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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하였는가? = 남침-북침 논쟁의 종결을 위한 자료와 사실의 검토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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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지난 반세기 동안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어 왔다. 이른바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로 대별될 수 있는 그동안의 연구들은 전쟁의 ‘기원’(origin)과 ‘결정’(decisio...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지난 반세기 동안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어 왔다. 이른바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로 대별될 수 있는 그동안의 연구들은 전쟁의 ‘기원’(origin)과 ‘결정’(decision)을 놓고 많은 연구와 논쟁을 벌여왔다. 특히 최근들어 중요한 자료들이 많이 공개되면서 전쟁의 ‘결정’에 대한 연구는 더욱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전쟁의 ‘발발’(outbreak)과 ‘시작’(start)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없었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남침-북침을 놓고는 끊임없는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전쟁의 ‘기원’, ‘결정’과 ‘발발’, ‘시작’이 이론적 사실적으로 반드시 같은 것일 수는 없다. 전자가 규명되어도 후자를 재구성해서 밝혀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는다. 더우기, 기원이 밝혀지고 해석가능하다고 해서 후자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의미없는 것이라는 주장은, 경험적 사태에 대한 객관적 연구에서는 결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너무 근본주의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본 논문에서 그동안의 연구의 미답지대였던 전쟁의 ‘발발’과 ‘시작’ 자체를 가장 낮은 수준에서 “사실적으로 재구성”하고자 시도하였다. 따라서 이 논문은 어떤 추상 수준이 높은 해석이나 평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가공되지 않은 날 사실들만을 추적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재구성함에 있어서 남한과 북한의 정부와 군대 내부에서 비밀리에 올라가거나 내려온 명령과 지령, 훈화들을 발굴하여 분석하였다. 특히 인민군 내부의 비밀명령서들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어 이를 규명하는데 있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문건을 보지않고는 남침-북침 논쟁은 여전히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특히 전쟁 발발 3일전의 숨가쁜 시기동안의 38선 북선의 움직임들이 집중적으로 분석되었다. 1950년 6월 대규모로 이동한 북한군병사들은 38선 부근의 집결지에 도착하여 비밀을 엄수하는 가운데 군사기율을 준수하고, 정신무장을 새로이 하고, 장비를 점검하며, 야전지휘부를 구성하고 경장(輕裝)을 꾸리는 등의 여러 공격준비태세를 갖춘 채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공격에 임박하여서는 그들은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전쟁을 위한 투쟁의욕을 고취받고, 중앙의 최종 명령과 훈화를 전달받았으며, 군사적으로는 지뢰를 제거하고 38선에 대한 최근접정찰을 통하여 용이한 남진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지뢰의 사전 제거가 남한군의 북한으로의 진격을 도와주기 위한 조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25일 새벽 공격 직전까지도 38선 이남지역에 대한 정찰을 계속하였다. 이것 역시도 남한군의 선제공격이 있었다면 불가능한 군사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김일성과 북한은 전쟁의 시작과 함께 자신들의 공격은 남한의 전면공격에 의한 반공격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오늘날 까지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위장이었다. 남한은 전혀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지않은 학자들은 남한군이 해주-옹진지역에서 선제공격을 하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부분적 북침의 가능성이다. 즉 북한의 공격이 있었다 치더라도 그것이 남한의 사전도발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스톤(I. F. Stone), 콘데 (David W. Conde), 굽타(Karunakar Gupta), 커밍스(Bruce Cumings) 등이 이러한 주장을 펴고있는 학자들이다. 그러나 남한과 미국의 자료가 아니라, 북한 자신들의 자료를 갖고 면밀하게 재구성한 결과 이 역시도 근거없는 것이었다. 북한은 해주북침설을 곧바로 “날조”라고 공격하였다. 스스로의 입으로 스스로의 주장을 부인한 당시의 그들의 명령과 보도와 성명들은 오늘날 너무도 많이 남아있다.
      결국 우리는, 북침설은 그것이 전면적 북침설이든지 해주에서의 부분적 북침설이든지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오랜 동안의 논쟁이 끝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위장된 북침주장이 최초에 어떻게 하여 나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도 상세하게 밝힐 수 있었다.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리더십은 처음부터 남한에 의한 북침으로 위장하고 전쟁을 시작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념적 공격과 논쟁은 그것이 담고있는 증오와 격분의 크기 때문에 가장 낮은 수준의 사실적 증거들을 외면하거나 중요시하지 않는다. 오직 전체만을 말하려하며 거기에서 모든 사실들의 정당성까지도 독점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사태에 대한 객관적 접근을 강하게 차단하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된다. 특정사태 전체의 성격에 대한 해석이 갖을 수 있는 도덕적 정당성은 무엇보다도 사실을 끝까지 밝히고 이를 규명한 연후에 그 결과로써 귀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아마도 전통주의적 해석과 수정주의적 해석 모두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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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논문요약】
      • Ⅰ. 문제의 제기
      • Ⅱ. 집결지에서의 인민군 : 최종 준비와 최종 점검
      • Ⅲ. 공격명령Ⅰ : 중앙
      • Ⅳ. 공격명령Ⅱ : 6월 23-25일의 38선북선
      • 【논문요약】
      • Ⅰ. 문제의 제기
      • Ⅱ. 집결지에서의 인민군 : 최종 준비와 최종 점검
      • Ⅲ. 공격명령Ⅰ : 중앙
      • Ⅳ. 공격명령Ⅱ : 6월 23-25일의 38선북선
      • Ⅴ. ‘북침’주장-준비된 위장과 전쟁의 시작
      • Ⅵ. ‘북침’이론 : 그 대답없는 질문의 구조와 논리
      • Ⅶ.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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