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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아편전쟁을 바라보는 조선의 다중 시선 - 19세기 중후반 조선 조정, 지식층, 서민층의 대청인식 연구 - = Multiple Views of the Opium Wars in the Joseon Dynasty: A Study on the Joseon Government`s, Intellectuals`, and Commoners` Perceptions of the Qing Dynasty in the mid- to late-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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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제1차·제2차 아편전쟁에 대한 조선 조정, 지식층 그리고 서민층의 반응을 중심으로 당시 조선 사회 각 계층의 대청인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제1차 아편전쟁에 대해 당시 조선에서...

      본 연구는 제1차·제2차 아편전쟁에 대한 조선 조정, 지식층 그리고 서민층의 반응을 중심으로 당시 조선 사회 각 계층의 대청인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제1차 아편전쟁에 대해 당시 조선에서는 유신환(兪莘煥), 이항로(李恒老) 등 극소수의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조선 조정 내부나 지식층, 서민층에서 모두 큰 위기로 인식하지 않았고 무덤덤하거나 낙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서민층이나 일부 지식인들이 전쟁 소식을 신속하게 접하지 못했던 것도 한 원인이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청이 제1차 아편전쟁에 대해 보여준 상황에 대한 인식이 낙관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사회에서도 청의 패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분석된다. 한편 제1차 아편전쟁에서 청의 패배를 충격이나 위기로 받아들인 일부 지식인들 간에도 사상적 균열을 보이며, 청의 멸망을 기대하는 부류와 청과의 공동운명 관계를 강조하는 부류가 나뉘는가 하면 서민층에서는 대청(對淸)복수의식이 여전히 상당부분 남아 있었다. 이는 서세(西勢)의 위협이 각 계층 조선인들에게 동일한 위기감으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제2차 아편전쟁은 조선 조정이나 지식층, 서민층에서 모두 순망치한의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응 및 청에 대한 태도에서 당시 각 계층은 다양한 견해를 보였다. 조선 조정이나 지식층 중 일부 관료적 지식인은 청을 연합세력으로 이해했다. 반면, 재야지식인이나 서민들 가운데에는 청이 약해짐에 따라 대청(對淸)복수론을 펼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청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거나 청의 위기에 대해 관망적 자세를 취한 사람도 있었다. 이는 각 계층의 서로 다른 서세인식, 그리고 조선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자신감 등 조선의 주체성에 대한 태도의 차이와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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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considers how the different society strata of the Joseon Dynasty`s perceptions of the Qing Dynasty were affected by the First and Second Opium Wars with attention to the reactions of the Joseon Dynasty, intellectuals, and commoners at tha...

      This article considers how the different society strata of the Joseon Dynasty`s perceptions of the Qing Dynasty were affected by the First and Second Opium Wars with attention to the reactions of the Joseon Dynasty, intellectuals, and commoners at that time.
      As regards the First Opium War, except a few intellectuals, such as Yu Shin-hwan(兪莘煥, 1801~1859) and Yi Hang-no(李恒老, 1792~ 1868), the Joseon government, the intellectuals and the commoners did not recognize it as a serious crisis and reacted with a calm, even optimistic, attitude. The fact that the commoners and some intellectuals did not receive the latest news about the war in a timely manner contributed to this perception. Additionally, Qing Dynasty`s own attitude to the First Opium War reduced concerns about the Qing`s defeat in Joseon society. In contrast, even those intellectuals who viewed the Qing defeat as a threat still had different viewpoints. Firstly, some of them expected the destruction of the Qing Dynasty; while others emphasized the common destiny between the two countries. Further, commoners retained a significant amount of revenge consciousness regarding the Qing Dynasty. That the Western powers were not viewed with the same sense of crisis by Koreans of different class influenced the diversity of opinion.
      However, the Second Opium War induced in all Joseon social strata an extreme sense of crisis. Still, opinions about the crisis and attitudes toward the Qing Dynasty varied among the classes. On one hand, the rulers of government and some intellectuals who participated in realpolitik understood the Qing as an allied force. On the other hand, due to the weakness of the Qing Dynasty, the commoners and some intellectuals who were out of power expanded calls for revenge against the Qing; finally, some also looked at the Qing Dynasty objectively, and took a wait-and-see attitude to the Qing`s crisis. Different social strata`s perceptions of Western powers and their own attitudes toward the identity of the Joseon Dynasty, such as the level of self-confidence in the realms of policy, culture, and so on, directly affected their perceptions of the Qing and its level of crisis in the aftermath of both Opium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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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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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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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8 0.78 0.8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8 0.82 1.924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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