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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의 對韓 ‘보호국화’ 추진과 학정참여관 시데하라(幣原坦)의 식민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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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789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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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일제의 對韓 교육정책은 1890년 이후 일본 정부 내 한국의 ‘보호국화’ 기조 속에서 이뤄졌다. 더욱이 1904년 2월 러일전쟁 중에 일제는 대한제국의 ‘보호국화’를 서둘렀고 1904년 8월 <한일 외국인 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하고는 재정과 외교 고문뿐만 아니라 경무고문과 더불어 학정 참여관을 임명하여 교육 간섭에 나섰다. 이에 일본 정부 문부대신의 추천을 받은 한국 관립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시데하라가 학정 참여관에 임명되었다. 시데하라는 1905년 2월부터 1906년 6월까지 1년여 동안 학정참여관을 지냈는데, 학부대신은 “교육에 관한 모든 사항”을 그에게 자문하여 동의를 얻고 난 뒤에 시행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하 여 시데하라는 교육에 관해서 의정부 회의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의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 여 받아 일제의 대한 식민정책을 주도해 나갔다. 그는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가 실시하던 식민 지 교육정책을 연구하여 1905년 4월 『한국교육개량안』을 작성하였다. 이는 대한제국의 교육 전 반을 일제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데 목적을 두었다. 시데하라는 이를 외부대 신 고무라에게 보고한 뒤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교육개량안』의 핵심은 기존 대한제국의 소학교 를 4년제의 보통학교제로 바꾸고 일본어를 주로 가르치는 학교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먼저 시데하라는 교과서 편찬에 힘을 기울였지만 한국인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런 가운데 통감 부가 설치되고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는 행정가였던 시데하라보다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대한 식민 교육정책을 실현하고자 통감부 서기관 타와라로 교체하였다. 이후 통감부는 학제를 단순화 해서 과정을 간이하게 하여 오로지 실용에 적합한 식민지 한국인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이에 한국 인들은 사립학교 설립으로 맞섰지만 통감부의 사립학교 탄압 정책에 더는 발전하지 못하고 일제 의 제도권 안으로 종속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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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의 對韓 교육정책은 1890년 이후 일본 정부 내 한국의 ‘보호국화’ 기조 속에서 이뤄졌다. 더욱이 1904년 2월 러일전쟁 중에 일제는 대한제국의 ‘보호국화’를 서둘렀고 1904년 8월 <한...

      일제의 對韓 교육정책은 1890년 이후 일본 정부 내 한국의 ‘보호국화’ 기조 속에서 이뤄졌다. 더욱이 1904년 2월 러일전쟁 중에 일제는 대한제국의 ‘보호국화’를 서둘렀고 1904년 8월 <한일 외국인 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하고는 재정과 외교 고문뿐만 아니라 경무고문과 더불어 학정 참여관을 임명하여 교육 간섭에 나섰다. 이에 일본 정부 문부대신의 추천을 받은 한국 관립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시데하라가 학정 참여관에 임명되었다. 시데하라는 1905년 2월부터 1906년 6월까지 1년여 동안 학정참여관을 지냈는데, 학부대신은 “교육에 관한 모든 사항”을 그에게 자문하여 동의를 얻고 난 뒤에 시행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하 여 시데하라는 교육에 관해서 의정부 회의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의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 여 받아 일제의 대한 식민정책을 주도해 나갔다. 그는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가 실시하던 식민 지 교육정책을 연구하여 1905년 4월 『한국교육개량안』을 작성하였다. 이는 대한제국의 교육 전 반을 일제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데 목적을 두었다. 시데하라는 이를 외부대 신 고무라에게 보고한 뒤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교육개량안』의 핵심은 기존 대한제국의 소학교 를 4년제의 보통학교제로 바꾸고 일본어를 주로 가르치는 학교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먼저 시데하라는 교과서 편찬에 힘을 기울였지만 한국인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런 가운데 통감 부가 설치되고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는 행정가였던 시데하라보다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대한 식민 교육정책을 실현하고자 통감부 서기관 타와라로 교체하였다. 이후 통감부는 학제를 단순화 해서 과정을 간이하게 하여 오로지 실용에 적합한 식민지 한국인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이에 한국 인들은 사립학교 설립으로 맞섰지만 통감부의 사립학교 탄압 정책에 더는 발전하지 못하고 일제 의 제도권 안으로 종속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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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investigates the excavation result of the Bronze Age settlements in Jungdo, Chuncheon, and its direction to consider. It is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Korean archaeology that more than 1,300 houses in the Bronze Age have been excavated from one single site. In addition, a large number of rectangular ditched enclosure, dwelling sites, and dolmens were revealed. In order to identify such a large-scale excavation site, archaeological research on settlement is essential. This study explores points at issues and what to investigate along with those issues through research on the relics from Jungdo. First, the temporal trend of the Jungdo site in the Bronze Age was reviewed. Then the composition of the settlements, including the rectangular ditched enclosure and their timelines, were invetigated. It also suggests what to consider about housing features, residents’ problems, changes in settlement and the livelihood economy, and Jungdo se ttlement 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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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investigates the excavation result of the Bronze Age settlements in Jungdo, Chuncheon, and its direction to consider. It is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Korean archaeology that more than 1,300 houses in the Bronze Age have been excavate...

