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구층목탑의 찰주본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김위홍의 정치적 위상과 활동에 대한 연구는 그가 경문왕가 국왕의 동생이자 숙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이루어져 많은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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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구층목탑의 찰주본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김위홍의 정치적 위상과 활동에 대한 연구는 그가 경문왕가 국왕의 동생이자 숙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이루어져 많은 한계가 있었다....
황룡사구층목탑의 찰주본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김위홍의 정치적 위상과 활동에 대한 연구는 그가 경문왕가 국왕의 동생이자 숙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이루어져 많은 한계가 있었다.
신라하대 정치사 연구가 진전되면서 김위홍의 정치활동에 대한 이해는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경문왕의 왕권강화 정책에 참여하였지만 어린 나이에 즉위한 헌강왕이 친정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배제 또는 실각되었으며, 진성여왕의 즉위 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다고 보고 있다. 반면 경문왕 이후부터 진성여왕의 즉위 초에 이르기까지 경문왕가 왕실의 증심 인물로 지속적으로 정국을 주도했다는 평가도 있다.
김위홍은 경문왕에서 진성여왕 즉위 초반까지 재상과 상대등, 병부령으로 있었고, 이는 그가 경문왕가의 종친으로 왕실을 대변하고 정국 운영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가능했다. 김위홍은 신라에서 유일한 경문왕 자녀들의 연속적인 왕위계승을 지지하고 삼대목 편찬을 통해 이를 정당화하였다.
경문왕가는 자신을 신성가족화하여 원성왕계 내의 다른 가계들과 차별화하고 우위를 주장했다. 30대에 조졸하였으며 고립된 경문왕가의 왕들이 김위홍까지 내치기에는 경문왕가의 왕실 구성원은 너무 협소했다. 경문왕가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정치 세력화보다는 국왕을 구심점으로 왕가의 공통된 정치적 이해를 추구하였다.
경문왕가기 김위홍의 정치활동에 대해 「심원사 수철화상비」에서는 “혜성대왕이 왕가를 위해 자신의 덕을 덜어 잘 화합했다”라고 평가하였다. 경문왕가기 정국의 중심에 선 김위홍의 정치 노선과 정치적 위상은 헌강왕대 후반기 이후 단절되었다가 진성여왕대에 다시 복귀한 것이 아니라 경문왕가 국왕들의 재위 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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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the gilt-bronze plaques of 9-storied wooden pagoda of Hwangryongsa temple(皇龍寺9層木塔 刹柱本紀) became generally known, the study on Kim Wi-hong(金魏弘)’s political status and activities had been carried out without knowing tha...
Before the gilt-bronze plaques of 9-storied wooden pagoda of Hwangryongsa temple(皇龍寺9層木塔 刹柱本紀) became generally known, the study on Kim Wi-hong(金魏弘)’s political status and activities had been carried out without knowing that Kim Wi-hong is the brother of the king at Gyeongmun’s lineage and his uncle. This study had many barriers and limitations. Kim Wi-gong continued to work as prime minister, Sangdaedeung(上大等), Byeongburyeong(兵部令) at the time of King Gyeongmun’s lineage. It means that he fully represented the interests of King Gyeongmun’s lineages and actively participated in political situation for the sake of the King’s interests. King Gyeongmun’s Lineage differentiated their family from other families within King Wonsung’s Lineage and claimed predominance by consecrating their family. The royal family of King Gyeongmun’s Lineage pursued common political interests centering around the King rather than individual political empowerment. It evaluated at Suchel Hwasan-bi(秀澈和尙碑) about Kim Wi-hong’s political activities that “Hyesung Daewang(惠成大王) harmonized well for the royal family.” Kim Wi-hong’s political status and roles standing in the middle of political operation at the time of King Gyeongmun’s lineage is not simply disconnected since the later half of the reign of King Heongang(憲康王) and then returned to the reign of Queen Jinseong(眞聖女王), but his political status and roles lasted during the reign of Kings of King Gyeongmun’s Line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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