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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太白山 天祭의 歷史와 儀禮 = The History and Rite of Cheonje[天祭] in Mt. Taeb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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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0436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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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태백산의 제사는 신라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 차원이든 개인 차원이든 꾸준히 이어져왔는데, 祭儀를 주관한 주체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신라대에는 국토 방위를 위하여 5곳에 中祀를 설치하였다. 이 중 태백산이 中祀에 속하였음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김방경의 아들 김순을 太白山祭를 지내기 위한 外山祭告使로 파견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도심역 관련 내용을 분석해보면, 고려의 사전에 태백산제가 공식적으로 등재되지 않았지만 태백산제를 지속적으로 설행하였음을 보여주며, 이는 고려시대에도 태백산을 국가제사를 위한 祭場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시대 태백산의 국가 제사는 신라대의 중사에 이어 태백산신에게 제사지낸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대에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가 태백산을 동진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후 태백산에서 비록 국가 제사를 지내지 않았지만 민간에서 태백산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고, 이에 지방 관청과 무당들이 백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현의 『허백당집』등을 보았을 때 조선시대 태백산 제사는 일정 부분을 향리들이 주도하면서, 백성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조선시대 태백산에 설치되었던 제당을 ‘太伯天王堂?天王堂?天王祠’라 하였다는 것은 天王神을 모신 제의가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각종 기록을 종합해 보면 ‘太白山祠 = 天王堂’이고, ‘太白祠= 天王祠’ 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太白山祠나 太白祠 등으로 불리는 제당에서도 天王神을 모셨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天王은 지역이나 제당에 따라 山神이나 天神으로 비정될 수 있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모신 신령을 山神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18세기부터 단종이 死後 태백산신으로 좌정하였다는 믿음이 태백산 주변 및 영월지역 주민들과 무당들 사이에 뿌리 내렸으며, 단종대왕을 천왕으로 여기는 사례가 없다는 사실은 太白山神과 天王을 별개로 여겨야 함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1735~1737년 사이에 기록된 李麟祥의 ?遊太白山記?에 天王神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태백산 천왕당[태백당]에서 모셨던 天王을 天神으로 여겨야할 가능성을 좀 더 높여준다.
      조선후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의병 운동을 하거나 동학을 비롯한 신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태백산에 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수련 활동, 또는 독립을 기원하기 위해 태백산에 제단을 차리거나, 탑을 쌓은 후 하늘에 제사를 지낸 예를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태백산에서 국가 제사를 지냈던 전통과 함께 민간인들이 많이 찾은 종교적 성소이면서, 의병 운동과 신종교 활동을 한 단체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태백산에서 행해진 제의 과정과 관련하여 1938년과 1949년 기록에 의하면 28宿旗를 비롯한 각종 깃발과 제단을 준비하여 천제를 지낸 사례를 확인하였다.
      이와 함께 태백산에서 천제를 지내거나 태백산신을 모신 전통은 태백산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어, 거리 등의 문제로 인해 태백산에서 제사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태백산 줄기가 내려온 산봉우리나 능선 아래에 상당으로 여기는 천제단[천제당 또는 천지단]을 마을 단위로 만들어 천제를 지내는 사례를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즉, 많은 마을에서 태백산과 관련한 당신화가 만들어져 단군을 모시거나 천제를 지내는 예를 발견할 수 있으며, 태백산신령을 마을 제당의 主神으로 모셔서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마을 또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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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의 제사는 신라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 차원이든 개인 차원이든 꾸준히 이어져왔는데, 祭儀를 주관한 주체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신라대에는 국토 ...