      This paper investigates the excavation result of the Bronze Age settlements in Jungdo, Chuncheon, and its direction to consider. It is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Korean archaeology that more than 1,300 houses in the Bronze Age have been excavated from one single site. In addition, a large number of rectangular ditched enclosure, dwelling sites, and dolmens were revealed. In order to identify such a large-scale excavation site, archaeological research on settlement is essential. This study explores points at issues and what to investigate along with those issues through research on the relics from Jungdo. First, the temporal trend of the Jungdo site in the Bronze Age was reviewed. Then the composition of the settlements, including the rectangular ditched enclosure and their timelines, were invetigated. It also suggests what to consider about housing features, residents’ problems, changes in settlement and the livelihood economy, and Jungdo se ttlement 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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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일제의 한국 ‘보호국화’ 추진과 시데하라의 학정참여관 임명
      • Ⅲ. 시데하라의 『한국교육개량안』의 시행과한국인들의 반발
      • Ⅳ. 통감부 설치 이후 식민교육정책 실행과 학정참여관 시데하라 경질
      • Ⅴ. 맺음말
      • Ⅰ. 머리말
      • Ⅱ. 일제의 한국 ‘보호국화’ 추진과 시데하라의 학정참여관 임명
      • Ⅲ. 시데하라의 『한국교육개량안』의 시행과한국인들의 반발
      • Ⅳ. 통감부 설치 이후 식민교육정책 실행과 학정참여관 시데하라 경질
      • Ⅴ. 맺음말
      • 참고문헌
      • 국문초록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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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황성신문"

      2 최혜주, "일제의 식민지배와 재조선일본인 엘리트" 어문학사 2018

      3 최혜주, "시데하라(幣原坦)의 顧問活動과 한국사 연구" 79 : 1998

      4 최혜주, "시데하라(幣原坦)의 植民地 朝鮮 經營論에 관한 연구" 160 : 1998

      5 이계형, "대한제국기 통감부의 식민교육정책 연구" 국민대학교 대학원 2008

      6 "대한자강회월보"

      7 "대한매일신보"

      8 學部, "韓國敎育ノ現狀"

      9 學部, "韓國敎育"

      10 "統監府文書"

      1 "황성신문"

      2 최혜주, "일제의 식민지배와 재조선일본인 엘리트" 어문학사 2018

      3 최혜주, "시데하라(幣原坦)의 顧問活動과 한국사 연구" 79 : 1998

      4 최혜주, "시데하라(幣原坦)의 植民地 朝鮮 經營論에 관한 연구" 160 : 1998

      5 이계형, "대한제국기 통감부의 식민교육정책 연구" 국민대학교 대학원 2008

      6 "대한자강회월보"

      7 "대한매일신보"

      8 學部, "韓國敎育ノ現狀"

      9 學部, "韓國敎育"

      10 "統監府文書"

      11 馬越徹, "漢城時代の幣原坦-日本人お雇い敎師の先驅け" 115 : 1988

      12 "植民地朝鮮敎育政策史料集成 63" 龍溪書舍 1919

      13 김정명, "日韓外交資料集成" 嚴南堂書店 1964

      14 稻葉繼雄, "日中敎育文化交流と摩擦" 1983

      15 "敎育時論"

      16 小澤有作, "幣原坦論序說-植民地敎育指導者の足跡と思想" (1) : 1974

      17 幣原坦, "學政ニ關スル報告書" 1905

      18 이성열, "乙巳勒約 前後 日本人 學政參與官 幣原坦의 敎育干涉" 한국교육행정학회 20 (20): 299-3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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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7-15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Historial Association of Soong-sil -> The Historical Association for Soong-Sil KCI등재후보
      200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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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5 0.75 0.6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8 0.5 1.34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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