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70년대 농산물 가공기업의 활동을 통해 박정희 정권이 전개한 증산농정의 성격을 구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선행연구가 1970년대 농정을 증산을 위한 생산정책만을 중심으로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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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8
2018
한국어
서울
Raw agricultural product supply and demand policy of Park Chung Hee regime and the activities of 'Food processing companies' in 1970s' : focusing on sweet potato contract cultivation between the government and alcohol companies
iv, 40 p. : 도표 ; 26 cm
지도교수: 허은
참고문헌: p. 34-37
I804:11009-00000008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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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70년대 농산물 가공기업의 활동을 통해 박정희 정권이 전개한 증산농정의 성격을 구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선행연구가 1970년대 농정을 증산을 위한 생산정책만을 중심으로 파악...
본 연구는 1970년대 농산물 가공기업의 활동을 통해 박정희 정권이 전개한 증산농정의 성격을 구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선행연구가 1970년대 농정을 증산을 위한 생산정책만을 중심으로 파악하였던 것에서, 연구의 시야를 농산물 증산을 위해 요구되었던 수요문제까지 확장하고자 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늘어나는 농산물 수요에 대응함과 동시에 농가에게 충분한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해 원료농산물 증산을 장려하고 수입을 억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식료품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가공기업’은 국내외로부터 더 많은 원료농산물을 조달하고자 하였다. 양자 간의 이해 차이로 박정희 정권의 수매가 인상을 통한 증산시도는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농정당국이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증산은 성취될 수 없었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가공기업’을 안정적인 수요처로 동원해낼 방법을 모색했다.
박정희 정권은 ‘가공기업’에게 계약재배지침을 내림으로써, 원료농산물의 실수요자인 ‘가공기업’으로 하여금 농가 생산물에 대한 인수책임을 지도록 했다. 이는 곧 정권이 부담해 온 증산 농산물의 수매책임과 이에 수반된 재정부담, 지원업무까지 전가하는 것이었다. 원료부족문제가 심각했던 ‘가공기업’은 국산 농산물 이용실적을 바탕으로 수입추천을 하는 정권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970년대 원료농산물 수급체계는 ‘가공기업’이 증산된 농산물에 대한 인수책임을 떠받드는 형태로 재편되었다.
1970년대 원료농산물 수급체계는 ‘가공기업’의 수매량이 확대됨에 따라 농가가 기업수요에 의존적인 생산조건에 놓이도록 했다. 수매비중이 늘어나면서 생산농가는 수매주체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공기업’이 수매량을 확대하고 농업생산과정에 개입해 들어오면서 농가는 더 많은 원료농산물을 생산했다. 또한 가공기업이 선호하는 품종을 생산했으며, 가공기업이 필요로 하는 형태로 농산물을 생산, 공급했다. 그 결과 ‘가공기업’이 인수를 기피할 경우, 농가가 그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원료농산물 수급이 ‘가공기업’ 수요에 의존하게 된 이상, 해당 수급체계가 안정성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가공기업’은 원료농산물 정권의 증산정책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이윤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국산 원료농산물의 이용을 확대하기 위해 도입한 수입링크제도는 더 많은 원료농산물을 수입하기 위한 통로가 되었다. 게다가 국내외 시장상황의 변화로 국산 원료농산물의 채산성이 악화되자 ‘가공기업’은 국산 원료농산물 기피를 노골화하고 재배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가공기업’에 의존한 원료농산물 수급체계는 증산에 참여한 농가에 광범한 영농피해를 입혔다.
1970년대 후반 ‘가공기업’이 더 이상 국산 원료농산물 인수에 나서지 않으려 하는 가운데, 증산농정의 정책주체인 정권조차 농산물 수급불균형 문제를 책임지려하지 않았다. 그간 ‘가공기업’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되어온 국산 원료농산물은 ‘가공기업’과 정권 관심 밖에 방치되었다. 원료농산물에 대한 안정적인 수요가 보장되지 않음에 따라 증산에 참여한 농가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농산물 수급불균형은 1976-1978년을 전후한 수입개방 진전에 따라 구조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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