      태백산의 제사는 신라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 차원이든 개인 차원이든 꾸준히 이어져왔는데, 祭儀를 주관한 주체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신라대에는 국토 방위를 위하여 5곳에 中祀를 설치하였다. 이 중 태백산이 中祀에 속하였음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김방경의 아들 김순을 太白山祭를 지내기 위한 外山祭告使로 파견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도심역 관련 내용을 분석해보면, 고려의 사전에 태백산제가 공식적으로 등재되지 않았지만 태백산제를 지속적으로 설행하였음을 보여주며, 이는 고려시대에도 태백산을 국가제사를 위한 祭場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시대 태백산의 국가 제사는 신라대의 중사에 이어 태백산신에게 제사지낸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대에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가 태백산을 동진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후 태백산에서 비록 국가 제사를 지내지 않았지만 민간에서 태백산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고, 이에 지방 관청과 무당들이 백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현의 『허백당집』등을 보았을 때 조선시대 태백산 제사는 일정 부분을 향리들이 주도하면서, 백성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조선시대 태백산에 설치되었던 제당을 ‘太伯天王堂?天王堂?天王祠’라 하였다는 것은 天王神을 모신 제의가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각종 기록을 종합해 보면 ‘太白山祠 = 天王堂’이고, ‘太白祠= 天王祠’ 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太白山祠나 太白祠 등으로 불리는 제당에서도 天王神을 모셨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天王은 지역이나 제당에 따라 山神이나 天神으로 비정될 수 있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모신 신령을 山神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18세기부터 단종이 死後 태백산신으로 좌정하였다는 믿음이 태백산 주변 및 영월지역 주민들과 무당들 사이에 뿌리 내렸으며, 단종대왕을 천왕으로 여기는 사례가 없다는 사실은 太白山神과 天王을 별개로 여겨야 함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1735~1737년 사이에 기록된 李麟祥의 ?遊太白山記?에 天王神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태백산 천왕당[태백당]에서 모셨던 天王을 天神으로 여겨야할 가능성을 좀 더 높여준다.
      조선후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의병 운동을 하거나 동학을 비롯한 신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태백산에 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수련 활동, 또는 독립을 기원하기 위해 태백산에 제단을 차리거나, 탑을 쌓은 후 하늘에 제사를 지낸 예를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태백산에서 국가 제사를 지냈던 전통과 함께 민간인들이 많이 찾은 종교적 성소이면서, 의병 운동과 신종교 활동을 한 단체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태백산에서 행해진 제의 과정과 관련하여 1938년과 1949년 기록에 의하면 28宿旗를 비롯한 각종 깃발과 제단을 준비하여 천제를 지낸 사례를 확인하였다.
      이와 함께 태백산에서 천제를 지내거나 태백산신을 모신 전통은 태백산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어, 거리 등의 문제로 인해 태백산에서 제사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태백산 줄기가 내려온 산봉우리나 능선 아래에 상당으로 여기는 천제단[천제당 또는 천지단]을 마을 단위로 만들어 천제를 지내는 사례를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즉, 많은 마을에서 태백산과 관련한 당신화가 만들어져 단군을 모시거나 천제를 지내는 예를 발견할 수 있으며, 태백산신령을 마을 제당의 主神으로 모셔서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마을 또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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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was conducted to investigate the history and rite of Cheonje[天祭] in
      Mt. Taebaek
      The ritual traditions performed in Mt. Taebaek have continued to this day since the Silla dynasty. During the Silla dynasty, Mt. Taebaek was considered to be an important place for the national rituals called Jungsa. As well, it was used for the political purpose of expanding and controlling the territories and those tradition had continued to the Goryeo dynasty. Although during Joseon dynasty, the ritual was not performed as the event of national importance, it had received the national attention until the early era of Joseon dynasty,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According to the references from various sources, Taebaeksansa and Taebaeksa were assumed to be Cheonwangdang and Cheonwangsa respectively.
      Since the Taebaeksanje received nation-wide attention, one could assume that the ritual itself was a real burden to the people. However, a number of evidence found in the areas around Mt. Taebaek, and even remote areas from the mountain, showed that people who were unable to worship in Mt Taebaek built Cheonjedan (superior shrine) and practiced the ritual. During the rituals performed for Cheonshin, the villagers prayed for the success of important events, such as rain, good harvest and made a resolution for their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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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was conducted to investigate the history and rite of Cheonje[天祭] in Mt. Taebaek The ritual traditions performed in Mt. Taebaek have continued to this day since the Silla dynasty. During the Silla dynasty, Mt. Taebaek was considered ...

      This study was conducted to investigate the history and rite of Cheonje[天祭] in
      Mt. Taebaek
      The ritual traditions performed in Mt. Taebaek have continued to this day since the Silla dynasty. During the Silla dynasty, Mt. Taebaek was considered to be an important place for the national rituals called Jungsa. As well, it was used for the political purpose of expanding and controlling the territories and those tradition had continued to the Goryeo dynasty. Although during Joseon dynasty, the ritual was not performed as the event of national importance, it had received the national attention until the early era of Joseon dynasty,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According to the references from various sources, Taebaeksansa and Taebaeksa were assumed to be Cheonwangdang and Cheonwangsa respectively.
      Since the Taebaeksanje received nation-wide attention, one could assume that the ritual itself was a real burden to the people. However, a number of evidence found in the areas around Mt. Taebaek, and even remote areas from the mountain, showed that people who were unable to worship in Mt Taebaek built Cheonjedan (superior shrine) and practiced the ritual. During the rituals performed for Cheonshin, the villagers prayed for the success of important events, such as rain, good harvest and made a resolution for their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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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太白山의 영역
      • 3. 太白山 祭祀의 역사적 변천
      • 4. 太白山 天祭壇과 祭儀 樣相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太白山의 영역
      • 3. 太白山 祭祀의 역사적 변천
      • 4. 太白山 天祭壇과 祭儀 樣相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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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윤순석, "「遊黃池記」·「遊太白山記」·「黃池記" 태백문화원 21 : 2008

      2 姜再恒, "立齋遺稿"

      3 김도현, "함백산 절골 천제당 운영 양상과 그 성격" 강원대 강원문화연구소 30 : 2009

      4 서영대, "한국의 성황신앙과 군자봉 성황사 in: 군자봉 성황제" 시흥문화원 2005

      5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마을제당(강원도)"

      6 김태곤, "한국 민간신앙 연구" 집문당 1994

      7 신종원, "한국 대왕신앙의 역사와 현장" 일지사 2008

      8 박호원, "한국 공동체 신앙의 역사적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9 예맥문화재연구원, "태백시 문화유적 분포지도" 태백시·예맥문화재연구원 2007

