과 노동력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될 때만 관심을 받았다. 노동력 동원의 대상으로만 그 필요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동원이 필요 없을 때에 언제든지 철회 가능한 한시적이고 일회성에 그친다는 의미이다. 이런 측면에서 전문직 조산사의 소멸은 여타의 직종의 변천과 맞물려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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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학의 도입과 함께 자리 잡게 된 조산사라는 직업은 여성의 재생산이 멈추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는 한국 사회에서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여기에서는 ...

      서양의학의 도입과 함께 자리 잡게 된 조산사라는 직업은 여성의 재생산이 멈추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는 한국 사회에서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여기에서는 1950년대 조산사 양성 과정을 다루었다. 해방 뒤 조산사가 가장 증가한 때는 1950년대로 전염병 관리를 포함한 기초적 보건 관리와 한국전쟁 동안 인구의 이동과 사망·출생 등을 포함한 인구동태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늘어났다. 조산사 인원 증가와 함께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조산사들이 임상 실습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사회부는 원조기관에 조산사 재교육을 요구했으며 1955-1957년까지 총 773명에 대한 조산사 재교육이 이루어졌다. 조산사 재교육은 서울을 비롯한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전주, 청주에서 진행되었다. 대한조산원회는 각 지역에서 재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협력했으며 조산사 교육과 관련해 국립 조산학교와 모자병원의 설립을 요구했지만 1950년대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실현되지 않았다. 따라서 1950년대 유일하게 조산교육이 이루어진 곳은 일신부인병원이었다. 일신부인병원은 1950년대 독자적으로 조산 교육 6개월간의 정규과정을 개설했다. 그런 일신부인병원도 2009년에는 조산 수습교육이 폐지되었다. 이 논문은 1950년대 조산사 교육의 현황과 보건사회부, 조산원회, OEC(경제조정관실) 간의 국립조산학교 설립에 둘러싼 이해를 중심으로 1950년대 조산사 양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다. 조산사 재생산의 문제는 여성인력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주제이다. 즉 조산사는 전문 의료인이었지만 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한국 사회에서는 전쟁동원과 노동력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될 때만 관심을 받았다. 노동력 동원의 대상으로만 그 필요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동원이 필요 없을 때에 언제든지 철회 가능한 한시적이고 일회성에 그친다는 의미이다. 이런 측면에서 전문직 조산사의 소멸은 여타의 직종의 변천과 맞물려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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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uring 1950s, the number of midwives increased to its highest level since its survey of the population movement, which included figures for mobility, death and birth. The most controversial issue was the rapid increase of midwives lacking sufficient clinical training. To solve this problem, the Ministry of Health and Social Affairs demanded that assistance organizations “Re-education” of midwives, landing to 738 midwives` duty education between 1955 and 1957. The Korean Midwives Association cooperated with this “Re-education” policy at its local sites, and demanded the construction of a national midwife school and mother-child hospital. However, these demands were not accepted in the 1950s. In modern society, the rise and fall of each profession depends on the flow of capital. In terms of female labor, this tendency is much more apparent and the case of midwives in not exception. Even midwives who are member of professional medical staffs must fight for, Korean society`s recognition of their expertise, that is, except only such workers were used as labor mobilization during war. As a result, midwives training centers are few i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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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ring 1950s, the number of midwives increased to its highest level since its survey of the population movement, which included figures for mobility, death and birth. The most controversial issue was the rapid increase of midwives lacking sufficient c...

      During 1950s, the number of midwives increased to its highest level since its survey of the population movement, which included figures for mobility, death and birth. The most controversial issue was the rapid increase of midwives lacking sufficient clinical training. To solve this problem, the Ministry of Health and Social Affairs demanded that assistance organizations “Re-education” of midwives, landing to 738 midwives` duty education between 1955 and 1957. The Korean Midwives Association cooperated with this “Re-education” policy at its local sites, and demanded the construction of a national midwife school and mother-child hospital. However, these demands were not accepted in the 1950s. In modern society, the rise and fall of each profession depends on the flow of capital. In terms of female labor, this tendency is much more apparent and the case of midwives in not exception. Even midwives who are member of professional medical staffs must fight for, Korean society`s recognition of their expertise, that is, except only such workers were used as labor mobilization during war. As a result, midwives training centers are few i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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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국에 새 간호부 1,000명」; 「월터장군 CAC 팀을 찬양」; 「CAC 정부 사무부OEC에 이관」, RG 550"

      2 "「일신병원 연간보고서 1953-1961」, RG 469"

      3 "「대한조산원회무료산원설립취지서」, RG 469"

      4 "「1957.6.22. 간호사와 조산사의 활동」, RG 469"

      5 "「1956.8.29. 보고」; 「1956년 12월 10-13일 부산 현지조사」; 「1957.2.28 광주 현지조사 보고서」; 「1957.3.18 간호와 조산 활동」; 「1957.5. 조산사와 간호사의 자격시험」, RG 469"