      10 이필영, "태백산 천제단 in: 文化財大觀 (중요민속자료 1 : 신앙․생활자료)" 文化財廳 2005

      1 윤순석, "「遊黃池記」·「遊太白山記」·「黃池記" 태백문화원 21 : 2008

      2 姜再恒, "立齋遺稿"

      3 김도현, "함백산 절골 천제당 운영 양상과 그 성격" 강원대 강원문화연구소 30 : 2009

      4 서영대, "한국의 성황신앙과 군자봉 성황사 in: 군자봉 성황제" 시흥문화원 2005

      5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마을제당(강원도)"

      6 김태곤, "한국 민간신앙 연구" 집문당 1994

      7 신종원, "한국 대왕신앙의 역사와 현장" 일지사 2008

      8 박호원, "한국 공동체 신앙의 역사적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9 예맥문화재연구원, "태백시 문화유적 분포지도" 태백시·예맥문화재연구원 2007

      10 이필영, "태백산 천제단 in: 文化財大觀 (중요민속자료 1 : 신앙․생활자료)" 文化財廳 2005

      11 신종원, "태백산 사길령 산령각제 연구" 강원향토문화연구회 3 : 1998

      12 임동권, "태백산 민속지" 민속원 1997

      13 김강산, "태백산 天祭" 江原道民俗學會 15 : 2001

      14 박맹수, "최시형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15 박창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별그림 분석" 한국과학사학회 20 : 1998

      16 나경수, "지남리 지북마을의 민속" (창간) : 1991

      17 이기봉, "조선지도 고 4709-77 중 경상도 해제"

      18 나경수, "전남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 별신제(別神祭) 조사 연구" 국립민속박물관 (10) : 5-32, 2002

      19 최종성, "숨은 천제(天祭) ― 조선후기 산간제천 자료를 중심으로 ―" 한국종교학회 (53) : 63-84, 2008

      20 "서울대학교 규장각 고지도 제공 홈페이지"

      21 김도현, "삼척지역 불교문화의 형성과 발전 in: 삼척의 불교미술" 삼척시립박물관 2007

      22 김도현, "삼척의 봉수와 관련 민간신앙" 강원대학교 사학회 19 : 2004

      23 국립문화재연구소, "산간신앙(강원·경기·충북·충남 편)" 국립문화재연구소 1993

      24 서영대, "백제의 천신숭배 in: 백제의 제의와 종교"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7

      25 최광식, "백제의 산천제사 in: 백제의 제의와 종교"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7

      26 이필영, "마을신앙으로 보는 우리 문화 이야기" 웅진닷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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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김효경, "단종의 신격화 과정과 그 의미" 국립민속박물관 5 : 1998

      30 국립춘천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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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최광식, "고대 한국의 국가와 제사" 한길사 1995

      33 윤이흠, "강화도 참성단과 개천대제" 강화문화원 2009

      34 장정룡, "강원지역 산멕이 신앙 고찰" 민속학회 25 : 1993

      35 김도현, "강원도 영동 남부지역 고을 및 마을신앙"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9

      36 "黃池記"

      37 김성환, "高麗時代 檀君傳承과 認識" 경인문화사 2002

      38 "高麗史"

      39 "高宗實錄"

      40 許穆, "陟州誌"

      41 "關東誌"

      42 李簠, "遊黃池記"

      43 李麟祥, "遊太白山記"

      44 "輿地圖書"

      45 許穆, "記言"

      46 成俔, "虛白堂集"

      47 南孝溫, "秋江集"

      48 "眞珠誌"

      49 "江原道誌"

      50 김도현, "歷代 地理誌의 三陟郡 敍述에 대한 一考察" 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 1997

      51 蔡濟恭, "樊巖集"

      52 劉澤夏, "東學亂中記"

      53 "東史綱目"

      54 "朝鮮王朝實錄"

      55 이능화, "朝鮮巫俗考" 창비 2008

      56 朝鮮總督府,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三陟郡條 1942

      57 "昭和16年 刑公 第310號"

      58 柳夢寅, "於于野談"

      59 "新增東國輿地勝覽"

      60 姜時元, "崔先生文集道源記書"

      61 최승순, "崇山意識과 太白山天祭" 태백문화원 7 : 1993

      62 琴昌憲, "太白市의 民俗資料 in: 太白市의 歷史와 文化遺蹟" 關東大學校博物館 1997

      63 김선풍, "太白山天祭와 檀君神話의 構造" 태백문화원 7 : 1993

      64 임동권, "太白山 天祭壇의 歷史性과 文化財的 位相" 태백문화원 7 : 1993

      65 조흥윤, "天神에 관하여" 연세대 국학연구원 77 : 1993

      66 曺植, "南冥先生別集"

      67 "事件番號 昭和16年刑第936號"

      68 최영희, "三陟의 烏金簪 제사 in: 韓國史紀行: 그 터" 일조각 1987

      69 沈宜昇, "三陟郡誌"

      70 "三國遺事"

      71 "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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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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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3 0.63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6 1.486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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