      6 "「1956.6.21 한국의 간호에 대한 특별 보고」; 「1956.8.6 WPRO/NCH/4/56 1956.5.11-24 한국현지방문 보고서」; 「1956.8.20 WPRO/MCH/4A/56 조산교육보고서」; 「1957.2.27.-3.9 현지조사」; 「1957.4.11 한국의조산 훈련 상황」; 「한국의 간호원」, RG 469"

      7 박윤재, "해방후 한국조산제도의 성립과 변화: 원로 조산사들의 구술을중심으로" 11 (11): 34-48, 2008

      8 최제창, "한국의 보건상태"

      9 이꽃메, "한국근대간호사" 한울 2002

      10 동아일보, "한 해 평균 8%씩 조산소가 줄고 있다"

      1 "「한국에 새 간호부 1,000명」; 「월터장군 CAC 팀을 찬양」; 「CAC 정부 사무부OEC에 이관」, RG 550"

      2 "「일신병원 연간보고서 1953-1961」, RG 469"

      3 "「대한조산원회무료산원설립취지서」, RG 469"

      4 "「1957.6.22. 간호사와 조산사의 활동」, RG 469"

      5 "「1956.8.29. 보고」; 「1956년 12월 10-13일 부산 현지조사」; 「1957.2.28 광주 현지조사 보고서」; 「1957.3.18 간호와 조산 활동」; 「1957.5. 조산사와 간호사의 자격시험」, RG 469"

      6 "「1956.6.21 한국의 간호에 대한 특별 보고」; 「1956.8.6 WPRO/NCH/4/56 1956.5.11-24 한국현지방문 보고서」; 「1956.8.20 WPRO/MCH/4A/56 조산교육보고서」; 「1957.2.27.-3.9 현지조사」; 「1957.4.11 한국의조산 훈련 상황」; 「한국의 간호원」, RG 469"

      7 박윤재, "해방후 한국조산제도의 성립과 변화: 원로 조산사들의 구술을중심으로" 11 (11): 34-48, 2008

      8 최제창, "한국의 보건상태"

      9 이꽃메, "한국근대간호사" 한울 2002

      10 동아일보, "한 해 평균 8%씩 조산소가 줄고 있다"

      11 매일신보, "충북보건협회 속성산파강습"

      12 안소영, "출산조력자로서의 조산사에 대한 사회적 의미변화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01

      13 이경혜, "출산장려정책과 조산사의 역할" 부모자녀건강학회 6 (6): 59-69, 2003

      14 조영미, "출산의 의료화 과정과 여성의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04

      15 이임하, "출산에서의 여성전문직 조산사의 기능과 쇠퇴에 관한 연구" 한국구술사학회 6 (6): 121-161, 2015

      16 김은실, "출산문화와 여성" 한국여성학회 12 (12): 119-153, 1996

      17 동아일보, "질의응답"

      18 남조선과도정부, "조선통계연감" 남조선과도정부 1948

      19 조선통신사, "조선연감" 조선통신사 1948

      20 경향신문, "조산원이 되려면"

      21 대한조산협회, "조산역사 100년: 1907-2006" 대한조산협회 2006

      22 오선정, "조산사 제도의 국가간 비교" 서울大學校 保健大學院 1998

      23 김효진, "일신부인병원의 조산교육: 1952년부터 1970년대 말까지" 11 (11): 62-73, 2008

      24 이수진, "일본계 미국인 산파: 매혹적인 문화사의 산실" 11 (11): 181-190, 2008

      25 최혜련, "우리나라의 조산제도에 관한 조사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1985

      26 조선총독부, "소화10년 조선총독부통계연보" 조선총독부 1937

      27 동아일보, "산파와 산과의 구별"

      28 매일신보, "산파와 간호부 양성소를 설치 춘천의원 구내에"

      29 매일신보, "산파시험성적 조선인은 한명"

      30 동아일보, "산파간호부합격자"

      31 보건사회부, "보건사회통계연보" 보건사회부 1961

      32 보건사회부, "보건사회통계연보" 보건사회부 1981

      33 보건사회부, "보건사회통계연보" 보건사회부 1970

      34 보건복지부, "보건복지통계연보" 보건복지부 2001

      35 보건복지가족부, "보건복지가족통계연보" 보건복지가족부 2009

      36 동아일보, "망중한"

      37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자료번호 OH-원로산파구술-하옥희-08-025.hwp"

      38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자료번호 OH-원로산파구술-이인희-08-025.hwp"

      39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자료번호 OH-원로산파구술-김유영-08-025.hwp"

      40 이영복, "간호사" 수문사 1968

      41 매일신보, "간호부와 조산부를 대량 양성할 계획"

      42 "Entry A-1 1303, Team Reports, 1951-1953"

      43 동아일보, "80년대의 유망직종"

      44 신규환, "20세기 한국 산과기술의 도립과 발전" 12 (12): 7-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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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10-07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1-50) ->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1998-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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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9 1.09 1.1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6 1.11 1.7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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